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크래프트 연대기 24화 · 차가운 행성, 흩어진 무리
이 글의 목차
원작의 사건을 바탕으로 새로 쓴 팬 서사입니다. 인물의 감정과 대사, 장면의 분위기는 재구성했으며 주요 결말을 포함합니다.
거대괴수의 신경 중추

거대한 생명체 거대괴수의 내부는 맥박이 뛰는 유기체 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케리건이 그 축축하고 어두운 신경 중추에 발을 들이자, 익숙하면서도 이질적인 감각이 그녀의 피부를 훑고 지나갔다. 인간의 몸으로 돌아왔지만, 저그의 생체망은 여전히 그녀의 존재를 예민하게 감지하고 반응했다.
천장의 점막이 갈라지며 상반신을 드러낸 이즈샤가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내려왔다. "여왕님, 돌아오셨군요. 하지만 당신의 육신은 예전과 다릅니다. 테란의 연약한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이즈샤의 목소리에는 의문이 섞여 있었지만, 그녀의 본질을 거부하는 기색은 전혀 없었다.
케리건은 차가운 눈빛으로 이즈샤를 올려다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내 모습이 어찌 변했든, 나는 사라 케리건이다. 그리고 내가 바로 군단이다." 그녀의 목소리에 담긴 사이오닉 에너지가 거대괴수의 신경망을 타고 흐르며, 그녀가 지닌 변함없는 지배력을 생생하게 증명했다.
어둠 속에서 다리가 여러 개 달린 기괴한 형체의 아바투르가 기어 나왔다. "유전자 배열 심각한 손상. 테란 유전자로의 퇴화. 매우 비효율적." 아바투르는 케리건의 주위를 맴돌며 그녀의 생체 구조를 낱낱이 분석하고는, 불만스러운 기계음 같은 목소리로 끊임없이 중얼거렸다.
"불평은 그만둬라, 아바투르. 네 임무는 군단을 진화시키고 더 강하게 만드는 것이다." 케리건은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명령이 과거의 잔혹했던 여왕의 것과 다를 바 없음을 느꼈다. 멩스크를 향한 복수심은 그녀가 다시 이 끔찍한 생명체들을 통제하도록 몰아붙이고 있었다.
거대괴수의 신경 다발이 케리건의 의식과 연결되는 순간, 수억 마리 저그의 혼돈스러운 마음이 그녀의 머릿속으로 밀려들었다. 굶주림, 분노, 파괴의 본능이 거대한 파도처럼 그녀의 이성을 덮쳤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사이오닉 파동을 일으켜 그 야성적인 의지들을 억눌렀다.
과거 군단을 하나로 묶었던 초월체의 거대한 의지는 이제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그녀 자신의 강력한 분노와 의지만이 흩어진 무리를 다시 규합할 수 있는 유일한 끈이었다. 케리건은 스스로가 선택한 이 끔찍한 길이 결코 되돌릴 수 없는 파멸의 여정임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차 행성으로 간다. 그곳에 흩어진 무리를 되찾아야 해." 케리건의 명령에 거대괴수가 육중한 몸을 비틀며 우주 공간을 가르기 시작했다. 짐 레이너를 잃었다는 절망감은 이제 차가운 분노로 굳어졌고, 그녀는 복수를 위해 기꺼이 괴물들의 여왕으로 군림할 준비를 마쳤다.
차 행성의 반역자

붉은 용암과 잿빛 대지로 뒤덮인 차 행성의 표면은 자치령의 요새들로 인해 더욱 흉터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거대괴수가 궤도에 진입하자, 케리건은 행성 곳곳에서 끓어오르는 저그의 야성적인 파동을 감지했다. 그중에서도 유독 강력하고 반항적인 의지가 그녀의 정신을 강하게 찔러왔다.
"자가라... 무리 어미가 스스로 군단의 주인이 되려 하는군." 케리건은 자신을 거부하는 그 오만한 의지를 향해 정신적 쐐기를 박아 넣었다. 과거 그녀가 직접 창조했던 무리 어미는 이제 주인의 부재를 틈타 차 행성의 저그를 자신의 통제 아래 두고 세력을 키우고 있었다.
자가라는 케리건의 인간적인 외형을 조롱하며 복종을 거부했다. "당신은 약해졌다! 더 이상 우리의 여왕이 아니다!" 자가라의 정신적 외침과 함께, 통제를 벗어난 야생 저글링 무리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케리건을 향해 맹렬하게 돌진해왔다. 날카로운 발톱이 그녀를 찢으려 했다.
케리건은 눈을 번뜩이며 강력한 사이오닉 폭풍을 방출했다. 보랏빛 에너지가 대지를 휩쓸자, 덤벼들던 저글링들은 허공으로 튕겨나가며 잿더미로 변해버렸다. 인간의 몸을 하고 있었지만, 그녀가 뿜어내는 파괴적인 힘은 과거 우주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칼날 여왕의 그것과 완벽히 같았다.
그녀는 끓어오르는 용암 강을 건너 자가라의 둥지를 향해 거침없이 전진했다. 멩스크를 향한 억눌린 분노가 사이오닉 에너지로 치환되어 그녀의 주변을 맴돌았다. 앞을 가로막는 야생 저그들은 그녀의 손짓 한 번에 뼈와 살이 분리되며 끔찍한 비명과 함께 바닥에 나뒹굴었다.
마침내 거대한 군락지 중심에서 자가라와 직접 마주한 케리건은 걸음을 멈춰 섰다. 자가라는 거대한 몸집을 부풀리며 날카롭고 위협적인 소리를 냈지만, 케리건은 단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두 존재 사이에서 팽팽한 정신적 충돌이 일어나며 주변의 대지가 미세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케리건은 자가라의 정신 방벽을 무자비하게 짓밟고 들어가 그녀의 의지를 굴복시켰다. 뇌리를 파고드는 압도적인 고통과 공포에 자가라는 결국 몸을 떨며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제가 틀렸습니다... 당신은 진정한 여왕이십니다." 자가라의 굴복과 함께 무리의 통제권이 넘어왔다.
자가라가 복종을 맹세하자, 차 행성 전역에 흩어져 있던 수많은 저그 개체들이 일제히 케리건의 의식 속으로 연결되었다. 거대한 군단이 다시 그녀의 수족이 되어 숨을 쉬기 시작했다. 케리건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이제 자치령의 요새를 짓밟을 때가 왔음을 직감했다.
무너지는 강철 요새

자가라의 무리를 흡수한 케리건의 다음 목표는 차 행성에 주둔 중인 워필드 장군의 자치령 부대였다. 화산재가 흩날리는 척박한 대지 위로 굳건하게 세워진 행성 요새는 자치령의 강인한 저항 의지를 보여주는 듯했다. 하지만 분노에 찬 군단의 해일 앞에서는 한낱 장난감에 불과했다.
케리건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땅거미를 뚫고 수만 마리의 저그가 요새를 향해 쏟아져 내렸다. 맹독충들이 산성액을 뿜으며 방어벽으로 돌진했고, 바퀴들이 단단한 장갑을 앞세워 총탄을 튕겨냈다. 자치령의 벙커에서 뿜어져 나오는 화염과 포탄이 저그의 피와 살점을 사방으로 흩뿌렸다.
공성 전차의 웅장한 포격 소리가 대지를 뒤흔들며 저그의 진열을 무너뜨리려 했다. 그러나 케리건은 전장의 모든 상황을 머릿속으로 내려다보며 치밀하게 무리를 지휘했다. 뮤탈리스크들이 하늘을 뒤덮고 전차의 사각지대를 급강하하며 파고들어 자치령의 화력을 무력화시키기 시작했다.
무전기를 통해 들려오는 테란 병사들의 절망적인 비명소리가 케리건의 귓가를 때렸다. 그 순간, 과거 짐 레이너와 함께 전장을 누비던 시절의 기억이 떠오르며 가슴 한구석이 찌르듯 아파왔다. 하지만 그녀는 짐을 죽인 멩스크의 얼굴을 떠올리며 그 알량한 죄책감을 억지로 짓눌렀다.
맹독충 무리가 요새의 두꺼운 외벽에 자폭하며 거대한 파편과 함께 구멍을 뚫었다. 그 틈을 타 저글링들이 미친 듯이 쏟아져 들어가며 내부의 해병들을 갈기갈기 찢어발겼다. 피비린내와 타들어 가는 금속 냄새가 뒤섞인 전장은 오직 살육만이 존재하는 끔찍한 지옥으로 변해갔다.
케리건은 직접 전장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가며 앞을 가로막는 전투 기계들을 파괴했다. 그녀의 손끝에서 뻗어 나간 붉은 번개가 토르의 장갑을 꿰뚫고 내부의 조종석을 순식간에 녹여버렸다. 인간의 모습을 한 악마의 진격에 자치령 병사들은 전의를 상실하고 뒷걸음질 치기 바빴다.
방어선이 완전히 붕괴되자, 요새의 심장부인 사령부 건물이 흉측하게 뼈대를 드러냈다. 케리건은 무리에게 사령부를 포위할 것을 명령하고, 잔해를 밟으며 천천히 입구로 다가갔다. 그 안에는 군단의 맹공을 끝까지 버텨내려 했던 늙고 지친 장군이 최후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부서진 철문을 뜯어내고 사령부 내부로 들어선 케리건의 눈앞에 끔찍한 광경이 펼쳐졌다. 무너진 천장 잔해에 깔려 피투성이가 된 워필드 장군이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의 주변에는 이미 숨을 거둔 호위병들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어, 방어전의 처절함을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마지막 자비의 모순

워필드는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을 들어 케리건을 노려보았다. "너는... 인간성을 잃은 괴물이다. 멩스크를 잡겠다는 핑계로 얼마나 많은 무고한 목숨을 앗아갈 셈이냐!" 그의 목소리는 피 끓는 분노와 혐오로 가득 차 있었고, 그 비수는 케리건의 양심을 깊숙이 찔러왔다.
케리건은 굳은 표정을 유지한 채 그의 날 선 비난을 묵묵히 견뎌냈다. 그녀 역시 자신이 저지른 끔찍한 학살의 무게를 알고 있었지만, 이제 와서 멈출 수는 없었다. "멩스크가 시작한 일이야. 나는 그저 끝을 맺을 뿐이다." 그녀의 대답은 차가웠지만, 눈동자 속에는 미세한 흔들림이 감돌고 있었다.
숨이 점차 잦아들던 워필드는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며 간절히 호소했다. "부상병들을 태운 수송선 세 척이 지금 막 탈출 중이다. 그들은 이미 전투력을 상실했어... 제발 그들만은 살려 보내다오." 평생을 전장에서 바친 늙은 장군의 마지막 소원은 자신의 목숨이 아닌 부하들의 생존이었다.
그 순간, 케리건의 뇌리에 과거 레이너 특공대 시절 부상당한 동료들을 부축하며 후퇴하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인간으로서의 연민과 저그의 잔혹한 본능이 그녀의 내면에서 격렬하게 충돌했다. 수송선을 파괴하는 것은 군단의 논리였지만, 그녀는 차마 그 명령을 내릴 수 없었다.
워필드는 마지막 힘을 다해 그녀를 노려보았지만, 케리건의 눈빛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수송선은 보내주마." 케리건은 나지막이 속삭이며 손을 뻗었다. 그녀의 강력한 사이오닉 에너지가 대기를 가르고 워필드의 심장을 꿰뚫으며 그의 숨통을 완전히 끊어놓았다. 자치령의 위대한 장군이 차 행성의 차가운 잔해 속에서 케리건의 손에 직접 최후를 맞이하는 순간이었다.
이즈샤의 목소리가 거대괴수에서부터 신경망을 타고 들려왔다. "여왕님, 테란의 수송선들이 궤도를 벗어나려 합니다. 생존자들을 살려두면 훗날 군단에 위협이 될 것입니다. 추격하여 섬멸할까요?" 이즈샤의 철저하고 냉혹한 논리는 저그의 완벽한 생존 방식을 대변하고 있었다.
케리건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 "아니, 무리를 거두어라. 수송선은 그냥 보내줘." 그녀의 명령에 이즈샤와 무리 어미들은 혼란스러워했지만, 감히 여왕의 뜻을 거역하지 못했다. 하늘을 뒤덮었던 뮤탈리스크들이 일제히 방향을 틀어 수송선의 탈출 경로를 열어주었다.
무너진 사령부 안에 홀로 남은 케리건은 피 묻은 자신의 두 손을 내려다보았다. 괴물이 되어 복수를 다짐했으면서도, 마지막 순간에 발목을 잡는 이 얄팍한 인간성이 그녀를 고통스럽게 했다. 그녀는 완전한 괴물도, 완전한 인간도 아닌 자신의 모순된 존재에 깊은 절망을 느꼈다.
얼어붙은 칼디르의 시련

차 행성을 정복한 군단은 또 다른 잃어버린 무리를 찾기 위해 칼디르 행성으로 향했다. 그곳은 맹렬한 눈보라와 영하의 폭풍이 영원토록 몰아치는 극저온의 얼음 지옥이었다. 거대괴수가 궤도에 머무는 동안에도, 행성 표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냉기는 뼛속까지 시리게 만들었다.
케리건이 행성 표면으로 첫 번째 저그 무리를 파견하자마자 끔찍한 결과가 나타났다. 칼디르의 살인적인 얼음 폭풍이 몰아치자, 전진하던 저글링과 히드라리스크들이 그 자리에 멈춰 선 채 순식간에 얼어붙어 버렸다. 군단의 유기체 껍질로는 이 극한의 추위를 견뎌낼 수 없었다.
아바투르가 신경망을 통해 해결책을 제시했다. "칼디르 토착 생물 우르사돈. 극저온 환경에 완벽히 적응. 그들의 정수를 흡수하면 군단의 유전자 구조를 개조하여 냉기 저항력 부여 가능." 케리건은 군단을 살리기 위해 직접 소규모 타격대를 이끌고 우르사돈 사냥에 나섰다.
칼디르의 눈보라는 케리건의 인간적인 피부를 가차 없이찢어발길 듯이 몰아쳤다. 살을 에는 듯한 고통 속에서도 그녀는 사이오닉 에너지를 몸에 두르고 거대한 우르사돈 무리를 향해 돌진했다. 야수들의 거친 발톱과 이빨을 피하며, 그녀는 날카로운 칼날로 그들의 숨통을 끊어놓았다.
사냥한 우르사돈의 사체에서 추출된 귀중한 정수는 즉각 거대괴수의 진화장으로 전송되었다. 아바투르는 특유의 빠르고 기괴한 손놀림으로 우르사돈의 유전자를 분해하여 저그의 산란못에 융합시켰다. 유전자 조작은 순식간에 이루어졌고, 군단은 새로운 환경에 맞춰 진화할 준비를 마쳤다.
산란못에서 새롭게 태어난 저그들은 이전과는 확연히 달랐다. 그들의 외피는 두껍고 촘촘한 단열층으로 덮여 있었고, 체내에서는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다시 몰아친 얼음 폭풍 속에서도, 진화한 저그 무리는 전혀 위축되지 않고 눈보라를 뚫고 맹렬하게 진격했다.
케리건은 극한의 환경마저 극복해내는 군단의 놀라운 적응력에 전율을 느꼈다. 어떠한 시련 앞에서도 스스로를 변화시켜 살아남는 저그의 생존 방식은 두려우면서도 매혹적이었다. 그녀는 멩스크라는 거대한 벽을 넘기 위해서는 자신 역시 이토록 끈질기고 독해져야 한다고 다짐했다.
눈보라를 뚫고 나아간 군단은 마침내 칼디르에 숨어 있던 잃어버린 무리와 조우했다. 얼어붙은 협곡 깊은 곳에서 동면하고 있던 거대한 무리가 케리건의 부름에 깨어나며 포효했다. 얼음 행성의 매서운 추위조차 이제는 군단의 확장을 막을 수 없는 하찮은 장애물에 불과했다.
침묵을 위한 잔혹한 선택

칼디르의 무리를 규합하던 중, 군단은 행성에 숨겨져 있던 프로토스 원정대의 기지를 발견했다. 연구관 라사라가 이끄는 이들은 저그의 움직임을 감시하고 표본을 수집하고 있었다. 프로토스가 샤쿠라스에 이 사실을 알린다면, 황금 함대가 몰려와 군단을 잿더미로 만들 것이 분명했다.
케리건은 단 한 척의 프로토스 함선도 칼디르를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철저한 봉쇄를 명령했다. 진화한 저그 무리가 눈보라를 타고 프로토스 기지를 향해 맹렬히 쏟아져 내렸다. 사이오닉 검과 광전사들의 함성이 울려 퍼졌지만, 끝없이 밀려드는 군단의 물결을 막아내기엔 역부족이었다.
기지가 유린당하는 와중에 연구관 라사라가 생포되어 거대괴수 내부로 끌려왔다. 그녀의 정신은 강력한 사이오닉 방벽으로 둘러싸여 있었지만, 케리건 앞에서는 공포에 질린 떨림을 숨기지 못했다. 라사라는 포박된 상태에서도 꼿꼿하게 고개를 들고 케리건을 향해 경멸의 눈빛을 보냈다.
"너는 이 우주의 끔찍한 재앙이다, 케리건. 네가 지나간 자리에는 오직 파괴와 죽음만이 남을 뿐이지." 라사라의 날카로운 텔레파시가 케리건의 머릿속을 차갑게 울렸다. 그녀는 케리건이 지닌 얄팍한 인간성을 조롱하며, 결국 순수한 악의 화신으로 전락할 것이라고 끝없이 저주를 퍼부었다.
케리건은 라사라의 비난을 무시한 채, 오직 전술적인 목표에만 집중했다. 프로토스 함선 한 척이 이미 궤도로 이륙하여 샤쿠라스로 통신을 시도하려 하고 있었다. 무력을 동원해 함선을 격추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그녀는 가장 잔혹하고 확실한 방법을 선택하기로 마음먹었다.
케리건은 라사라의 몸에 기생 유충을 강제로 주입하는 끔찍한 결정을 내렸다. 라사라는 자신의 몸속에서 꿈틀거리는 이질적인 생명력을 느끼고 절규했다. "내 안에 괴물을 집어넣었구나!" 그녀는 살을 파고드는 고통과 동족을 파멸로 이끌 도구가 되었다는 절망감에 몸부림쳤지만, 케리건은 차가운 눈으로 그 과정을 지켜볼 뿐이었다. 유충은 라사라의 체내에 깊숙이 자리 잡고 그녀의 생명력을 갉아먹으며 폭발적으로 성장할 준비를 마쳤다.
"이제 너를 함선으로 돌려보내 주마. 네 동족들에게 선물을 들고 가라." 케리건은 라사라의 구속을 풀고 그녀를 함선으로 강제 차원 이동시켰다. 라사라는 자신이 동족을 파멸시킬 끔찍한 씨앗을 품은 채 함선으로 귀환했다는 사실에 절망하며 경고하려 했으나, 이미 늦은 뒤였다.
함선에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라사라의 몸을 뚫고 거대한 기생수가 튀어나왔다. 기생수는 순식간에 함선 내부를 난장판으로 만들며 프로토스 승무원들을 도륙하고 통신 시설을 파괴했다. 샤쿠라스를 향한 경고의 메시지는 영원히 우주 공간의 어둠 속으로 묻혀버리고 말았다.
인간성과 복수의 경계

거대괴수의 신경 중추에 선 케리건은 궤도에서 파괴되어 가는 프로토스 함선의 잔해를 묵묵히 지켜보았다. 목표를 달성했다는 안도감보다, 자신이 저지른 끔찍한 짓에 대한 혐오감이 먼저 밀려왔다. 칼디르의 매서운 눈보라보다 더 차가운 한기가 그녀의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무고한 자들을 도구로 쓰고 버리는 이 잔혹함은 과거 칼날 여왕 시절의 방식과 전혀 다를 바 없었다. 그녀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며, 짐 레이너가 자신을 구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렀는지 떠올렸다. 그가 이 모습을 본다면 얼마나 절망할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혔다.
하지만 짐은 죽었다. 멩스크의 끝없는 탐욕과 권력욕이 그를 영원히 앗아갔다. 그 사실을 떠올릴 때마다 그녀의 가슴 깊은 곳에서 억누를 수 없는 맹렬한 증오가 활활 타올랐다. 복수를 완성하기 위해서라면, 그녀는 기꺼이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고 우주에서 가장 끔찍한 괴물이 되어야만 했다.
이즈샤가 조심스럽게 다가와 케리건의 불안정한 뇌파를 지적했다. "여왕님, 당신의 정신에서 모순된 파동이 느껴집니다. 분노와 죄책감이 충돌하며 군단의 효율을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저그의 논리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의 복잡한 감정선이 이즈샤에게는 그저 결함으로 보였다.
"상관없어. 이 분노가 나를 움직이는 힘이다." 케리건은 주먹을 꽉 쥐며 사이오닉 오라를 폭발적으로 뿜어냈다. 그녀는 억지로 밀려오는 죄책감을 짓누르고, 오직 멩스크를 찢어 죽이겠다는 단 하나의 목적에 정신을 집중했다. 흔들리던 그녀의 눈빛이 다시금 차갑고 날카롭게 빛났다.
그녀는 텅 빈 우주를 향해 나지막이 속삭였다. "멩스크, 네가 나를 다시 괴물로 만들었다. 내가 짊어질 모든 죄악은 결국 네 목을 조르는 밧줄이 될 것이다." 그것은 자신을 향한 다짐이자, 멩스크를 향한 피비린내 나는 선전포고였다. 인간성의 잔재는 이제 복수의 도구로 전락했다.
여왕의 결연한 분노가 거대괴수의 신경망을 타고 흐르자, 수억 마리의 저그 개체들이 일제히 끔찍한 포효를 내지르며 화답했다. 군단은 여왕의 슬픔과 증오를 고스란히 공유하며, 다가올 거대한 전쟁을 향해 발톱을 벼리고 있었다. 케리건은 이제 절대 뒤를 돌아보지 않기로 굳게 결심했다.
모순된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그녀의 목표는 단 하나로 뚜렷하게 수렴되었다. 군단을 더욱 강하게 만들고, 자치령의 심장부를 타격하여 멩스크의 숨통을 끊는 것. 그것만이 잃어버린 짐을 위한 유일한 애도이자, 자신이 짊어진 끔찍한 운명에 대한 유일한 보상이라고 그녀는 믿었다.
태초의 부름을 향하여

차와 칼디르를 거치며 군단은 과거의 위용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거대괴수의 내부는 새롭게 합류한 무리들과 진화한 생명체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다. 멩스크의 자치령에 맞서기 위한 병력은 어느 정도 갖추어졌지만, 케리건은 여전히 채워지지 않는 근원적인 갈증을 느끼고 있었다.
아바투르가 신경망을 통해 새로운 보고를 올려왔다. "현재 군단의 유전자 구조, 여왕의 통제하에서 최적의 한계 상태에 도달. 하지만 더 이상의 급격한 진화는 불가능함. 외부의 강력한 촉매가 필요." 아바투르의 분석은 케리건이 내심 느끼고 있던 한계를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었다.
그 순간, 우주 저편에서 아주 오래되고 원시적인 부름이 케리건의 정신을 두드렸다. 그것은 초월체조차 잊고 있었던 저그의 근원, 태초의 힘이 숨 쉬는 곳에서 들려오는 희미한 속삭임이었다. 케리건은 그 부름이 자신을 진정한 칼날 여왕으로 완성시켜 줄 열쇠임을 직감했다.
현재의 반은 인간이고 반은 저그인 불완전한 상태로는 멩스크의 거대한 군대와 다가올 미지의 위협을 온전히 감당할 수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몸에 남은 마지막 인간성의 흔적마저 완전히 지워버려야 할 때가 왔음을 깨달았다. 더 깊고 끔찍한 어둠 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야만 했다.
"제루스... 저그가 처음 태어난 고향 행성으로 간다." 케리건의 명령에 거대괴수의 신경 중추가 요동쳤다. 별자리 지도가 붉게 물들며 코프룰루 구역 외곽의 잊혀진 행성의 좌표가 설정되었다. 그것은 군단의 기원이자, 가장 순수하고 폭력적인 정수가 잠들어 있는 곳이었다.
이즈샤가 경계심을 드러내며 경고했다. "여왕님, 제루스는 초월체의 통제를 벗어난 원시적인 곳입니다. 그곳의 생명체들은 군단의 규칙을 따르지 않으며, 매우 위험하고 예측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이즈샤의 우려 섞인 조언도 이미 결심을 굳힌 케리건을 막을 수는 없었다.
케리건은 거대괴수의 투명한 막 너머로 펼쳐진 끝없는 우주의 심연을 응시했다. 제루스에서 무엇을 마주하게 될지,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할지 알 수 없었지만 두려움은 없었다. 그녀는 궁극적인 힘을 얻기 위해 기꺼이 태초의 야성 속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질 준비가 되어 있었다.
거대한 생체 함선 거대괴수가 육중한 몸을 틀어 미지의 항로를 향해 미끄러지듯 나아갔다. 차가운 복수심으로 무장한 여왕과 그녀를 따르는 무리들은 이제 과거의 껍질을 벗고 새로운 진화를 맞이하기 위한 마지막 여정에 올랐다. 우주의 운명을 바꿀 거대한 폭풍이 제루스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댓글 1
아바투르의 '매우 비효율적'이라는 타박이 들리는 것 같네요. 역시 군단의 진화는 험난한 길인가 봅니다. 다음 제루스 이야기도 기대할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