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크래프트 연대기 19화 · 뫼비우스가 사들이는 유물
이 글의 목차
원작의 사건을 바탕으로 새로 쓴 팬 서사입니다. 인물의 감정과 대사, 장면의 분위기는 재구성했으며 주요 결말을 포함합니다.
히페리온의 재정난과 타이커스의 제안

히페리온의 휴게실에서 짐 레이너는 바닥을 드러낸 자금 현황과 보급품 보고서를 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자치령을 상대로 한 혁명은 고귀한 대의였지만, 현실은 당장 내일의 식량과 탄약을 걱정해야 하는 처절한 빈곤의 연속이었다.
맷 호너가 다가와 용병들에게 지급할 대금이 연체되고 있으며 함선의 필수적인 유지보수조차 한계에 달했다고 조심스럽게 보고했다. 레이너는 애써 태연한 척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의 굳은 표정에는 반란군 지도자로서의 무거운 책임감이 역력했다.
그때 거대한 전투복을 입은 타이커스 핀들레이가 육중한 발소리를 내며 휴게실로 들어왔다. 입에 굵은 시가를 물고 씩 웃는 그의 얼굴에는 특유의 능글맞은 여유가 가득했다. 그는 레이너의 탁자 위로 낡은 데이터 패드 하나를 툭 던졌다.
타이커스는 자신이 아주 짭짤한 일거리를 하나 물어왔다며, 뫼비우스 재단이라는 곳에서 정체불명의 외계 유물을 수집하는 데 엄청난 액수의 현금을 지불한다고 설명했다. 패드 화면에는 기묘한 빛을 뿜어내는 고대 유물의 파편이 떠올라 있었다.
레이너는 즉각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타이커스를 바라보았다. 뫼비우스 재단은 학술 단체를 표방하지만 뒤가 구린 구석이 많았고, 무엇보다 타이커스가 고고학이나 과학 연구에 관심을 가질 위인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타이커스는 레이너의 의심을 가볍게 무시하며,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도덕적 명분이 아니라 당장 함선을 굴릴 두둑한 자금이라고 쏘아붙였다. 그는 시가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이 기회를 놓치면 반란군은 굶어 죽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호너 역시 타이커스의 말이 거슬리긴 했지만, 현재의 재정 상태로는 다른 대안이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레이너는 탁자 위의 데이터 패드를 집어 들고 화면 속 유물의 기하학적인 문양을 조용히 응시하며 생각에 잠겼다.
결국 레이너는 무거운 결단을 내렸다. 자치령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일단 살아남아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자금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그는 호너에게 첫 번째 유물이 위치한 좌표로 히페리온의 기수를 돌리라고 지시하며 씁쓸하게 일어섰다.
몬리스의 삼파전

히페리온이 몬리스 행성의 궤도에 진입하자마자 전술 화면에는 엄청난 규모의 프로토스 에너지 신호와 저그 생체 반응이 동시에 붉게 번쩍였다. 레이너는 함교의 모니터를 주시하며 이 버려진 행성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이한 삼파전의 양상을 분석했다.
탈다림이라고 불리는 광신적인 프로토스 분파가 고대 사원 주변을 요새화하고 유물을 목숨 걸고 지키고 있었다. 그들은 칼라의 빛을 거부하고 자신들만의 어두운 신앙에 빠져 있었으며, 이방인의 접근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 극단적인 적대감을 보였다.
설상가상으로 저그 군단마저 유물이 뿜어내는 정체불명의 파동에 이끌려 사원을 향해 맹렬하게 진격하고 있었다. 레이너는 저그와 프로토스가 서로의 목을 물어뜯는 동안 틈을 노려 유물만 신속하게 빼내야 한다는 위험천만한 작전을 수립했다.
강하 포드를 타고 지표면에 착륙한 테란 병력은 험준한 바위 지대를 엄폐물 삼아 조심스럽게 전진했다. 불곰과 해병들은 탈다림 추적자들의 맹렬한 입자포 공격을 뚫고 사원의 외곽 방어선을 하나씩 무너뜨리며 유물이 안치된 중심부로 향했다.
타이커스는 거대한 미니건을 난사하며 전장의 선두에서 쾌재를 불렀다. 그는 저그의 저글링 떼가 측면을 기습하려 하자 거친 욕설과 함께 화력을 집중하여 놈들을 고깃덩어리로 만들었다. 그의 무자비한 전투 방식은 아군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마침내 사원 중심부에 도달한 레이너의 분대는 고대 제단 위에 떠 있는 첫 번째 유물 조각을 발견했다. 유물은 차갑고도 신비로운 푸른빛을 뿜어내고 있었으며, 가까이 다가가자 알 수 없는 미세한 진동이 전투복의 장갑을 타고 전해져 왔다.
유물을 회수 장치에 담는 순간, 저그의 거대한 땅굴벌레가 탈다림의 방어선을 뚫고 솟구쳐 오르며 수많은 병력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전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고, 프로토스와 저그의 피비린내 나는 난전이 사원 전체를 집어삼키려 했다.
레이너는 즉시 전 병력에게 철수 명령을 내렸다. 테란 수송선들이 빗발치는 대공 포화를 뚫고 아슬아슬하게 병력과 유물을 싣고 궤도로 날아올랐다. 몬리스의 지표면은 그들이 떠난 직후 저그의 점막과 프로토스의 불길로 완전히 뒤덮여 버렸다.
질 행성의 고대 사원과 젤나가 유물

다음 유물 좌표는 젤나가의 거대한 고대 사원이 숨겨져 있는 황량한 행성 질이었다. 뫼비우스 재단은 이미 이곳에 발굴팀을 파견했었지만, 유물을 성물로 숭배하는 탈다림의 무자비한 공격을 받고 연구원 전원이 몰살당했다는 끔찍한 보고가 들어왔다.
레이너는 탈다림이 사원 입구를 거대한 에너지 장막과 견고한 광자포로 겹겹이 봉쇄해 놓은 것을 확인했다. 일반적인 보병 화력으로는 결코 뚫을 수 없는 방어선이었기에, 그는 히페리온의 무기고에서 막강한 화력을 자랑하는 공성 전차를 꺼내들었다.
전장에 투입된 공성 전차들은 굉음을 내며 지지대를 땅에 박고 공성 모드로 전환했다. 거대한 주포가 불을 뿜을 때마다 지축이 흔들렸고, 탈다림의 견고한 방어 구조물들은 무자비한 포격 앞에 속수무책으로 산산조각 나며 파편을 흩뿌렸다.
탈다림은 성소를 지키기 위해 광전사들을 끊임없이 사지로 몰아넣었다.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테란의 진지를 향해 돌진했지만, 공성 전차의 압도적인 폭발력 앞에서는 그들의 숭고한 희생조차 덧없는 잿더미로 변할 뿐이었다.
레이너는 모니터 너머로 죽어가는 프로토스 전사들을 보며 착잡한 심정을 감출 수 없었다. 그들은 왜 이토록 차가운 돌덩이에 불과한 유물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동정심을 가질 여유조차 없는 절박한 상황이었다.
마침내 사원의 가장 깊은 곳을 가로막고 있던 거대한 석재 문이 공성 전차의 집중 포격에 의해 무너져 내렸다. 자욱한 먼지구름이 걷히자, 그 안에서 두 번째 유물 조각이 영롱한 빛을 발하며 고대의 신비를 간직한 채 모습을 드러냈다.
병력들이 유물을 안전하게 컨테이너에 밀봉하는 동안, 레이너는 사원 내부에 새겨진 기하학적인 젤나가 문양들을 말없이 쓰다듬었다. 이 유물들이 단순한 외계 장신구가 아니라, 우주의 근원적인 힘과 맞닿아 있다는 불길한 직감이 그의 등골을 스쳤다.
질 행성에서의 작전은 성공적으로 끝났지만, 레이너의 마음은 무거웠다. 뫼비우스 재단이 왜 이토록 위험하고 강력한 물건을 수집하려 하는지, 그리고 이 유물이 완성되었을 때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칼날 여왕의 그림자

테라도르 VIII 행성에서 뫼비우스 재단의 데이터와 유물을 노리고 습격해 온 저그 군단을 격퇴한 후, 히페리온의 연구실로 옮겨진 유물 조각들은 이곤 스텟먼의 집중적인 분석을 받았다. 스텟먼은 유물이 뿜어내는 에너지가 테란이나 프로토스의 기술력을 아득히 초월한 젤나가의 것이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지만, 동시에 그 미지의 힘에 깊은 두려움을 표했다.
그때 갑자기 함선의 모든 통신망이 강제로 차단되며 메인 화면이 기괴한 노이즈로 일그러졌다. 이내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차갑고도 익숙한 목소리가 함교 전체에 울려 퍼졌고, 레이너는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 화면을 응시할 수밖에 없었다.
화면에 나타난 것은 칼날 여왕, 사라 케리건이었다. 한때 레이너가 사랑했던 여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군단을 지배하는 괴물의 섬뜩한 미소만이 그를 반기고 있었다. 그녀의 눈빛은 우주의 모든 생명체를 집어삼킬 듯한 잔혹함으로 번뜩였다.
케리건은 자신 역시 그 고대 유물들을 찾고 있다며, 짐에게 당장 이 일에서 손을 떼라고 서늘하게 경고했다. 그녀는 유물의 힘이 군단에 위협이 될 수도, 혹은 새로운 진화의 열쇠가 될 수도 있다며 레이너의 어설픈 영웅 놀음을 비웃었다.
그는 모니터 속 그녀의 흉측한 가시뼈와 타락한 얼굴을 보며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아크튜러스 멩스크가 타르소니스에서 그녀를 저그의 소굴에 무자비하게 버려두었을 때, 끝내 그녀를 구출하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만 했던 그날의 무력감과 죄책감이 다시금 그의 영혼을 날카롭게 짓누르며 숨통을 조여왔다.
그는 주먹을 꽉 쥐고 애써 감정을 억누르며 그녀의 경고에 굴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자신이 막아야 할 우주 최악의 적이 한때 자신의 모든 것이었던 여인이라는 가혹한 현실에 깊은 절망감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통신이 끊기자 타이커스는 바닥에 침을 뱉으며 저 괴물 년은 진작에 대가리에 총알을 박아 넣었어야 했다고 거칠게 욕설을 내뱉었다. 그는 케리건이 더 이상 인간이 아니라며, 유물을 팔아치운 돈으로 강력한 무기를 사서 저그를 쓸어버리자고 주장했다.
레이너는 타이커스의 거친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어두운 함교 창밖의 별빛만을 응시했다. 유물 수집은 이제 단순한 용병 업무가 아니라, 케리건과의 피할 수 없는 숙명적인 대결로 이어지는 위험한 길이라는 것을 그는 직감하고 있었다.
타이폰의 붕괴하는 대지

다음 유물의 위치는 죽어가는 항성의 팽창으로 인해 행성 전체가 붕괴하고 있는 타이폰이었다. 지표면은 끊임없이 폭발하는 화산과 용암 강으로 뒤덮여 생지옥을 방불케 했지만, 탈다림은 이곳에서도 유물을 지키기 위해 결사적인 항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호너는 궤도 스캔 결과를 바탕으로 거대한 불길의 벽이 대륙을 휩쓸며 다가오고 있다고 다급하게 보고했다. 행성의 지각이 완전히 녹아내리기 전까지 남은 시간은 촉박했고, 단 한 번의 실수라도 발생한다면 전 병력이 용암 속으로 흔적 없이 사라질 위기였다.
레이너는 고정된 기지를 건설하는 대신, 기동성을 극대화하여 화염의 장벽보다 빠르게 전진하는 속도전을 지시했다. 해병과 불곰들은 끓어오르는 대지의 열기에 전투복 내부가 찜통처럼 달아오르는 고통을 견디며 험준한 용암 지대를 쉼 없이 내달렸다.
탈다림은 테란의 진격을 늦추기 위해 길목마다 병력을 매복시키고 결사적으로 저항했다. 하지만 생존을 위해 내달리는 레이너의 부대는 압도적인 화력을 퍼부으며 프로토스의 방어선을 단숨에 돌파했고, 뒤에서 쫓아오는 불길을 아슬아슬하게 따돌렸다.
지진으로 인해 땅이 쩍쩍 갈라지며 탈다림의 구조물과 저그의 잔해들이 시뻘건 용암 속으로 속절없이 빨려 들어갔다. 대자연의 압도적인 분노 앞에서는 프로토스의 신앙도, 저그의 흉포함도 아무런 의미가 없었고, 오직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발버둥만이 존재했다.
화염의 벽이 턱밑까지 쫓아온 절체절명의 순간, 레이너의 특공대는 마침내 마지막 방어선을 뚫고 유물이 안치된 제단에 도달했다. 그들은 쏟아지는 화산재를 뒤집어쓴 채 서둘러 유물을 컨테이너에 담고 탈출을 위한 수송선을 미친 듯이 호출했다.
수송선이 지표면에 닿기도 전에 병력들은 도약 추진기를 이용해 화물칸으로 몸을 던졌다. 수송선이 굉음을 내며 이륙하는 순간, 그들이 서 있던 제단은 거대한 용암 파도에 휩쓸려 흔적도 없이 녹아내렸고, 함선은 간발의 차이로 화염을 벗어났다.
궤도에서 타이폰 행성이 완전히 불덩어리로 변해가는 끔찍한 광경을 지켜보며, 레이너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은 시간과의 싸움에서 승리하여 유물을 손에 넣었지만, 이 위험한 임무가 언제까지 성공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뫼비우스 재단과 나루드 박사의 비밀

히페리온의 연구실에 모인 유물 조각들은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서로를 끌어당기며 스스로 결합하기 시작했다. 조각들이 완벽하게 맞물리자 눈이 부실 정도로 강렬한 에너지가 뿜어져 나왔고, 함선의 동력망이 일시적으로 과부하에 걸릴 정도였다.
스텟먼은 유물이 방출하는 파동을 분석하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것은 파괴를 위한 무기인지, 아니면 우주의 근원을 다루는 창조의 도구인지 현재의 과학 기술로는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에 속해 있다고 그는 두려움 섞인 목소리로 보고했다.
유물의 인도를 위해 레이너는 뫼비우스 재단의 책임자인 에밀 나루드 박사와 암호화된 통신을 연결했다. 화면에 나타난 나루드는 차분하고 지적인 학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그의 눈빛 이면에는 무언가 섬뜩하고 계산적인 차가움이 숨겨져 있었다.
나루드는 레이너가 보여준 탁월한 능력에 찬사를 보내며, 결합된 유물의 모습을 보고 묘한 미소를 지었다. 그의 태도는 너무나도 여유로웠고, 수많은 병력이 희생된 위험한 임무를 마치 가벼운 심부름 정도로 취급하는 듯한 오만함이 묻어났다.
레이너는 나루드에게 저그와 프로토스마저 목숨을 걸고 덤벼드는 이 위험한 유물로 대체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단도직입적으로 캐물었다. 그는 뫼비우스 재단이 단순히 학술적인 호기심만으로 이토록 막대한 자금과 피를 흘릴 리 없다고 확신했다.
나루드는 우주의 기원을 밝히고 인류의 진화를 앞당길 위대한 연구라는 모호하고 교묘한 변명으로 즉답을 피했다. 그는 과학의 발전에는 항상 위험이 따르기 마련이라며, 레이너의 의심을 한낱 용병의 과도한 호기심으로 치부하며 부드럽게 말을 돌렸다.
타이커스가 화면 앞으로 불쑥 나서며 연구 목적 따위는 알 바 없고 약속한 돈이나 내놓으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나루드는 이미 거액의 크레딧이 히페리온의 계좌로 송금되었다며 미소를 지었지만, 레이너의 마음속에 피어난 짙은 의구심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통신이 종료된 후, 레이너는 호너를 따로 불러 뫼비우스 재단과 나루드 박사의 뒷조사를 철저히 하라고 은밀히 지시했다. 이토록 막대한 자금력과 정보력을 가진 조직의 배후에 누가 있는지 알아내지 못한다면, 그들은 결국 누군가의 장기말로 쓰여 버려질 것이 분명했다.
발레리안 멩스크의 등장

뫼비우스 재단이 지정한 비밀 접선 좌표로 도약한 히페리온은 예상치 못한 엄청난 광경에 직면했다.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초라한 과학 연구선이 아니라, 웅장한 위용을 자랑하는 자치령의 최신형 전투순양함 함대였다.
레이너는 즉각 함선에 적색경보를 발령하고 모든 무장 시스템을 가동했다. 그는 타이커스가 결국 막대한 현금에 눈이 멀어 자신을 아크튜러스 멩스크에게 팔아넘겼다고 생각하며, 분노로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거대한 해병 전투복을 입은 옛 친구를 노려보았다.
함교의 분위기가 일촉즉발의 긴장감으로 얼어붙은 가운데, 자치령 함대의 기함에서 통신이 걸려왔다. 화면에 나타난 인물은 아크튜러스가 아니라, 금발 머리에 세련되고 귀족적인 이목구비를 가진 젊은 청년이었다.
청년은 예의 바른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자치령의 황태자, 발레리안 멩스크라고 소개했다. 그는 놀라움에 휩싸인 레이너를 향해 자신이 바로 뫼비우스 재단의 진정한 소유주이자, 막대한 자금을 대어 유물 수집을 의뢰한 배후 인물이라고 당당하게 밝혔다.
레이너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권총 홀스터로 손을 뻗었다. 수년 동안 멩스크 가문의 독재에 맞서 피 흘리며 싸워왔는데, 그토록 혐오하는 적의 아들을 위해 목숨을 걸고 용병 노릇을 해왔다는 사실에 엄청난 배신감과 굴욕감을 느꼈다.
타이커스는 이 엄청난 반전 앞에서도 놀라는 기색 하나 없이 여유롭게 시가를 씹고 있었다. 레이너는 타이커스의 평온한 태도를 보며, 어쩌면 그가 처음부터 이 모든 진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자신을 속여 이 위험한 함정으로 끌어들였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품었다.
발레리안은 레이너의 끓어오르는 적대감을 예상했다는 듯 평온한 목소리로 무기를 거두라고 권유했다. 그는 자신이 아버지와는 다른 길을 걷고자 하며, 자치령의 폭정이 아닌 인류의 구원을 위해 레이너의 힘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설득하기 시작했다.
레이너는 발레리안의 달콤한 말을 믿을 수 없었다. 멩스크라는 이름표를 단 자의 입에서 나오는 평화와 구원이라는 단어는 그에게 끔찍한 위선으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압도적인 자치령 함대 앞에서 당장 무력으로 상황을 타개할 방법은 없었다.
구원의 가능성과 레이너의 갈등

발레리안은 레이너의 불신 가득한 시선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충격적인 제안을 던졌다. 그는 완성된 젤나가 유물이 저그의 감염을 역전시킬 수 있는 기적적인 힘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통해 칼날 여왕을 다시 인간으로 되돌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함교에는 숨막히는 정적이 감돌았다. 레이너의 머릿속은 발레리안이 내뱉은 '인간으로 되돌린다'는 말에 의해 거세게 요동쳤다. 그것은 그가 수년 동안 감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가슴 깊은 곳에 묻어두었던, 가장 간절하고도 고통스러운 소원이었다.
하지만 이내 이성이 차갑게 분노를 일깨웠다. 아크튜러스 멩스크는 타르소니스에서 사라 케리건을 저그의 아가리에 던져버린 장본인이었다. 그런 악당의 핏줄이 이제 와서 그녀를 구원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너무나도 앞뒤가 맞지 않는 기만극처럼 느껴졌다.
레이너는 발레리안을 향해 네 아버지가 버린 여자를 왜 네가 구하려 하느냐며 차갑게 쏘아붙였다. 그는 이 모든 것이 칼날 여왕을 제거하기 위해 자신을 이용하려는 자치령의 교활한 함정일 뿐이라며 멩스크 가문에 대한 뿌리 깊은 혐오를 숨기지 않았다.
발레리안은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자신이 아크튜러스보다 더 훌륭한 지도자라는 것을 온 우주에 증명하고 싶다고 대답했다. 아버지가 만들어낸 최악의 괴물을 아들인 자신이 구원함으로써, 자치령의 새로운 시대와 진정한 평화를 열겠다는 야심 찬 포부였다.
레이너는 함교를 서성거리며 극심한 내적 갈등에 휩싸였다. 멩스크라는 이름에 대한 증오심은 당장이라도 저 황태자의 목을 조르고 싶게 만들었지만, 사면에 비친 유물의 푸른빛은 그에게 사라를 끔찍한 악몽에서 건져낼 수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속삭이고 있었다.
그는 유물을 바라보며 이것이 단순한 무기나 돈벌이 수단이 아니라, 자신의 가장 큰 죄책감을 씻어내고 사랑했던 여인을 되찾을 수 있는 유일한 열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괴로워했다. 하지만 그 희망의 대가로 악마의 아들과 손을 잡아야 한다는 현실이 그를 짓눌렀다.
레이너는 발레리안의 제안을 즉각 수락하지 않았다. 그는 굳게 다문 입술과 차가운 눈빛으로 화면 너머의 젊은 멩스크를 응시하며, 이 위험천만한 도박이 인류의 구원이 될지 아니면 모두를 파멸로 몰아넣을 끔찍한 함정이 될지 깊은 고뇌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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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너가 멩스크 가문의 제안을 듣게 되다니, 히페리온의 앞날이 정말 폭풍전야 같네요. 타이커스는 여전히 속을 알 수 없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