스타크래프트 연대기 30화 · 울나르의 침묵과 슬레인의 사슬
이 글의 목차
원작의 사건을 바탕으로 새로 쓴 팬 서사입니다. 인물의 감정과 대사, 장면의 분위기는 재구성했으며 주요 결말을 포함합니다.
울나르의 어둠 속에서 조우한 두 지도자

아르타니스는 울나르의 거대한 전당을 걸으며 고대 젤나가의 흔적을 찾았다. 차가운 금속과 낯선 에너지가 흐르는 벽면은 창조주가 남긴 위대한 유산이었으나, 그곳엔 오직 무거운 침묵만이 감돌았다. 사이오닉 검의 푸른빛이 어두운 통로를 밝힐 때마다, 그는 이 신성한 공간이 이미 불길한 기운으로 심각하게 오염되었음을 뼈저리게 직감했다.
통로 너머에서 기괴한 파열음과 짐승의 울음소리가 메아리쳤다. 아르타니스가 경계를 늦추지 않고 전진하자, 어둠 속에서 붉은빛을 뿜어내는 저그 무리와 원시 칼날 여왕 케리건이 모습을 드러냈다. 제루스에서 원시 저그의 정수를 받아들여 스스로 재탄생한 그녀는 아몬의 병력인 혼종들과 치열한 혈투를 벌이고 있었다. 창조주의 고향에서 군단의 수장과 마주친 것은 아르타니스에게도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케리건은 원시 저그의 강력한 힘이 깃든 날카로운 발톱으로 혼종의 숨통을 끊은 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아르타니스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끝없는 분노와 피로가 얽혀 있었고, 원시 정수의 강력한 사이오닉 에너지가 위태롭게 맴돌고 있었다. 두 지도자는 과거의 적대감을 잠시 거두고 서로의 목적이 같음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아몬이라는 거대한 적 앞에서 그들은 더 이상 적이 아니었다.
'우리는 모두 해답을 찾기 위해 이곳에 왔소.' 아르타니스가 먼저 검을 거두며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케리건은 턱을 치켜들며, 아몬이 이미 이곳을 장악했고 자신 혼자서는 이 끝없는 혼종 무리를 뚫고 나갈 수 없음을 솔직히 인정했다. 그녀는 젤나가의 힘을 빌려 아몬을 파멸시키려 했으나, 상황은 예상보다 훨씬 절망적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두 세력은 임시 동맹을 맺고 울나르의 더 깊은 심층부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프로토스의 정교한 사이오닉 폭풍과 저그의 맹렬한 발톱이 어우러져 뫼비우스 특전대와 혼종의 방어선을 차례로 찢어발겼다. 아르타니스는 케리건의 잔혹하지만 효율적인 전투 방식을 지켜보며, 생존을 위해 진화한 군단의 끔찍한 위력을 새삼 실감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거대한 문턱을 넘을 때마다 아몬의 하수인들은 더욱 거세게 저항했다. 공허의 에너지가 공간을 일그러뜨리고, 차가운 바닥 위로 쓰러진 혼종들의 검은 피가 강물처럼 흘렀다. 아르타니스는 방패로 케리건을 향해 날아드는 치명적인 일격을 막아냈고, 케리건은 그 틈을 타 적의 진형을 붕괴시켰다. 말없이 이루어진 협공은 두 지도자의 절박함을 증명했다.
마침내 그들의 앞을 가로막던 마지막 혼종 융합체가 끔찍한 비명과 함께 바닥에 쓰러졌다. 거대한 문이 육중한 마찰음을 내며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고, 그 너머로 젤나가가 잠들어 있을 성소의 고요한 빛이 새어 나왔다. 아르타니스는 심장이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드디어 창조주를 만나 아몬을 멈출 지혜를 얻을 수 있다는 희망이 가슴을 달구었다.
케리건 역시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성소 내부를 주시했다. 그녀는 군단을 구원하고 우주를 짓누르는 어둠을 걷어낼 힘을 간절히 갈망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누구 먼저랄 것도 없이 빛이 쏟아지는 문턱을 넘어 거대한 방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나 그들을 맞이한 것은 장엄한 계시가 아니라,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참혹하고 끔찍한 절망의 풍경이었다.
죽어버린 신들과 무너진 믿음

성소 내부는 우주의 별빛을 담아놓은 듯 거대하고 신비로운 공간이었으나, 그 중심을 차지한 것은 처참하게 부서진 동면 장치들이었다. 아르타니스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떨리는 걸음으로 다가갔다. 거대한 수정 구조물들은 무참히 깨져 있었고, 그 안에서 영겁의 잠을 자고 있어야 할 젤나가들은 찢겨나간 시신이 되어 바닥에 흉측하게 널브러져 있었다.
'창조주들이 죽었다.' 아르타니스의 입술 사이로 절망에 찬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는 무릎을 꿇고 거대한 젤나가의 텅 빈 껍데기를 어루만졌다. 수천 년 동안 프로토스가 숭배하고 기다려온 신들은 이미 오래전에 아몬의 손에 의해 도살당한 상태였다. 그의 내면에서 칼라를 잃었을 때보다 더 깊고 어두운 상실감이 해일처럼 밀려와 영혼을 짓눌렀다.
케리건은 분노로 몸을 떨며 부서진 동면실 주변을 서성였다. 그녀는 구원을 바라고 온 것이 아니었지만, 적어도 아몬에 맞설 무기나 지식은 있을 것이라 굳게 믿었다. 하지만 이곳에 남은 것은 오직 패배와 죽음의 악취뿐이었다. 아몬은 이미 오래전에 울나르를 찾아와 동족들을 학살하고, 우주의 순환을 자신의 뜻대로 비틀어버릴 준비를 마쳤던 것이다.
아르타니스는 고개를 숙인 채 과거의 믿음이 산산조각 나는 고통을 묵묵히 견뎌내야 했다. 젤나가의 인도를 받아 위대한 구원을 이룩하리라는 프로토스의 오랜 전설은 헛된 환상에 불과했다. 그들은 신의 가호를 받는 선택된 자들이 아니라, 멸망해버린 창조주들의 버려진 고아일 뿐이었다. 침묵하는 시신들은 그 어떤 위로나 해답도 주지 못한 채 식어 있었다.
'우리는 철저히 혼자요.' 아르타니스가 텅 빈 눈동자로 케리건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분노를 넘어선 깊은 허무가 배어 있었다. 케리건은 차가운 시선으로 젤나가의 잔해를 응시하며, 이제 이 우주에 기댈 곳은 아무데도 없음을 잔인하게 확인했다. 신들은 죽었고, 남은 것은 필멸자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절망에 맞서야 한다는 사실뿐이었다.
성소의 허공에 미세한 사이오닉 파동이 일렁이며, 죽은 자들이 남긴 마지막 기억의 파편들이 홀로그램처럼 떠오르기 시작했다. 아르타니스와 케리건은 홀린 듯 그 빛의 무리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아몬이 동면 중인 동족들을 기습하여 무참히 살해하는 과거의 끔찍한 환영이었다. 창조주들의 비명 없는 고통이 두 사람의 정신을 파고들며 진실을 고발하고 있었다.
환영 속에서 아몬은 젤나가의 정수를 탐욕스럽게 흡수하며 자신의 힘을 키우고 있었다. 그는 동족들이 지켜온 우주의 법칙을 경멸했고, 모든 생명을 자신의 발밑에 굴복시키려는 오만한 야욕을 숨기지 않았다. 아르타니스는 주먹을 꽉 쥐었다. 창조주를 향한 맹목적인 믿음이 사라진 자리에는, 이 끔찍한 학살자를 반드시 심판하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피어올랐다.
케리건은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며 요동치는 감정을 억눌렀다. 그녀는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었고, 물러설 곳도 없었다. 아몬이 젤나가를 멸망시켰다면, 이제 그 괴물을 죽일 수 있는 것은 우리뿐이라고 그녀는 단호하게 선언했다. 아르타니스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울나르의 침묵 속에서, 두 지도자는 신의 구원 대신 스스로의 투쟁을 선택했다.
무한의 순환과 아몬의 끔찍한 반역

성소의 중앙 제단에서 뿜어져 나온 고대의 빛이 방 안을 가득 채우며, 젤나가가 수호하려 했던 무한의 순환에 대한 진실을 홀로그램 벽화로 펼쳐 보였다. 아르타니스는 빛나는 입자들 사이를 걸으며 그 장엄한 우주의 역사를 눈에 담았다. 형태의 순수함과 정수의 순수함이 만나 새로운 젤나가로 거듭나는 위대한 섭리가 찬란하게 재현되고 있었다.
프로토스와 저그는 단지 우연히 진화한 생명체가 아니었다. 그들은 무한의 순환을 완성하기 위해 안배된 두 가지 핵심적인 잠재력이었다. 아르타니스는 자신들이 우주의 거대한 계획 속에서 얼마나 중요한 존재였는지를 깨닫고 경외감에 휩싸였다. 그러나 그 아름다운 순환의 고리는 아몬이라는 배신자에 의해 무참히 끊어지고 오염되어 지금의 비극을 낳았다.
벽화의 빛이 붉게 변하며 아몬의 반역이 묘사되기 시작했다. 아몬은 생명체들이 자연스럽게 진화하여 순환을 잇는 것을 기다리지 못했다. 그는 젤나가의 굴레를 증오했고, 우주를 자신의 형상대로 재창조하기 위해 프로토스와 저그의 진화에 강제로 개입했다. 그가 만들어낸 혼종은 두 종족의 결합이 아니라, 순환을 파괴하려는 끔찍한 흉물이었다.
케리건은 아몬이 저그를 어떻게 조작하고 타락시켰는지를 보여주는 환영 앞에서 치를 떨었다. 초월체조차 아몬의 억압적인 의지에 묶인 노예에 불과했으며, 군단이 저지른 수많은 학살의 배후에는 아몬의 증오가 도사리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겪은 모든 고통과 타락이 이 타락한 젤나가의 거대한 계획 속에서 철저히 농락당한 결과였음을 뼈저리게 실감했다.
아르타니스는 칼라를 통해 프로토스를 지배하려 했던 아몬의 교활한 음모를 떠올리며 분노로 눈을 번뜩였다. 아몬은 젤나가의 유산을 수호하는 척하며 프로토스를 기만했고, 결국 그들을 완벽한 숙주로 삼아 우주를 파멸시키려 했다. 창조주의 진실을 마주한 아르타니스는 더 이상 과거의 영광에 얽매이지 않고, 오직 생존과 자유를 위해 싸울 것을 맹세했다.
'무한의 순환은 끝났다.' 케리건이 차가운 목소리로 정적을 깼다. 그녀의 말대로 젤나가는 모두 죽었고, 순환을 이어갈 방법은 영원히 사라졌다. 이제 우주에 남은 것은 아몬이 불러올 완전한 종말뿐이었다. 그러나 아르타니스는 절망에 굴복하지 않았다. 그는 비록 순환이 파괴되었을지라도, 필멸자들의 의지마저 꺾인 것은 아니라고 대답하며 검을 쥐었다.
두 사람은 아몬의 계획이 단순히 세상을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생명을 지우고 공허의 정적만을 남기는 것임을 명확히 이해했다. 혼종은 그 종말을 위한 도구였고, 아몬이 육신을 얻어 이 우주에 강림하는 순간 모든 것은 끝날 터였다. 그들은 울나르에서 얻은 잔혹한 진실을 바탕으로, 아몬의 병력을 분쇄하고 강림을 막아낼 전략을 구상해야만 했다.
성소의 빛이 서서히 사그라들며 다시 무거운 어둠이 내려앉았다. 아르타니스는 케리건과 짧은 눈빛을 교환한 뒤, 각자의 세력을 이끌고 아몬의 하수인들을 몰아내기 위해 발걸음을 돌렸다. 신들의 무덤에서 그들이 얻은 것은 구원의 약속이 아니라,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해야 한다는 책임감이었다. 아르타니스는 굳은 결의를 품고 아둔의 창으로 귀환했다.
어둠 속에서 나타난 탈다림의 제안

아둔의 창으로 귀환한 아르타니스는 피로가 짙게 밴 얼굴로 함교의 지휘석에 섰다. 울나르에서 목격한 젤나가의 죽음은 그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그때, 함선 내부의 보안 시스템이 날카로운 경고음을 울리며 미지의 침입자가 발생했음을 알렸다. 아르타니스가 방어 태세를 갖추자, 함교의 그림자 속에서 붉은 안광을 번뜩이는 프로토스가 걸어 나왔다.
그는 황금 함대의 찬란한 표준 갑옷 대신, 검고 날카로운 금속판이 겹겹이 얽힌 기괴한 형태의 장갑을 두르고 있었다. 갑옷의 틈새로는 탈다림 특유의 핏빛 테라진 에너지가 맥박치듯 흐르며 불길한 기운을 뿜어냈다. 자신을 알라라크라 소개한 그는 첫 번째 승천자라는 직위에 걸맞은 오만하고도 날카로운 태도로 아르타니스를 훑어보며 조롱 섞인 인사를 건넸다.
아르타니스는 즉각 사이오닉 검을 전개하며 침입자의 의도를 캐물었다. 알라라크는 전혀 위축되지 않은 채, 오히려 아르타니스의 무지를 비웃으며 아몬이 탈다림마저 배신했음을 폭로했다. 아몬은 탈다림을 구원하여 승천시킬 마음이 전혀 없으며, 그저 혼종을 만들기 위한 도구이자 소모품으로 취급하고 있다는 것이 알라라크가 알아낸 끔찍한 진실이었다.
알라라크는 군주 말라쉬가 아몬의 거짓말을 알면서도 동족들을 사지로 몰아넣고 있다고 분노를 표출했다. 그는 말라쉬를 권좌에서 끌어내리고 자신이 탈다림의 지배자가 되기 위해 아르타니스의 힘이 필요하다고 당당하게 요구했다. 아르타니스는 적의 수장이 될 자의 갑작스러운 제안에 의구심을 품었으나, 알라라크의 눈빛에 깃든 복수심만큼은 진짜임을 직감했다.
탈다림은 오랫동안 댈람의 적이었고, 그들의 잔혹함은 우주 전역에 악명이 높았다. 아르타니스는 알라라크의 교활한 혀를 믿을 수 없다고 경고하며 그를 압박했다. 그러나 알라라크는 댈람이 현재 아몬의 압도적인 병력 앞에서 얼마나 무력한지를 정확히 지적하며, 자신의 제안을 거절한다면 아르타니스 역시 공허의 재가 될 뿐이라고 차갑고 매섭게 응수했다.
알라라크는 자신이 말라쉬를 쓰러뜨리고 군주가 된다면, 탈다림의 죽음의 함대를 아몬과의 전쟁에서 댈람의 편에 서게 하겠다고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었다. 그것은 아르타니스에게 너무나도 매력적이고 절실한 제안이었다. 아몬의 세력을 분열시키고 강력한 함대를 얻을 수만 있다면, 울나르에서 느꼈던 절망적인 전력 차이를 단숨에 뒤집을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아르타니스는 잠시 침묵하며 이 위험한 도박의 득실을 빠르게 계산했다. 알라라크는 신뢰할 수 없는 자였지만, 아몬을 향한 그의 증오만큼은 댈람과 완벽하게 일치했다. 적의 적은 동맹이 될 수 있다는 차가운 현실 앞에서, 아르타니스는 결국 검을 거두고 알라라크의 제안을 조건부로 수락했다. 대신 그는 댈람의 전사들을 함부로 대하지 말라고 엄중히 경고했다.
알라라크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아르타니스의 결정을 환영했다. 그는 지체 없이 슬레인으로 향해야 한다고 재촉하며, 탈다림의 지배권을 빼앗기 위한 고대의 의식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르타니스는 이 위험한 동맹이 댈람을 파멸로 이끌지 않기를 속으로 기원하며, 아둔의 창의 항로를 짙은 테라진 안개에 휩싸인 탈다림의 모성 슬레인으로 변경했다.
슬레인의 핏빛 안개와 라크쉬르의 규칙

아둔의 창이 슬레인의 궤도에 진입하자, 검붉은 구름과 끝없이 피어오르는 테라진 가스가 행성 전체를 음울하게 뒤덮고 있는 광경이 화면에 나타났다. 알라라크는 함교의 관측창 너머로 자신의 고향을 내려다보며, 탈다림 사회를 지탱하는 절대적인 규율인 승천의 사슬에 대해 설명했다. 그것은 오직 힘과 복종, 그리고 무자비한 배신만이 허용되는 끔찍한 계급 체계였다.
승천의 사슬에서 상위자의 명령은 절대적이며, 하위자는 목숨을 바쳐 그에 복종해야만 했다. 그러나 단 한 가지, 합법적으로 상위자를 죽이고 자리를 찬탈할 수 있는 방법이 존재했는데, 그것이 바로 라크쉬르라는 고대의 결투 의식이었다. 알라라크는 자신이 군주 말라쉬에게 라크쉬르를 신청할 것이며, 이 승패는 오직 아르타니스의 지원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라크쉬르는 단순한 무력 대결이 아니었다. 결투를 벌이는 두 당사자는 서로를 향해 끊임없이 사이오닉 에너지를 밀어내며, 지지자들은 자신의 힘을 주군에게 불어넣어 그 밀어내기에 힘을 보태야 했다. 알라라크는 말라쉬가 이미 수많은 광신도들과 아몬의 혼종들을 지지자로 끌어들였음을 밝히며, 댈람의 병력이 없다면 자신이 밀려나 죽게 될 것이라 단언했다.
아르타니스는 동족을 짓밟으며 위로 올라가는 탈다림의 잔혹한 문화에 깊은 혐오감을 느꼈다. 칼라의 조화와 유대를 중시해온 댈람의 가치관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야만적인 굴레였다. 그러나 그는 내색하지 않고 알라라크의 설명을 경청하며, 라크쉬르의 전장인 희생의 구덩이 주변 지형과 말라쉬의 병력 배치 상황을 면밀하고 냉철하게 분석해 나갔다.
알라라크는 라크쉬르가 진행되는 동안 결투 당사자들은 서로를 공격하는 데 모든 정신을 집중해야 하므로 무방비 상태가 된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댈람의 병력은 말라쉬의 지지자들을 제거하고, 알라라크 주변에 머물며 끊임없이 에너지를 공급해야 했다. 만약 알라라크가 힘에서 밀려 구덩이 가장자리로 떨어지게 되면, 그것으로 동맹은 끝나고 죽음만이 남게 된다.
전사들의 생명을 한낱 결투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에 아르타니스는 분노를 느꼈지만, 아몬을 꺾기 위해서는 이 비정한 의식에 동참해야만 했다. 그는 댈람의 지휘관들에게 라크쉬르의 규칙을 하달하고, 슬레인의 척박한 지표면으로 강하할 준비를 서둘렀다. 아둔의 창 내부에는 탈다림의 내전에 개입해야 한다는 사실에 불만이 교차했지만, 모두가 대의를 위해 무기를 들었다.
슬레인의 지표면은 호흡조차 힘든 짙은 테라진 안개로 가득했고, 기괴한 생명체들이 울부짖는 소리가 메아리쳤다. 알라라크는 자신의 핏빛 검을 뽑아 들고 희생의 구덩이를 향해 거침없이 걸어갔다. 그의 등 뒤로 아르타니스가 이끄는 댈람의 정예 병력이 굳건한 진형을 갖추고 뒤따랐다. 곧이어 저 멀리서 말라쉬의 거대한 형상과 호위하는 혼종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말라쉬는 알라라크의 반역을 비웃으며 아몬의 이름으로 그를 처단하겠다고 선언했다. 알라라크 역시 지지 않고 말라쉬의 어리석음과 아몬의 기만을 조롱하며 맹렬한 살기를 뿜어냈다. 두 탈다림의 지도자가 구덩이 중앙에서 격돌하는 순간, 거대한 사이오닉 폭풍이 휘몰아치며 슬레인의 대지를 뒤흔들었다. 마침내 탈다림의 운명을 결정지을 피비린내 나는 라크쉬르가 시작되었다.
희생의 구덩이에서 벌어진 사투

알라라크와 말라쉬의 사이오닉 에너지가 충돌하자,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강렬한 붉은 번개가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두 존재는 서로의 정신을 짓누르며 한 치의 양보도 없는 팽팽한 힘겨루기에 돌입했다. 아르타니스는 즉시 댈람 전사들에게 진격 명령을 내렸다. 프로토스의 푸른 검광이 테라진 안개를 가르며 말라쉬를 지원하기 위해 몰려드는 광신도들을 향해 쇄도했다.
말라쉬의 등 뒤에서는 아몬이 하사한 거대한 혼종들이 기괴한 포효를 내지르며 전장으로 난입했다. 혼종들이 내뿜는 파괴적인 공허 에너지는 댈람의 방어선을 순식간에 위협했다. 아르타니스는 직접 전방으로 나서 방패로 혼종의 일격을 막아내고, 빈틈을 노려 사이오닉 검을 적의 흉갑에 깊숙이 찔러 넣었다. 전장은 댈람과 혼종, 탈다림이 뒤엉킨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알라라크는 말라쉬의 강력한 압박에 밀려 조금씩 뒤로 밀려나고 있었다. 말라쉬에게 에너지를 공급하는 혼종들의 힘이 너무나도 막강했기 때문이다. 알라라크가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으며 아르타니스에게 더 많은 지원을 요구하자, 아르타니스는 동력기를 전진 배치하고 고위 기사들의 사이오닉 폭풍을 적진 한가운데로 쏟아부어 말라쉬의 지지자들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댈람의 병력이 알라라크의 주변으로 모여들어 결집된 에너지를 불어넣자, 알라라크를 감싸고 있던 붉은 기운이 폭발적으로 팽창했다. 힘을 얻은 알라라크는 악에 받친 웃음을 터뜨리며 말라쉬를 향해 에너지를 거세게 밀어붙였다. 전황이 역전되며 말라쉬의 거구는 희생의 구덩이를 향해 꼴사납게 밀려나기 시작했다. 댈람의 조직적인 지원이 라크쉬르의 균형을 깨뜨린 것이다.
그러나 말라쉬 역시 호락호락하게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그는 아몬을 향해 광기 어린 기도를 올리며 슬레인 전역에 흩어져 있던 죽음의 함대 병력을 추가로 호출했다. 하늘에서 무수히 많은 차원 분광기가 쏟아져 내리며 새로운 병력을 전장에 투입했다. 아르타니스는 끝없이 몰려드는 적의 규모에 혀를 내두르며, 아둔의 창에 궤도 폭격을 지시하여 증원을 차단했다.
테라진 가스가 뿜어내는 환각 작용은 댈람 전사들의 정신을 어지럽히고 전투의 피로를 가중시켰다. 아르타니스는 전사들의 사기가 꺾이지 않도록 끊임없이 격려하며 전선을 유지했다. 그는 알라라크가 패배한다면 이 행성에서 살아나갈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광전사들은 몸을 던져 혼종을 막았고, 추적자들은 정밀한 점멸로 적의 후방을 교란했다.
치열한 공방전 속에서 알라라크와 말라쉬는 구덩이의 중앙을 오가며 지독한 줄다리기를 이어갔다. 알라라크의 핏빛 장갑은 과부하된 에너지로 인해 터져나갈 듯 붉게 달아올랐고, 그의 눈빛은 말라쉬를 찢어죽이겠다는 광기 어린 살의로 번뜩였다. 아르타니스는 그 끔찍한 집념을 지켜보며, 탈다림의 방식이 얼마나 파괴적이고 잔혹한지를 다시 한번 뼈저리게 실감했다.
전투가 절정에 달하자 아르타니스는 모든 병력을 알라라크의 반경 안으로 결집시키는 승부수를 띄웠다. 방어선을 좁히고 오직 밀어내기에만 에너지를 집중하는 위험한 전술이었다. 댈람의 결속된 힘이 폭포수처럼 알라라크에게 쏟아져 들어갔고, 그 압도적인 에너지를 흡수한 알라라크는 최후의 일격을 준비하며 말라쉬를 향해 무자비한 힘의 파도를 방출하기 시작했다.
군주의 몰락과 새로운 지배자

댈람의 막대한 에너지를 등에 업은 알라라크의 붉은 파동이 거대한 해일처럼 말라쉬를 덮쳤다. 말라쉬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그를 지원하던 혼종과 광신도들은 이미 댈람의 맹공에 쓸려나간 뒤였다. 힘의 균형은 완전히 무너졌고, 말라쉬의 발걸음은 희생의 구덩이의 아득한 벼랑 끝을 향해 속절없이 뒤로 밀려나고 있었다.
'아몬이여, 저를 버리시나이까!' 말라쉬가 허공을 향해 절규하며 마지막 구원을 애원했다. 그러나 검게 물든 슬레인의 하늘은 아무런 대답도 들려주지 않았다. 아몬에게 탈다림은 그저 소모품에 불과했으며, 패배한 하수인에게 베풀 자비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 잔혹한 진실을 깨달은 말라쉬의 눈동자에 처음으로 걷잡을 수 없는 공포와 절망이 짙게 피어올랐다.
'너의 신은 널 버렸다, 말라쉬. 네가 우리 동족을 기만했던 것처럼 말이다!' 알라라크의 조롱 섞인 목소리는 슬레인의 대지를 쩌렁쩌렁 울리며 모든 탈다림의 귓가에 꽂혔다. 그는 자비를 구하는 말라쉬의 비참한 모습을 마음껏 비웃으며, 벼랑 끝으로 그를 무자비하게 몰아세웠다. 승천의 사슬 정점에 설 자신의 압도적인 권위를 전장 전체에 과시하는 순간이었다.
아르타니스는 숨을 죽인 채 그 잔혹한 처형의 순간을 지켜보았다. 알라라크는 손을 들어 올려 마지막 사이오닉 에너지를 응집시킨 뒤, 자비 없는 일격으로 말라쉬의 흉부를 강타했다. 말라쉬의 거대한 육신이 허공으로 붕 떠올랐고, 끔찍한 단말마와 함께 끝을 알 수 없는 희생의 구덩이 밑바닥으로 영원히 추락해 버렸다. 라크쉬르는 마침내 알라라크의 완벽한 승리로 끝났다.
말라쉬의 죽음이 확인되자, 전장에 남아있던 모든 탈다림 병력의 움직임이 일제히 멈췄다. 핏빛 안개가 걷히고 무거운 정적이 흐르는 가운데, 알라라크가 구덩이의 가장자리에 서서 두 팔을 벌렸다. '나는 알라라크다! 이제부터 내가 탈다림의 새로운 군주다!' 그의 확신에 찬 선언이 울려 퍼지자, 사슬에 묶인 모든 탈다림이 본능적으로 무기를 거두고 무릎을 꿇었다.
그것은 댈람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기괴하고도 소름 돋는 광경이었다. 방금 전까지 서로의 목숨을 노리며 피를 흘리던 자들이, 오직 힘의 논리 하나만으로 새로운 지배자에게 절대적인 복종을 맹세하고 있었다. 아르타니스는 탈다림 사회를 지배하는 공포와 맹종의 사슬이 얼마나 깊고 단단한지를 목격하며, 이 위험한 동맹이 가져올 파장을 조심스럽게 가늠했다.
알라라크는 엎드린 동족들을 거만하게 내려다보며 아몬을 향한 복수를 천명했다. 그는 아몬이 탈다림을 속였고 승천의 약속은 거짓이었음을 폭로하며, 이제 죽음의 함대는 거짓된 신을 찢어발기기 위해 움직일 것이라 선포했다. 군주의 명령은 곧 탈다림의 법이었고, 광신도들은 새로운 주군의 뜻에 따라 아몬을 향한 증오를 불태우며 광기 어린 환호성을 내질렀다.
아르타니스는 검을 거두고 알라라크에게 다가갔다. 피비린내 나는 의식은 끝났고, 이제 약속을 이행할 시간이었다. 알라라크는 아르타니스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댈람의 지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승리였음을 인정하면서도, 그는 특유의 거만한 태도를 잃지 않았다. 두 지도자는 짧은 묵례를 나누며, 피로 맺어진 위태로운 동맹의 시작을 알렸다.
위태로운 연합과 다가오는 결전

아둔의 창으로 귀환한 아르타니스와 알라라크는 함교의 전략 회의실에 마주 섰다. 탈다림의 새로운 군주가 된 알라라크는 여전히 그 기괴하고 뾰족한 장갑을 두른 채, 댈람의 기술력을 흥미롭다는 듯 훑어보고 있었다. 아르타니스는 그에게 약속대로 죽음의 함대가 댈람의 지휘에 따를 것인지를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알라라크는 콧방귀를 뀌며 자신의 조건부 동맹을 재확인했다.
'나의 함대는 아몬을 파멸시키는 그 순간까지만 너희와 함께할 것이다.' 알라라크의 조건은 명확했다. 그는 댈람의 대의나 칼라의 가치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었으며, 오직 자신을 기만한 아몬에게 피의 복수를 감행하는 것만이 유일한 목적이었다. 아르타니스는 그의 불순한 의도를 경계하면서도, 당장 아몬의 막강한 병력에 맞서기 위해서는 이 전력이 절실히 필요함을 인정했다.
이로써 아르타니스는 저그의 군단에 이어 탈다림이라는 가장 이질적이고 위험한 세력까지 동맹으로 끌어들이게 되었다. 과거라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기형적인 연합군이었다. 그는 함교의 홀로그램 투영기를 통해 슬레인 궤도에 집결하는 거대한 죽음의 함대를 바라보며, 이 깨지기 쉬운 연합이 아몬을 물리칠 때까지 무사히 유지될 수 있을지 깊은 고뇌에 잠겼다.
울나르에서 확인했듯, 아몬은 이미 젤나가를 몰살시키고 우주의 순환을 파괴한 압도적인 존재였다. 그의 육신이 완성되어 이 우주에 완전히 강림한다면, 댈람과 탈다림, 저그가 모두 힘을 합친다 해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다. 아르타니스는 알라라크에게 아몬의 최종적인 죽음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진정한 전쟁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사실을 무겁게 상기시켰다.
알라라크는 아르타니스의 우려를 비웃으며, 아몬이 강림하든 말든 자신의 핏빛 검으로 그 껍데기를 베어버리겠다고 호언장담했다. 그의 맹목적인 복수심은 때로는 위험해 보였지만, 역설적으로 아몬을 향한 가장 강력하고 흔들림 없는 무기가 될 수 있었다. 아르타니스는 알라라크의 오만함을 지적하는 대신, 그의 투지를 댈람의 전략에 어떻게 효율적으로 녹여낼지를 고민했다.
함교의 창밖으로 끝없는 우주의 어둠이 펼쳐져 있었다. 아르타니스는 울나르의 텅 빈 성소에서 느꼈던 절망과, 슬레인의 피비린내 나는 전장에서 목격한 광기를 차례로 떠올렸다. 신들은 죽었고, 동족들은 타락했으며, 우주는 멸망의 위기에 처해 있었다. 그러나 이 모든 절망 속에서도 필멸자들은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치며 기적처럼 하나의 깃발 아래 모여들고 있었다.
우리는 더 이상 신의 구원을 기다리지 않는다. 아르타니스는 속으로 굳게 다짐하며 주먹을 쥐었다. 그가 이끄는 댈람은 이제 과거의 영광에 기대는 나약한 존재가 아니었다. 그들은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하고, 아몬이라는 거대한 어둠에 맞서 우주의 새로운 새벽을 열어젖힐 준비가 되어 있었다. 알라라크 역시 아르타니스의 결연한 의지를 읽고 흥미로운 미소를 지었다.
아르타니스는 통신 채널을 열어 전 함대에 출항 준비를 명했다. 탈다림의 죽음의 함대가 아둔의 창의 양 측면을 호위하며 거대한 진형을 갖추었다. 아몬을 공허로 영원히 추방하기 위한 길고 험난한 여정은 아직 끝을 알 수 없었지만, 아르타니스의 심장에는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희망의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거대한 방주가 눈부신 도약의 빛을 뿜어내며 전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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