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크래프트 연대기 5화 · 마 사라의 마지막 근무
이 글의 목차
원작의 사건을 바탕으로 새로 쓴 팬 서사입니다. 인물의 감정과 대사, 장면의 분위기는 재구성했으며 주요 결말을 포함합니다.
차우 사라의 잿빛 그림자

짐 레이너는 낡은 보안관 사무실의 모니터 너머로 쏟아지는 참혹한 영상을 말없이 응시했다. 이웃 행성 차우 사라의 지표면이 거대한 황금빛 함대의 궤도 폭격으로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화면 속에서 솟구치는 화염은 통신 노이즈와 섞여 기괴한 파열음을 냈고, 그의 거친 손가락은 책상 모서리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저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대장님?" 젊은 민병대원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레이너는 대답 대신 마른세수를 하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외계 함대가 갑자기 나타나 행성 전체를 불태웠다는 소식은 마 사라 주민들을 극도의 공포로 몰아넣기에 충분했다. 거리에서는 이미 피난처를 찾는 사람들의 비명과 고함이 뒤엉키고 있었다.
연합의 공식 채널은 철저하게 침묵을 지켰다. 차우 사라의 끔찍한 최후에 대해 어떤 경고나 대피 명령도 내려오지 않았고, 마 사라의 행정관 역시 본부와의 연결이 끊어졌다며 절망적인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레이너는 창밖으로 보이는 붉은 황무지를 바라보며, 이 고립된 행성에 곧 닥쳐올 재앙의 그림자를 직감했다.
불안감은 곧 현실이 되었다. 외곽 정착지에서 기이한 생물체들을 목격했다는 보고가 빗발치기 시작한 것이다. 들개보다 크고 날카로운 발톱을 가진 괴물들이 가축을 찢어발기고 사람들을 공격한다는 소식에 레이너는 즉각 무장을 지시했다. 그는 구형 가우스 소총의 장전 손잡이를 당기며 굳은 결의를 다졌다.
"연합 놈들이 우릴 버렸다면, 우리 스스로 살아남는 수밖에 없어." 레이너의 목소리는 낮지만 단호했다. 그는 공포에 질린 민병대원들의 어깨를 일일이 두드리며 그들의 흔들리는 눈빛을 다잡았다. 차우 사라의 불길이 마 사라까지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움직여야만 했다.
통신 콘솔에서 날카로운 경고음이 울렸다. 백워터 기지였다. 다급한 구조 요청과 함께 들려오는 끔찍한 파열음과 비명소리는 사태의 심각성을 말해주고 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들이 기지 방어선을 돌파했다는 마지막 보고를 끝으로 통신은 완전히 끊어지고 말았다.
레이너는 즉시 민병대 타격대를 소집하고 수송 차량에 시동을 걸었다. 그때, 연합 사령부로부터 백워터 기지에 대한 모든 접근을 불허한다는 긴급 명령이 하달되었다. 상황을 통제 중이니 민병대는 대기하라는 기계적인 음성이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레이너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렸다.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는데 통제는 무슨 얼어죽을 통제야!" 그는 통신기를 거칠게 끄며 운전대를 잡았다. 연합의 명령을 어기는 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눈앞에서 죽어가는 이웃들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레이너의 차량은 흙먼지를 일으키며 백워터 기지를 향해 전속력으로 내달렸다.
백워터 기지의 참상과 결단

백워터 기지에 도착한 레이너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지옥 그 자체였다. 기지의 금속 외벽은 기괴한 보라색 점막으로 뒤덮여 있었고, 그 위로 끔찍하게 변이된 생물체들이 꿈틀거렸다. 공기 중에는 피비린내와 함께 코를 찌르는 산성액의 악취가 진동하여 숨을 쉬기조차 어려웠다.
"사격 개시! 놈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막아!" 레이너의 고함과 함께 가우스 소총이 불을 뿜었다. 짐승의 뼈와 살로 이루어진 괴물들, 저그가 맹렬한 속도로 달려들었다. 날카로운 발톱이 민병대원의 방어구를 찢는 소리와 고통스러운 비명이 흙먼지 속에서 어지럽게 교차했다.
레이너는 침착하게 방아쇠를 당기며 전선을 유지했다. 그의 총구에서 뿜어져 나온 총탄이 저글링의 두개골을 꿰뚫을 때마다 검붉은 체액이 사방으로 튀었다. 하지만 놈들의 수는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기지 중심부에 자리 잡은 사령부는 이미 기괴한 생체 구조물로 변모하여 끔찍한 맥박을 뛰게 하고 있었다.
"대장님, 사령부 안에 생존자가 없습니다! 건물이 완전히... 괴물로 변했습니다!" 정찰을 다녀온 대원의 보고에 레이너는 이를 악물었다. 감염된 사령부에서는 끊임없이 새로운 괴물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저 흉측한 둥지를 파괴하지 않는 한, 이 전투에서 승리할 수도, 남은 주민들을 구할 수도 없었다.
레이너는 허리춤에서 폭약을 꺼내 들며 대원들에게 엄호를 지시했다. 그는 빗발치는 산성액을 아슬아슬하게 피하며 감염된 사령부의 외벽으로 돌진했다. 끈적이는 점막이 군화 밑창에 달라붙어 걸음을 방해했지만, 그는 멈추지 않고 건물의 가장 취약한 틈새에 폭약을 밀어 넣었다.
"전원 엎드려!" 레이너가 몸을 날려 참호 속으로 뛰어드는 순간,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사령부가 산산조각 났다. 살점이 타들어가는 냄새와 함께 괴물들의 단말마가 울려 퍼졌고, 기지를 뒤덮고 있던 기괴한 점막이 서서히 말라붙기 시작했다. 치열했던 전투가 마침내 끝을 맺는 순간이었다.
흙먼지를 털며 일어난 레이너는 숨을 헐떡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살아남은 민병대원들은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그들의 눈빛에는 안도감이 서려 있었다. 비록 기지는 파괴되었지만, 더 이상의 감염이 확산되는 것은 막아냈다. 레이너는 피 묻은 소총을 내려놓으며 땀방울을 닦아냈다.
하지만 승리의 기쁨도 잠시, 잿빛 하늘 위로 연합의 수송선 편대가 굉음을 내며 모습을 드러냈다. 전투가 한창일 때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연합군이 상황이 종료되자마자 나타난 것이다. 레이너는 수송선에서 쏟아져 나오는 중무장한 해병들을 바라보며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부서진 신뢰와 구금실의 밤

육중한 장갑복을 입은 연합의 해병들이 레이너와 민병대원들을 둥글게 포위했다. 그들의 총구는 방금 전까지 저그와 싸웠던 마 사라의 생존자들을 겨누고 있었다. 레이너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앞으로 나서며 연합군 지휘관을 향해 상황을 설명하려 했지만, 돌아온 것은 차가운 금속성의 경고뿐이었다.
"짐 레이너, 너를 연합의 핵심 시설을 무단으로 파괴하고 반역을 꾀한 혐의로 체포한다." 에드먼드 듀크 장군의 거친 목소리가 확성기를 타고 울려 퍼졌다. 레이너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괴물들로부터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 대가가 반역죄라는 사실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시설이 감염되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우리가 아니었다면 마 사라 전체가 저 괴물들에게 넘어갔을 거라고요!" 레이너가 주먹을 쥐고 항변했지만, 듀크 장군은 코웃음을 칠 뿐이었다. 연합에게 중요한 것은 변방 행성 주민들의 목숨이 아니라, 그들의 자산이 파괴되었다는 사실 그 자체였다.
분노한 민병대원들이 무기를 들어 올리며 험악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당장이라도 유혈 사태가 벌어질 것 같은 일촉즉발의 상황 속에서, 레이너는 갈등했다. 여기서 연합군과 교전을 벌인다면 자신을 따르는 대원들은 모두 개죽음을 당할 것이 뻔했다. 그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누르며 천천히 총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무기를 버려라. 저들의 명령에 따라." 레이너의 지시에 대원들은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그의 단호한 눈빛에 결국 하나둘씩 무기를 내려놓았다. 연합 해병들이 거칠게 다가와 레이너의 양팔을 구속하고 수갑을 채웠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그의 피부에 닿는 순간, 연합에 대한 마지막 남은 신뢰마저 산산조각 났다.
차가운 구금실 바닥에 앉은 레이너는 멍하니 철창 밖을 응시했다. 수년간 보안관으로서 법과 질서를 지키기 위해 헌신했던 자신의 삶이 철저히 부정당한 기분이었다. 연합은 부패했고, 그들은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서라면 무고한 시민들을 얼마든지 사지로 내몰 수 있는 집단이었다.
구금실 밖에서는 저그의 침공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절망적인 소식이 간헐적으로 들려왔다. 마 사라의 방어선은 무너지고 있었고, 연합은 행성을 포기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레이너는 자신의 무력함에 뼈저린 좌절감을 느꼈다. 밖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때, 구금실의 무거운 철문이 굉음을 내며 열렸다. 연합의 해병이 아닌, 낯선 문장이 새겨진 장갑복을 입은 병사들이었다. 그들 뒤로 통신기를 든 남자가 다가와 레이너에게 손을 내밀었다. "코랄의 후예에서 왔소. 아크튜러스 멩스크의 이름으로 당신을 구출하러 왔지." 그것은 새로운 운명의 시작이었다.
새로운 동맹과 마 사라 탈출

레이너는 자신을 구출한 코랄의 후예 병사들과 함께 마 사라의 연합 기밀 기지인 야곱 기지(Jacobs Installation)를 습격하기로 결정했다. 멩스크는 행성이 프로토스에 의해 정화되기 전에 그곳에 숨겨진 연합의 무기 연구 데이터를 확보하라는 임무를 내렸고, 레이너는 기꺼이 이에 동참했다.
야곱 기지 내부는 삼엄한 경비가 펼쳐져 있었지만, 레이너와 민병대원들은 연합군의 방어선을 뚫고 기지 깊숙한 곳으로 침투했다. 레이너는 중앙 컴퓨터실에서 연합의 극비 데이터 디스크를 손에 넣는 데 성공했다. 이 디스크에는 훗날 연합의 운명을 뒤흔들 무시무시한 기술인 사이오닉 방출기의 설계도가 담겨 있었다.
데이터를 확보한 레이너 일행은 서둘러 기지를 빠져나와 대기 중이던 코랄의 후예 수송선에 탑승했다. 마 사라의 행정관과 남은 주민들도 이미 수송선에 안전하게 대피한 상태였다. 레이너는 피 묻은 소총을 내려놓으며 마침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수송선이 대기권을 벗어나는 순간, 프로토스의 황금빛 함대가 마 사라 상공에 진형을 갖추고 주포를 발사하기 시작했다. 거대한 불기둥이 행성 표면을 뒤덮으며 고향 행성이 잿더미로 변해가는 광경을 창밖으로 지켜보며, 레이너는 주먹을 꽉 쥐었다.
코랄의 후예 지휘함에 오른 레이너는 마침내 아크튜러스 멩스크와 대면했다. 멩스크는 레이너의 활약을 치하하며 그를 환영했다. "당신이 가져온 데이터는 연합을 무너뜨릴 강력한 열쇠가 될 것이오." 멩스크의 목소리는 확신에 차 있었다.
레이너는 멩스크의 카리스마에 감명받으면서도, 그의 차가운 눈빛 뒤에 숨겨진 야망을 경계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연합에 맞서 싸울 유일한 동맹이었기에 그의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함선은 다음 목적지인 안티가 프라임으로 향하는 워프에 진입했다. 레이너는 고향을 잃은 슬픔과 분노를 가슴 깊이 묻어두고, 다가올 새로운 전장을 준비하며 무기를 정비했다.
마 사라에서의 탈출은 끝이 아닌 새로운 전쟁의 시작이었다. 레이너는 우주 너머로 펼쳐진 어둠을 바라보며, 자신과 주민들의 운명이 어디로 흘러갈지 깊은 고뇌에 잠겼다.
안티가 프라임에 피어오르는 반란

코랄의 후예 함대는 연합의 압제에 신음하는 안티가 프라임 궤도에 안착했다. 멩스크는 이곳을 반란의 교두보로 삼고자 했고, 레이너에게 현지 민병대와 접선하여 연합 전초기지를 무력화하는 임무를 맡겼다.
작전 브리핑실에서 레이너는 붉은 머리를 묶고 유령 요원 슈트를 입은 여성과 처음 마주했다. 멩스크의 최정예 요원, 사라 케리건이었다. 케리건은 레이너를 보자마자 그의 머릿속 생각을 읽고는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알아, 촌뜨기. 멍청한 생각은 속으로만 해"라며 차갑게 쏘아붙였다.
레이너는 텔레파시 능력자의 등장에 당황하면서도 그녀의 당찬 모습에 묘한 매력을 느꼈다. 두 사람은 서먹한 분위기 속에서 안티가 프라임의 연합군을 몰아내기 위한 공동 작전에 나섰다.
케리건은 은신 상태로 침투해 연합군 장교들을 소리 없이 암살했고, 레이너는 민병대를 이끌고 정면에서 화력을 지원했다. 비록 첫 만남은 삐걱거렸지만, 전장에서 보여준 서로의 뛰어난 실력에 두 사람은 조금씩 신뢰를 쌓아가기 시작했다.
작전 대기 중, 레이너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너무 차갑게 굴지 마. 당신도 사람들을 구하고 싶어서 이 일을 하는 거잖아?" 케리건은 헬멧을 벗고 복잡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내 머릿속에 들어오지 마, 짐. 난 그저 멩스크의 명령을 따를 뿐이야."
레이너는 그녀의 방어적인 태도 너머에 숨겨진 죄책감과 고독을 읽을 수 있었다. 연합의 유령 요원으로 살아가며 겪었을 끔찍한 기억들이 그녀를 옭아매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는 더 이상 캐묻지 않고 묵묵히 소총을 점검했다.
연합군의 통신망이 마비되고 지휘관들이 차례로 암살당하자, 억눌려 있던 시민들의 분노가 일제히 폭발하며 거대한 반란의 불길이 치솟았다. 레이너가 이끄는 반란군은 혼란에 빠진 연합군 방어선을 단숨에 돌파했다.
케리건이 사령부 옥상에서 연합의 깃발을 찢어 던지는 순간, 안티가 프라임의 시민들은 환호성을 내질렀다. 하지만 승리의 기쁨은 안티가 프라임 상공에 나타난 거대한 그림자, 연합의 알파 전대 소속 전투순양함 노라드 2호에 의해 금세 사그라졌다.
추락한 맹견과 멩스크의 계산

노라드 2호의 위협적인 강하는 오래가지 못했다. 대기권을 돌파하던 전투순양함은 갑작스럽게 쏟아진 저그 비행체들의 자폭 공격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거대한 함선은 검은 연기를 뿜어내며 궤도를 이탈했고, 안티가 프라임의 황량한 협곡 한가운데로 곤두박질치며 엄청난 폭발을 일으켰다.
멩스크의 작전 회의실에 노라드 2호의 추락 소식이 전해졌다. 스크린에는 저그 군단에 겹겹이 포위되어 고립된 함선의 처참한 몰골이 비치고 있었다. 멩스크는 턱을 괸 채 화면을 응시하더니, 믿을 수 없는 명령을 내렸다. "레이너, 케리건. 즉시 병력을 이끌고 노라드 2호로 가서 에드먼드 듀크 장군을 구출하시오."
"지금 제정신입니까?" 레이너가 책상을 강하게 내리치며 격렬하게 반발했다. "듀크는 마 사라에서 절 체포하고 사람들을 죽게 내버려 둔 쓰레기입니다! 저런 놈을 구하러 우리 병력의 목숨을 걸라고요?" 그의 목소리에는 억누를 수 없는 분노가 서려 있었다.
케리건 역시 팔짱을 낀 채 차가운 시선으로 멩스크를 쏘아보았다. "저도 반대합니다. 듀크는 연합의 맹견입니다. 그를 살려둔다 해도 우리에게 총구를 겨눌 것이 뻔합니다. 저그의 먹이로 내버려 두는 것이 전략적으로도 타당합니다." 두 사람의 강력한 항의에도 멩스크의 표정은 흔들림이 없었다.
"감정적으로 굴지 마시오, 두 사람." 멩스크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연합을 무너뜨리는 것이오. 듀크의 알파 전대는 연합 내에서도 막강한 무력이고, 그가 가진 연합의 핵심 보안 코드는 타소니스의 방어망을 뚫는 데 필수적이오."
멩스크는 레이너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그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나 역시 그를 혐오하지만, 대의를 위해서는 악마와도 손을 잡아야 할 때가 있는 법이오. 듀크를 살려서 내 앞에 데려오시오. 그를 우리의 사냥개로 만들 테니." 그 냉혹하고 계산적인 눈빛에 레이너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레이너는 멩스크의 손을 거칠게 쳐내며 뒤로 물러섰다. 대의라는 명분 아래 과거의 원수마저 도구로 삼으려는 그의 잔혹한 실용주의는 레이너의 신념과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었다. 하지만 코랄의 후예에 몸담고 있는 이상, 사령관의 명령을 거역할 수는 없었다.
"명령이라면 따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결정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사령관님 스스로 책임지셔야 할 겁니다." 레이너는 차갑게 내뱉고는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케리건 역시 굳은 표정으로 그의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은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멩스크의 진정한 목적에 대한 깊은 의구심을 공유하고 있었다.
원수를 구출하는 불편한 동행

노라드 2호가 추락한 협곡은 이미 저그의 거대한 둥지로 변해 있었다. 레이너와 케리건이 이끄는 타격대는 사방에서 포위해 오는 저글링 떼의 날카로운 발톱과 히드라리스크가 뿜어내는 뼈가시 공격을 뚫고 한 걸음씩 전진했다. 찢겨나간 장갑판 사이로 뿜어져 나오는 화염과 저그 점막의 악취가 진동하는 가운데, 구출 작전은 말 그대로 지옥도를 걷는 것과 같았다.
함선 내부에 진입한 그들은 무너진 잔해에 깔려 신음하는 에드먼드 듀크 장군을 발견했다. 그의 화려했던 군복은 피와 기름으로 얼룩져 있었고, 오만했던 얼굴에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짙게 깔려 있었다. 레이너는 그 비참한 몰골을 내려다보며 총구를 그의 머리에 겨누고 싶은 충동을 가까스로 억눌렀다.
"꼴이 말이 아니군, 장군. 마 사라에서 날 체포할 때의 그 기세는 어디 갔나?" 레이너의 비아냥에 듀크는 고통스러운 기침을 토해내며 눈을 부릅떴다. "네놈 따위의 도움은 필요 없다, 반역자 놈아! 연합의 구조대가 곧 도착할 것이다!" 듀크의 허세에 케리건이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
"당신네 연합은 이미 당신을 버렸어, 듀크. 밖에는 저그가 우글거리고, 당신을 구하러 올 함선은 존재하지 않아." 케리건이 듀크의 멱살을 틀어쥐고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멩스크 사령관이 당신에게 자비를 베풀기로 했지. 코랄의 후예에 합류하든가, 아니면 여기서 저그의 밥이 되든가. 선택해."
듀크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평생을 충성했던 연합에게 버림받았다는 사실과 눈앞에 닥친 죽음의 공포가 그의 오만함을 무너뜨렸다. 그는 굴욕감에 입술을 깨물며 쉰 목소리로 대답했다. "...좋다. 멩스크에게 전해라. 알파 전대는 코랄의 후예와 함께하겠다고."
구조된 듀크가 멩스크의 지휘함에 오르는 모습을 보며, 레이너와 케리건은 지휘실 구석에서 팔짱을 낀 채 불쾌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멩스크는 듀크의 합류를 크게 반기며 그에게 새로운 지휘권을 부여했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는 이 기만적인 상황은 두 사람의 속을 뒤집어 놓기에 충분했다.
"저 늙은 뱀을 믿는 건 미친 짓이야. 언젠가 우리의 등 뒤에 칼을 꽂을 게 분명해." 레이너가 낮게 으르렁거리자, 케리건이 그의 곁으로 다가와 조용히 동의했다. "멩스크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이용하는 거야. 그에게 중요한 건 오직 권력과 복수뿐이니까. 우린 조심해야 해, 짐."
두 사람은 서로의 눈을 마주 보았다. 처음 만났을 때의 경계심은 사라지고, 이제는 이 혼란스럽고 위험한 상황 속에서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동료로서의 끈끈한 유대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 괴물 같은 저그와 부패한 연합, 그리고 속을 알 수 없는 멩스크 사이에서 그들이 살아남을 방법은 서로를 의지하는 것뿐이었다.
악마의 도구와 다가오는 파멸

안티가 프라임의 연합군 잔당을 완전히 소탕하기 위해, 멩스크는 마 사라의 야곱 기지에서 훔쳐낸 설계도로 제작한 '사이오닉 방출기'를 실전에 투입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 장치는 유령의 사이오닉 신호를 모방하여 저그를 유인하는 끔찍한 무기였다.
케리건은 이 장치를 연합군 기지 깊숙한 곳에 설치하는 임무를 맡았고, 레이너는 그녀를 엄호했다. 장치가 작동하자 케리건은 머리를 감싸 쥐며 고통을 호소했다. "윽... 이 파장... 내 머릿속을 헤집어놓고 있어. 유령 요원들의 신경망을 강제로 자극하는 신호야."
레이너는 고통받는 그녀를 부축하며 멩스크의 잔혹한 계획에 치를 떨었다. "사령관님, 이 괴물들을 불러들이는 장치를 무기로 쓰겠다는 겁니까? 이건 학살입니다!" 레이너가 무전기로 항변했지만, 멩스크는 냉혹하게 답했다.
"연합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라면 나는 그 어떤 무기라도 사용할 것이오. 장치를 가동하고 즉시 귀환하시오. 타소니스로 갈 준비를 해야 하니." 멩스크의 목소리에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 순간, 레이너의 머릿속에 끔찍한 퍼즐 조각들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연합이 왜 유령 요원들을 양성했는지, 왜 변방 식민지에 저그가 나타났는지. 모든 것이 이 사이오닉 방출기를 실험하기 위한 연합의 잔혹한 계획이었고, 이제 멩스크는 그 악마의 도구를 자신의 손에 쥐고 똑같은 짓을 벌이려 하고 있었다.
방출기의 신호를 받은 저그 군단이 안티가 프라임의 연합군 기지를 덮쳤고, 연합군은 비명 속에 궤멸당했다. 멩스크는 이 성공에 만족하며 다음 목표인 연합의 수도 행성, 타소니스로 향할 준비를 시작했다.
홀로그램이 사라진 후, 통제실에는 무거운 침묵만이 감돌았다. 케리건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방출기가 불러온 참상을 불안한 눈빛으로 바라보았고, 레이너는 그 장치가 불러올 더 큰 학살극을 예감하며 주먹을 꽉 쥐었다.
두 사람은 무거운 발걸음으로 안티가 프라임을 빠져나왔다. 안티가 프라임의 밤하늘 너머로, 다가올 타소니스의 비극이 짙은 먹구름처럼 몰려오고 있었다.
댓글 1
연합의 부패를 목격하며 멩스크의 대의에 합류하는 레이너의 심리 변화가 인상적입니다. 원작의 캠페인 전개와 비교했을 때, 레이너가 듀크 장군을 구출하는 과정에서 느낀 회의감을 서사적으로 어떤 장치로 더 강조하려 하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