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크래프트 연대기 8화 · 그림자의 칼이 고향을 드러내다
이 글의 목차
원작의 사건을 바탕으로 새로 쓴 팬 서사입니다. 인물의 감정과 대사, 장면의 분위기는 재구성했으며 주요 결말을 포함합니다.
차 행성에 드리운 군단의 그림자

화산재가 흩날리는 차 행성의 붉은 대지 위에서 태사다르는 눈을 감고 깊은 명상에 잠겼다. 그의 사이오닉 감각은 행성 전체를 뒤덮은 저그의 흉측한 생체 신호들을 낱낱이 훑고 지나갔다. 끔찍한 악취와 열기 속에서도 고위 기사의 정신은 흔들림 없이 적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 심연으로 향했다.
끝없이 밀려드는 저그 무리의 이면에는 거대하고 단일한 의지가 똬리를 틀고 있었다. 태사다르는 그 거대한 정신의 바다에서 저그 군단이 움직이는 끔찍한 통제 구조를 엿보았다. 초월체라 불리는 절대적인 존재가 꼭대기에 군림하고, 그 아래로 무리를 지휘하는 하위 개체들이 신경망처럼 뻗어 있었다.
수억 마리의 저글링과 히드라리스크는 그저 손발에 불과했다. 그들을 아무리 베어내고 불태워도 군단의 진격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절망적인 진실이 태사다르의 뇌리를 스쳤다. 저그는 개별적인 생명체가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였고, 말단의 상처는 순식간에 새로운 살점으로 덮일 뿐이었다.
태사다르의 의식은 더욱 깊은 곳으로 파고들어 초월체의 명령을 중계하는 거대한 결절들을 찾아냈다. 정신체라 불리는 이 흉측한 지휘관들은 각자의 무리를 통제하며 초월체의 의지를 현실의 폭력으로 구현하고 있었다. 군단의 무한한 재생력을 끊어내려면 반드시 저 정신체들을 파괴해야만 했다.
하지만 고위 기사의 강력한 사이오닉 폭풍조차 정신체의 육신을 일시적으로 찢어놓을 뿐, 그들의 본질적인 생명력을 소멸시키지는 못했다. 태사다르는 칼라의 빛나는 에너지로는 초월체와 연결된 저들의 어두운 결속을 끊을 수 없음을 깨달았다. 완전히 다른 종류의 힘, 심연을 가를 칼날이 필요했다.
절망과 고뇌가 교차하는 순간, 태사다르의 감각에 이질적인 파동이 감지되었다. 칼라의 조화로운 빛과는 전혀 다른, 차갑고도 묵직한 공허의 기운이 화산재 너머에서 일렁이고 있었다. 그것은 저그의 흉측한 기운도, 프로토스 본대의 익숙한 에너지도 아닌 완전히 낯선 그림자의 발걸음이었다.
태사다르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기운이 느껴지는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짙은 어둠 속에서 공간이 일그러지며 누군가의 형상이 어렴풋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수백 년 동안 아이어에서 추방되어 잊혀졌던 존재들, 암흑 기사단의 기운이 이 척박한 지옥의 행성에서 그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적대감보다는 호기심과 경외감이 태사다르의 마음을 채웠다. 대의회는 그들을 이단이라 부르며 멸시했지만, 지금 이 순간 태사다르의 눈에 비친 그림자는 군단의 무한한 굴레를 끊어낼 유일한 희망처럼 보였다. 그는 무기를 거두고 조용히 침묵하며 다가오는 그림자의 주인을 맞이할 준비를 마쳤다.
빛과 어둠의 낯선 교차

일그러지던 공간이 안정되며 녹색 안광을 번뜩이는 암흑 기사 제라툴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몸을 감싼 낡은 천과 뼈 장신구는 아이어의 화려한 황금 갑옷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뿜어져 나오는 기백만큼은 그 어떤 고위 기사보다도 날카로웠다. 제라툴은 경계하는 듯하면서도 차분한 걸음으로 다가왔다.
태사다르는 칼라의 빛을 거두고 두 손을 펼쳐 적의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제라툴은 고위 기사의 유연한 태도에 약간의 놀라움을 느끼며 걸음을 멈추었다. 오랜 세월 프로토스 제국으로부터 핍박받아온 네라짐이었기에, 아이어의 집행관이 보여주는 이토록 평화로운 환대는 무척이나 낯선 경험이었다.
제라툴은 낮고 쉰 목소리로 자신과 네라짐 형제들이 이 행성에 온 이유를 밝혔다. 그들 역시 우주를 집어삼키려는 저그의 끔찍한 위협을 감지하고 차 행성으로 숨어들어 적의 약점을 찾고 있었다. 비록 고향에서 추방당한 자들이었으나, 프로토스의 생존을 바라는 마음만큼은 아이어의 동족들과 같았다.
태사다르는 제라툴의 말에 깊이 공감하며 자신이 파악한 군단의 구조와 정신체의 불사성에 대해 털어놓았다. 칼라의 에너지로는 그들을 영구히 죽일 수 없다는 뼈아픈 실패의 경험도 숨기지 않았다. 제라툴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손목에서 피어오르는 어두운 공허의 에너지를 응시했다.
제라툴은 초월체와 저그 군단을 결속시키는 힘의 본질이 네라짐이 다루는 공허의 에너지와 매우 유사하다고 설명했다. 칼라의 빛이 질서와 조화를 상징한다면, 공허는 혼돈과 파괴를 품은 우주의 어두운 이면이었다. 오직 같은 근원의 힘만이 초월체의 보호막을 뚫고 정신체의 영혼을 벨 수 있었다.
태사다르는 대의회의 가르침을 넘어선 새로운 진리에 눈을 떴다. 빛과 어둠은 서로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의 균형을 이루는 두 개의 축이었다. 그는 제라툴에게 칼라의 지혜를 나누고, 제라툴은 태사다르에게 공허의 신비를 가르치며 두 세력 간의 오랜 반목을 뛰어넘는 위대한 결속이 시작되었다.
두 영웅은 즉각적인 동맹을 맺고 군단의 심장부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힐 계획을 세웠다. 태사다르와 아이어의 병력들이 전면에서 저그의 시선을 끄는 동안, 제라툴이 그림자 속으로 잠입해 정신체를 암살한다는 대담한 작전이었다. 실패하면 모두가 끔찍한 최후를 맞이하겠지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차 행성의 붉은 하늘 위로 번개가 내리치며 두 프로토스의 결의를 비추었다. 태사다르의 푸른 안광과 제라툴의 녹색 안광이 교차하는 순간, 수백 년간 이어져 온 프로토스의 분열이 이 지옥 같은 전장에서 봉합되고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군단의 오만한 지휘관들에게 진정한 죽음의 공포를 선사하는 것뿐이었다.
핏빛 전장의 오만한 지휘관들

화산 지대의 험준한 협곡에서 태사다르가 이끄는 프로토스 부대가 맹렬한 공격을 시작했다. 광전사들의 사이오닉 검이 저글링의 껍질을 찢고, 용기병의 반물질 탄환이 히드라리스크의 진형을 무너뜨렸다. 이는 제라툴이 잠입할 틈을 만들기 위한 치밀한 양동 작전이었으나, 전투의 규모는 순식간에 거대해졌다.
그 선봉에는 새롭게 태어난 감염된 칼날 여왕, 케리건이 서 있었다. 등 뒤로 돋아난 칼날 같은 뼈 날개와 초록빛 피부를 지닌 그녀는, 과거 테란 유령 요원 시절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막강한 사이오닉 에너지를 뿜어내며 전장을 유린했다. 제루스의 원시 저그 정수를 흡수하기 전, 오직 초월체의 감염을 통해 다시 태어난 그녀의 눈동자에는 군단에 대한 충성과 잔혹한 희열이 가득했다.
케리건이 손을 뻗자 붉은 번개가 섞인 사이오닉 폭풍이 프로토스 진영을 덮쳤다. 고위 기사들의 전유물이었던 끔찍한 에너지가 광전사들의 보호막을 찢고 육신을 태워버렸다. 태사다르는 동족들의 비명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전선을 유지하며, 저그의 시선이 오직 자신들에게만 쏠리도록 전력을 다해 싸웠다.
가름 무리를 지휘하는 정신체 자스는 케리건의 독단적인 행동에 불만을 품고 자신의 무리를 더욱 거칠게 몰아붙였다. 거대하고 흉측한 고기 덩어리 형상의 자스는 안전한 둥지에서 텔레파시로 저글링 떼를 지휘하며 프로토스를 압살하려 했다. 자스의 오만함은 스스로를 완벽한 불사신이라 믿는 데서 기인했다.
케리건과 자스 사이에는 묘한 신경전이 흐르고 있었다. 초월체의 총애를 받는 새로운 피조물과 오랜 세월 군단을 지휘해 온 늙은 정신체는 서로의 방식을 경멸했다. 자스는 케리건이 지나치게 인간적인 오만에 빠져 있다고 여겼고, 케리건은 자스의 단순하고 무식한 전술을 비웃으며 독자적으로 적을 도륙했다.
초월체는 두 지휘관의 갈등을 묵인하며 케리건의 성장을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프로토스라는 강력한 적과의 전투는 그녀의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완벽한 시험대였다. 저그 군단은 압도적인 물량으로 프로토스 부대를 서서히 포위해 들어갔고, 태사다르의 병력은 계획대로 조금씩 뒤로 물러나며 적을 깊숙이 유인했다.
자스는 승리가 눈앞에 다가왔다고 확신하며 가름 무리의 방어선을 풀고 모든 병력을 전선으로 투입했다. 둥지를 지키던 소수의 호위 병력마저 공격에 가담하자, 자스의 본체는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고 말았다. 그것은 태사다르가 치밀하게 계산한 함정이었고, 오만한 정신체는 그 미끼를 덥석 물어버린 것이다.
핏빛 하늘 아래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살육전의 소음이 자스의 감각을 가득 채우고 있을 때, 둥지 주변의 짙은 어둠 속에서 미세한 공간의 일그러짐이 발생했다. 프로토스와 저그가 뒤엉킨 전장의 열기에 가려져, 그 누구도 죽음의 그림자가 정신체의 턱밑까지 다가왔음을 알아채지 못했다. 사냥의 시간이 다가왔다.
심연의 칼날이 불사를 베다

전장의 광기가 절정에 달한 순간, 제라툴은 그림자와 동화되어 자스의 둥지 깊숙한 곳까지 잠입하는 데 성공했다. 끈적한 점막과 부글거리는 산성 웅덩이를 피해 소리 없이 이동하는 그의 발걸음은 유령보다도 은밀했다. 암흑 기사의 녹색 안광이 거대한 맥박을 뿜어내는 정신체 자스의 흉측한 본체를 응시했다.
자스는 전장의 상황을 통제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수백만 마리의 가름 무리 개체들이 보내오는 감각 정보가 자스의 뇌리를 채우고 있었기에, 곁으로 다가오는 서늘한 공허의 기운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초월체의 보호 아래 영원한 삶을 누려온 자스에게 죽음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개념에 불과했다.
제라툴은 숨을 고르며 오른팔의 차원 검에 정신을 집중했다. 칼라의 빛과는 다른, 깊고 차가운 심연의 에너지가 칼날을 타고 흐르며 짙은 어둠을 뿜어냈다. 이 일격에 프로토스의 명운이 걸려 있었다. 그는 공허의 힘을 극한까지 끌어올리며, 초월체와 자스를 이어주는 보이지 않는 사이오닉 연결 고리를 겨냥했다.
일순간 제라툴의 몸이 그림자 속에서 튀어나오며 허공을 갈랐다. 묵직한 파공음과 함께 공허의 에너지가 응축된 차원 검이 자스의 두꺼운 외피를 뚫고 깊숙이 박혔다. 평범한 공격이라면 순식간에 재생되었을 상처였지만, 공허의 기운은 자스의 체액을 타고 빠르게 퍼져나가며 세포 하나하나를 철저히 붕괴시켰다.
자스의 거대한 몸뚱이가 고통으로 맹렬하게 요동쳤다. 찢어질 듯한 비명이 텔레파시를 타고 차 행성 전역으로 울려 퍼졌다. 자스는 초월체에게 구원을 요청하며 손상된 육신을 재생하려 발버둥 쳤지만, 상처 부위에서 피어오르는 검은 안개는 생명력을 무자비하게 갉아먹었다. 불사신의 신화가 산산조각 나는 순간이었다.
초월체의 에너지가 자스를 치유하기 위해 쇄도했으나, 제라툴이 주입한 공허의 힘은 그 연결망 자체를 완전히 끊어버렸다. 자스의 의식은 끝없는 어둠 속으로 추락하며 난생처음으로 진정한 소멸의 공포를 맛보았다. 흉측한 고기 덩어리는 점차 잿빛으로 변하며 생명의 온기를 잃어갔다.
마침내 자스의 거대한 맥박이 완전히 멈추었다. 저그 군단 역사상 단 한 번도 일어난 적 없었던 정신체의 영구적인 죽음이었다. 제라툴은 쓰러진 사체에서 차원 검을 뽑아내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의 손끝에서 떨리는 공허의 잔재가 이 위대한 승리를 증명하고 있었다. 작전은 완벽하게 성공했다.
자스의 죽음은 단순한 개체의 소멸을 넘어 저그 군단 전체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초월체와 가름 무리를 이어주던 거대한 신경망이 일거에 붕괴되며, 전장에 있던 수백만 마리의 저그들이 동시에 끔찍한 충격파를 온몸으로 받아냈다. 제라툴은 서둘러 그림자 속으로 몸을 숨기며 다가올 혼돈을 대비했다.
통제를 잃은 무리와 잔혹한 숙청

자스의 숨통이 끊어지는 순간, 전장에서 프로토스를 몰아붙이던 가름 무리의 움직임이 일제히 멈췄다. 초월체의 통제를 전달하던 매개체가 사라지자, 저글링과 히드라리스크들은 방향 감각을 잃고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거대한 군단의 일부였던 그들은 순식간에 이성을 잃은 야생의 짐승으로 전락해 버렸다.
통제력을 상실한 가름 무리는 눈앞에 있는 모든 것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프로토스뿐만 아니라 곁에 있던 다른 무리의 저그들마저 날카로운 발톱으로 찢어발겼다. 동족을 물어뜯고 산성 침을 뱉어내는 끔찍한 자중지란이 차 행성의 붉은 대지를 더욱 처참한 핏빛으로 물들였다. 군단의 질서가 붕괴된 것이다.
멀리서 전투를 지휘하던 다고스를 비롯한 다른 정신체들은 자스의 영구적인 죽음이라는 믿을 수 없는 현실에 경악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불사성이 깨졌다는 사실에 극심한 공포와 혼란을 느꼈다. 초월체 역시 자신의 신체 일부가 완전히 떨어져 나가는 듯한 끔찍한 고통에 휩싸여 거대한 분노를 뿜어냈다.
케리건은 혼비백산하여 서로를 죽고 죽이는 가름 무리의 참상을 지켜보며 서늘한 충격을 받았다. 프로토스가 단순히 고도로 발달한 외계 종족이 아니라, 군단의 근본적인 구조를 파괴할 수 있는 치명적인 힘을 숨기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그녀의 오만했던 미소는 사라지고, 짙은 경계심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초월체는 고통 속에서도 냉혹한 결단을 내렸다. 통제를 벗어나 군단 전체에 위협이 되는 가름 무리를 즉각 말살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그것은 살점을 도려내는 뼈아픈 결정이었지만, 군단의 생존을 위해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다고스의 무리가 방향을 돌려 미쳐 날뛰는 가름 무리를 향해 진격하기 시작했다.
케리건 역시 초월체의 명령을 받들어 자신의 병력을 이끌고 동족 상잔의 비극에 동참했다. 그녀의 사이오닉 폭풍이 한때 아군이었던 가름 무리의 머리 위로 무자비하게 쏟아졌다. 통제를 잃고 짐승처럼 울부짖는 저그들은 케리건과 다고스의 협공에 속수무책으로 썰려 나가며 산더미 같은 시체로 쌓여갔다.
태사다르와 프로토스 병력은 저그 군단이 스스로를 파괴하는 기괴한 광경을 지켜보며 조용히 전장을 이탈했다. 제라툴의 일격이 군단의 심장부에 얼마나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는지 두 눈으로 확인한 태사다르는 벅찬 희망을 느꼈다. 마침내 저 끔찍한 괴물들을 우주에서 완전히 몰아낼 방법을 찾은 것이다.
차 행성의 화산재 위로 끊임없이 피바람이 불었다. 가름 무리의 마지막 한 마리까지 철저히 도륙당한 후에야 군단은 다시금 기괴한 침묵과 질서를 되찾았다. 하지만 자스의 빈자리는 저그의 마음에 지울 수 없는 공포를 남겼고, 케리건은 어둠 속으로 사라진 암흑 기사의 존재를 뼛속 깊이 각인하게 되었다.
비극을 부른 찰나의 정신 접촉

제라툴이 자스의 거대한 육신 깊숙이 공허의 칼날을 찔러넣고 그 정신체로서의 생명력을 소멸시키던 찰나의 순간, 누구도 예상치 못한 비극적인 사고가 발생했다. 자스의 의식이 완전히 소멸하며 초월체와의 연결이 끊어지는 그 짧은 틈새로, 제라툴의 정신이 빨려 들어가 버린 것이다. 빛보다 빠른 속도로 두 이질적인 의식이 정면으로 충돌했다.
제라툴은 자신의 정신이 육신을 벗어나 끝없이 깊고 어두운 심연으로 추락하는 것을 느꼈다. 그곳에는 우주의 탄생부터 이어져 온 끔찍한 굶주림과 거대한 군단의 의지가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초월체의 압도적인 자아는 제라툴의 방어막을 순식간에 짓부수고 그의 기억 속으로 거침없이 밀려 들어왔다.
암흑 기사는 필사적으로 정신을 닫으려 했지만, 초월체의 촉수는 너무나도 강력하고 집요했다. 수백 년 동안 갈고닦은 수련도 그 거대한 우주적 존재 앞에서는 무력했다. 초월체는 제라툴의 기억을 낱낱이 파헤치며 그가 평생토록 간직해 온 비밀과 지식들을 탐욕스럽게 집어삼켰다. 끔찍한 정신적 유린이었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제라툴에게는 영원과도 같은 고통의 시간이었다. 초월체의 의식은 제라툴의 기억 깊은 곳에 숨겨져 있던 가장 찬란하고 신성한 이미지를 끄집어냈다. 황금빛 탑이 솟아 있고 푸른 숲이 우거진 아름다운 행성, 프로토스의 영광스러운 고향 아이어의 풍경이 초월체의 시야에 선명하게 맺혔다.
제라툴의 영혼에서 절망적인 비명이 터져 나왔다. 자신이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비록 자신을 추방했지만 여전히 사랑하는 고향의 위치가 가장 끔찍한 적의 손에 넘어가고 만 것이다. 초월체는 아이어의 풍부한 생명력과 사이오닉 에너지를 감지하고는 환희에 찬 끔찍한 포효를 내질렀다.
동시에 제라툴 역시 초월체의 파편화된 기억을 엿보았다. 젤나가의 창조와 타락, 그리고 군단이 우주를 집어삼키려는 궁극적인 목적이 그의 뇌리에 각인되었다. 하지만 그런 거창한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오직 자신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정신체의 죽음이 유발한 불가항력적인 정신 접촉으로 인해 고향의 위치가 노출되었다는 끔찍한 죄책감만이 그의 온몸을 짓눌렀다.
정신적인 접촉이 끊어지고 현실로 돌아온 제라툴은 차가운 바닥에 무릎을 꿇고 거친 숨을 토해냈다. 손에 쥔 차원 검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위대한 승리의 쾌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뼛속까지 시려오는 공포와 절망이 그를 덮쳤다. 결코 자발적으로 고향을 배신한 것이 아님에도, 찰나의 접촉이 초래한 이 비극적인 결과 앞에 그는 깊은 절망을 느꼈다.
어둠 속에서 태사다르가 다가와 제라툴의 어깨를 부축했지만, 암흑 기사는 텅 빈 눈동자로 허공을 응시할 뿐이었다. 초월체가 아이어의 위치를 알아냈다는 절망적인 진실을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그림자의 칼날은 적의 심장을 도려냈지만, 그 대가로 가장 소중한 고향의 심장을 적의 아가리 앞에 바치고 말았다.
파멸을 향해 열린 차원의 문

제라툴의 기억을 통해 아이어의 정확한 좌표를 확보한 초월체는 더 이상 차 행성에 머무를 이유가 없었다. 군단의 궁극적인 목표인 프로토스의 흡수와 진화가 마침내 눈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초월체는 즉각 모든 정신체들에게 차 행성을 떠나 새로운 사냥터로 이동하라는 절대적인 명령을 하달했다.
차 행성의 붉은 하늘이 수억 마리의 저그 무리가 뿜어내는 기괴한 울음소리로 진동했다. 땅을 뒤덮고 있던 군락들이 일제히 요동치며 거대한 생체 함선인 대군주들이 하늘로 솟아올랐다. 태양을 가릴 만큼 거대한 저그의 무리가 우주를 향해 비상하는 광경은 그 자체로 압도적인 재앙의 서막이었다.
초월체의 막강한 사이오닉 에너지가 집중되자, 차 행성 궤도 상공의 공간이 기괴하게 비틀리며 거대한 차원 균열이 열렸다. 핏빛으로 번뜩이는 웜홀 너머로는 프로토스의 신성한 고향, 아이어의 맑은 우주 공간이 엿보였다. 저그 군단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 어두운 통로를 향해 맹렬히 돌진했다.
케리건은 지상에 남아 하늘을 뒤덮은 군단의 이동을 지켜보았다. 초월체는 그녀에게 차 행성에 남아 태사다르와 제라툴을 비롯한 잔존 프로토스 세력을 소탕하라는 임무를 맡겼다. 아이어 침공이라는 위대한 성전에서 배제된 것에 약간의 불만이 생겼지만, 그녀는 아직 군단의 지배자에게 복종해야만 했다.
산맥만큼이나 거대한 초월체의 본체마저 대지를 뚫고 솟아올라 차원 균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차 행성을 뒤덮고 있던 숨 막히는 압박감이 순식간에 사라졌지만, 그것은 결코 안식을 의미하지 않았다. 우주 최악의 재앙이 프로토스의 심장부를 향해 날아갔다는 사실은 전 우주적인 비극을 예고하고 있었다.
은하계를 가로지르는 기나긴 차원 도약 끝에, 마침내 저그 군단의 선봉대가 아이어의 궤도에 모습을 드러냈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아름다운 행성이 흉측한 생명체들의 굶주린 시야에 가득 찼다. 수천 년 동안 평화와 번영을 누려온 프로토스의 성역은 이제 끔찍한 살육의 무대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
아이어의 궤도를 방어하던 프로토스 함대들은 갑작스러운 저그의 출현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경보음이 행성 전역에 울려 퍼지고 황금 함대가 요격에 나섰지만, 끝없이 밀려드는 저그의 물량을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생체 포자들이 빗방울처럼 쏟아지며 아이어의 맑은 대기권을 더럽히기 시작했다.
대기권을 돌파한 저그의 강하낭들이 유성우처럼 쏟아져 내리며 아이어의 푸른 밀림과 화려한 도시 곳곳에 처박혔다. 강하낭이 터질 때마다 수백 마리의 저글링과 히드라리스크가 쏟아져 나와 눈앞의 모든 생명체를 갈기갈기 찢어발겼다. 평화롭던 아이어의 대지는 순식간에 피와 비명으로 얼룩진 지옥으로 변해갔다.
황금빛 고향에 내린 거대한 절망

아이어의 상공이 저그 군단이 뿜어내는 짙은 포자로 인해 검게 물들었다. 수천 년간 칼라의 조화로운 빛 아래에서 평화를 누리던 프로토스 민간인들은 하늘에서 쏟아지는 끔찍한 괴물들을 보며 공포에 질려 도망쳤다. 위대한 건축물들이 무너져 내리고, 신성한 사원들이 산성 액체에 녹아내리며 불타올랐다.
대의회의 명령을 받은 광전사들과 용기병들이 결사적으로 방어선을 구축하며 저그의 파도에 맞섰다. 사이오닉 검의 푸른 섬광이 쉴 새 없이 번뜩였지만, 한 마리를 베어내면 열 마리가 달려드는 절망적인 전투가 이어졌다. 아이어의 자랑스러운 전사들마저 끝없는 군단의 굶주림 앞에서는 낙엽처럼 쓰러져갔다.
전투의 함성과 단말마의 비명이 칼라의 신경망을 타고 행성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프로토스들은 동족들이 겪는 끔찍한 고통과 절망을 고스란히 공유하며 극심한 혼란에 빠졌다. 칼라의 연결은 그들에게 위대한 결속을 주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피할 수 없는 공포의 매개체로 작용하며 사기를 꺾어놓았다.
그때, 아이어의 하늘을 뒤덮은 짙은 구름이 기괴하게 소용돌이치며 둘로 갈라졌다. 그 틈새로 차 행성에서 솟아올랐던 거대하고 흉측한 덩어리, 초월체의 본체가 압도적인 위용을 드러내며 강하하기 시작했다. 행성의 중력마저 비틀어버릴 듯한 거대한 질량이 아이어의 대지를 향해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짓눌러왔다.
초월체가 내뿜는 막강한 사이오닉 에너지는 칼라의 조화로운 노래를 단숨에 짓뭉개버렸다. 고위 기사들은 머리를 부여잡고 쓰러졌고, 대의회의 장로들조차 그 끔찍한 압박감에 숨을 헐떡였다. 그것은 단순한 물리적인 침공을 넘어, 프로토스라는 종족 자체의 정신적 근간을 파괴하려는 우주적 폭력이었다.
마침내 초월체의 거대한 육신이 아이어의 가장 신성한 대지 위에 내려앉았다. 엄청난 지진이 발생하며 대륙이 갈라지고, 수많은 도시들이 순식간에 폐허로 변했다. 초월체는 아이어의 지각 깊숙한 곳으로 흉측한 촉수를 뻗어 내리며 행성의 풍부한 에너지를 탐욕스럽게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완전한 강림이었다.
초월체가 자리를 잡자 그 주변으로 끝없는 점막이 퍼져나가며 아름답던 자연을 오염시켰다. 황금빛으로 찬란했던 아이어의 영광은 초월체가 드리운 거대한 그늘 아래에서 서서히 빛을 잃어갔다. 저그 군단은 자신들의 창조주를 호위하며 행성 전체를 완벽히 집어삼키기 위한 무자비한 사냥을 가속화했다.
차 행성의 어두운 동굴에서 제라툴이 느꼈던 절망은 이제 아이어 전체의 현실이 되었다. 적을 멸하기 위해 휘둘렀던 그림자의 칼날이, 역설적이게도 가장 소중한 고향의 심장부를 적에게 내어주는 치명적인 비수가 되어 돌아왔다. 아이어의 하늘을 뒤덮은 초월체의 그늘 속에서, 프로토스의 가장 어두운 시대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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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사다르와 제라툴의 만남은 언제 봐도 전율이 흐르네요. 하지만 그 대가로 아이어의 위치가 노출되는 순간은 정말 가슴이 미어집니다. 그림자의 칼날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다니 너무 잔혹한 운명이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