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크래프트 연대기 15화 · 여왕이 약속한 동맹
원작의 사건을 바탕으로 새로 쓴 팬 서사입니다. 인물의 감정과 대사, 장면의 분위기는 재구성했으며 주요 결말을 포함합니다.
케리건의 제안

타소니스의 폐허 위로 잿빛 바람이 불어왔다. 케리건은 무너진 철골 구조물 위에 서서 다가오는 두 척의 수송선을 차가운 눈으로 응시했다. 짐 레이너와 프로토스의 영웅 피닉스가 경계심을 가득 품은 채 먼지 구름을 뚫고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의 무기는 당장이라도 불을 뿜을 듯 장전되어 있었다.
그들 뒤로는 아크튜러스 멩스크가 초라한 행색을 숨기지 못한 채 걸어 나왔다. 한때 우주를 호령했던 황제의 얼굴에는 굴욕감과 분노가 뒤섞여 있었다. 케리건은 뼈로 이루어진 날개를 가볍게 펄럭이며 그들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지구 집정 연합이라는 거대한 위협이 이 앙숙들을 한자리에 모은 것이다.
레이너는 눈앞의 괴물을 보며 이를 꽉 물었다. 그녀를 향한 지독한 증오가 가슴을 찔렀지만, 동시에 UED의 압도적인 무력이 떠올라 총구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저들이 차 행성의 초월체를 손에 넣은 이상, 이 구역의 모든 생명체는 노예가 될 운명이었다. 이성을 짓누르는 현실이 그를 괴롭혔다.
피닉스가 육중한 기계 다리를 내딛으며 묵직한 기계음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칼라의 명예를 아는 프로토스에게 저그와의 협력은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그는 케리건의 교활한 눈빛에서 과거의 배신을 읽어내려 애썼다. 하지만 종족의 생존이라는 대의 앞에서는 이 불결한 동맹조차 고려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케리건은 브락시스 행성에 설치된 사이오닉 분열기가 자신의 무리 통제력을 앗아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 장치가 파괴되지 않는 한, UED의 진군을 막을 병력은 우주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간절함으로 위장된 오만한 확신이 짙게 깔려 있어 듣는 이의 신경을 긁었다.
멩스크는 팔짱을 낀 채 이 거래에서 자신이 얻을 이익이 무엇인지 신경질적으로 캐물었다. 케리건은 입가에 비릿한 미소를 띠며 코랄 행성의 탈환과 자치령의 재건을 약속했다. 황제의 눈동자가 그 제안에 미세하게 흔들렸다. 권력을 향한 그의 끝없는 탐욕이 이 위험한 도박에 뛰어들라고 속삭이고 있었다.
멩스크의 뒤에 서 있던 에드먼드 듀크 장군이 불만스러운 헛기침을 하며 낡은 장갑을 매만졌다. 저그의 여왕을 믿느니 차라리 우주 공간에 맨몸으로 뛰어드는 게 낫다는 그의 투덜거림이 무전기를 타고 흘렀다. 케리건은 그 불신을 즐기듯 여유로운 태도로 그들의 찌푸린 얼굴을 하나씩 눈에 담으며 승리를 확신했다.
팽팽한 긴장감이 폐허의 공기를 무겁게 짓눌렀다. 레이너는 소총의 손잡이를 부서질 듯 꽉 쥐었다가, 결국 깊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를 향한 혐오와 불신을 고스란히 품은 채, 오직 생존이라는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 가장 기형적이고 위태로운 동맹이 타소니스의 잿더미 위에서 맺어졌다.
불안한 동맹의 시작

히페리온의 낡은 작전 회의실에는 숨 막히는 침묵만이 맴돌았다. 홀로그램 프로젝터 위로 붉게 빛나는 저그의 징표가 떠올라 있었고, 그 주위를 테란과 프로토스의 지휘관들이 둘러쌌다. 레이너는 탁자 위로 몸을 숙이며 칼날 여왕을 믿는 것이 얼마나 미친 짓인지 다시 한번 강조하며 동료들의 표정을 살폈다.
피닉스는 과거 태사다르가 보여주었던 숭고한 희생을 떠올리며 씁쓸한 감정에 잠겼다. 명예로운 전사들이 피 흘려 지켜낸 우주를 저그의 손을 빌려 구해야 한다는 사실이 그의 기계 심장을 무겁게 짓눌렀다. 그러나 UED의 원정 함대가 보여준 파괴력은 그들의 자존심만으로 막아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멩스크는 회의실 구석에서 듀크와 함께 은밀한 눈빛을 교환하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은 오직 코랄의 황궁으로 돌아가는 길을 계산하는 데 집중되어 있었다. 케리건의 의도가 무엇이든, 그녀의 막강한 군단을 방패막이로 삼아 자신의 제국을 재건할 수만 있다면 악마와도 기꺼이 손을 잡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대기 궤도에 머물던 케리건은 대군주의 시야를 통해 그들의 불안한 회의를 고스란히 지켜보고 있었다. 서로를 의심하면서도 결국 자신의 계획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그들의 처지가 우스웠다. 그녀는 이 얄팍한 동맹이 오직 상호 간의 절박함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정확하게 꿰뚫어 보고 있었다.
레이너가 통신 채널을 열고 케리건에게 단호한 목소리로 경고했다. 테란과 프로토스의 병력에 단 하나의 저그 발톱이라도 닿는 순간, 이 동맹은 즉시 파기될 것이라는 선언이었다. 그의 눈빛에는 과거의 연인을 잃은 슬픔과 현재의 괴물을 향한 적의가 복잡하게 얽혀 모니터 너머의 그녀를 날카롭게 찔렀다.
케리건은 짐짓 부드러운 목소리를 꾸며내며 그의 요구를 흔쾌히 수락했다. 그녀의 등 뒤로 날카로운 가시 촉수들이 신경질적으로 꿈틀거렸지만, 통신 화면에 비친 얼굴은 그저 협력적인 동맹군의 모습일 뿐이었다. 거짓된 약속이 우주의 진공을 타고 흘러가며 이들의 위태로운 관계를 간신히 묶어두고 있었다.
듀크 장군은 콧방귀를 뀌며 자치령의 남은 함대를 재정비하라는 멩스크의 명령을 하달받았다. 낡은 전투순양함들의 엔진이 무거운 굉음을 내며 가동되기 시작했다. 피닉스 역시 차원망을 통해 살아남은 아이어의 전사들을 호출하며 다가올 전투에 대비했다. 각자의 셈법이 교차하는 가운데 함대는 브락시스로 기수를 돌렸다.
목적지는 UED의 사이오닉 분열기가 자리 잡은 얼어붙은 행성 브락시스였다. 그곳을 파괴하지 못하면 그들은 시작조차 해보지 못하고 파멸할 것이 분명했다. 레이너는 조종석에 앉아 끝없이 펼쳐진 어두운 우주를 바라보며, 이 선택이 훗날 어떤 피바람을 불러올지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에 몸을 떨었다.
사이오닉 분열기를 향하여

연합 함대가 브락시스의 궤도에 진입하자 잿빛 구름 사이로 거대한 요새의 윤곽이 드러났다. 얼어붙은 대지 위로 솟아오른 사이오닉 분열기는 불쾌한 파동을 뿜어내며 궤도상의 저그 생명체들을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케리건은 통제력을 잃고 몸부림치는 자신의 무리를 보며 분노로 붉게 물든 눈을 번뜩였다.
멩스크가 자치령의 기술자들을 동원해 사이오닉 방출기를 조정하기 시작했다. 이 장치는 분열기의 간섭을 뚫고 흩어진 야생 저그들을 유인해 총알받이로 쓸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과거 타소니스를 멸망시켰던 끔찍한 기계가 이제는 그들의 생존을 위한 열쇠가 되었다는 사실이 지독한 모순처럼 느껴졌다.
레이너 특공대의 수송선들이 강하 준비를 마쳤다. 해병들은 굳은 표정으로 장비를 점검하며 다가올 지옥 같은 시가전을 각오했다. 레이너는 바이저를 내리며 대원들에게 짧고 굵은 격려의 말을 건넸다. 그들의 목표는 분열기의 방어막을 무력화하고 폭발물을 설치할 수 있는 내부 동력로까지 길을 뚫는 것이었다.
피닉스는 용기병의 제어 장치에 정신을 동기화하며 전장의 흐름을 읽어내려 애썼다. 그의 기계 동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 에너지가 강하선의 어두운 내부를 밝혔다. 프로토스의 강력한 화력은 UED의 견고한 방어선을 돌파할 가장 확실한 창이었으며, 그는 기꺼이 선봉에 서서 적들의 포화를 받아낼 생각이었다.
케리건은 아직 자신의 통제 아래 있는 소수의 정예 무리를 지상으로 투하했다. 거대한 포자 주머니들이 브락시스의 빙원을 강타하며 산산조각 났고, 그 안에서 굶주린 저글링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들은 테란과 프로토스 병력이 안전하게 착륙할 수 있도록 적의 시선을 분산시키는 잔혹한 미끼 역할을 수행했다.
UED의 방어 태세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견고했다. 수십 기의 미사일 포탑이 일제히 불을 뿜으며 하늘을 붉게 물들였고, 공성 전차들의 포격이 얼음 대지를 뒤흔들었다. 지구에서 온 정규군의 조직적인 화력망은 자치령의 패잔병들이나 흩어진 저그 무리와는 차원이 다른 압도적인 위압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듀크 장군이 마지못해 통신을 열고 UED 방어선의 구조적 약점을 전송했다. 과거 연합 시절부터 익혀온 테란의 표준 방어 교리를 바탕으로 적의 사각지대를 짚어낸 것이다. 그의 퉁명스러운 조언 덕분에 레이너의 강하선들은 치명적인 대공 포화를 아슬아슬하게 피하며 목표 지점에 근접할 수 있었다.
마침내 강하선들의 문이 열리고, 차가운 눈보라 속으로 연합군의 병력이 쏟아져 내렸다. 해병들의 함성과 용기병의 플라스마 파열음, 그리고 저그의 끔찍한 울음소리가 뒤섞이며 브락시스의 고요했던 빙원은 순식간에 아비규환의 전장으로 변모했다. 사이오닉 분열기를 향한 필사의 진격이 막을 올린 것이다.
분열기 파괴 작전

지상에 발을 딛자마자 UED 해병들의 거센 탄막이 레이너 특공대를 덮쳤다. 눈보라를 뚫고 날아오는 가우스 소총의 궤적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했다. 레이너는 부서진 벙커 잔해 뒤로 몸을 숨긴 채 반격의 기회를 노렸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 타들어 가는 화약 냄새가 전장의 긴장감을 더욱 고조시켰다.
피닉스가 이끄는 프로토스 타격대가 묵직한 발걸음으로 전선을 밀어 올렸다. 용기병들이 발사하는 반물질 구체들이 UED의 장갑차들을 형체도 없이 녹여버렸다. 적의 십자포화가 피닉스의 동체에 쏟아졌지만, 강화된 보호막은 푸른 섬광을 튕겨내며 끄떡없이 버텼다. 그의 맹활약에 테란 병력들도 용기를 얻어 전진했다.
분열기에 가까워질수록 대기를 진동시키는 불길한 파동이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전장에 투입된 저그 생명체들은 방향 감각을 잃고 서로를 공격하거나 바닥에 뒹굴며 괴로워했다. 케리건은 궤도 위에서 그 끔찍한 고통을 고스란히 느끼며 이를 갈았다. 이 장치가 존재하는 한 그녀는 날개 꺾인 포식자에 불과했다.
레이너는 흩어진 부대원들을 재결집하며 분열기의 주 출입구를 향해 돌진했다. 그의 소총이 불을 뿜을 때마다 UED 방어 병력들이 하나둘 쓰러졌다. 피닉스의 화력 지원 덕분에 두꺼운 방폭문이 찢겨 나갔고, 마침내 시설 내부로 진입할 수 있는 통로가 열렸다. 시간은 그들의 편이 아니었기에 지체할 틈이 없었다.
시설 내부로 침투한 멩스크의 유령 요원들이 은폐 장치를 가동한 채 어둠 속을 파고들었다. 그들은 자동화된 보안 시스템을 무력화하고 내부 감시망에 교란 신호를 보냈다. 유령들의 정밀한 공작 덕분에 레이너의 타격대는 불필요한 교전을 피하며 분열기의 심장부인 중앙 동력실까지 빠르게 접근할 수 있었다.
거대한 에너지가 소용돌이치는 동력핵 앞에 선 레이너는 신속하게 고성능 폭약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손끝의 미세한 떨림이 그의 긴장 상태를 말해주고 있었지만, 동작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타이머를 설정한 그는 대원들에게 퇴각 명령을 내리며 시설의 좁은 복도를 향해 전력으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굉음과 함께 브락시스의 대지를 뒤흔드는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사이오닉 분열기의 두꺼운 외벽이 산산조각 나며 시뻘건 화염이 하늘로 솟구쳤다. 대기를 짓누르던 끔찍한 파동이 거짓말처럼 사라졌고, 찢어질 듯한 이명에 시달리던 전장의 모든 생명체들이 일순간 고요함을 맞이했다. 작전은 완벽한 성공이었다.
궤도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케리건은 눈을 감고 깊은숨을 들이마셨다. 단절되었던 수십억 저그 개체들의 의식이 거대한 해일처럼 그녀의 정신 속으로 밀려 들어왔다. 그 벅찬 연결의 감각은 그녀에게 잃어버렸던 신의 권좌를 되찾은 듯한 환희를 안겨주었다. 칼날 여왕의 진정한 힘이 마침내 족쇄를 끊고 해방되었다.
군단의 부활

분열기의 파괴는 코프룰루 구역 전체의 사이오닉 연결망에 거대한 충격파를 일으켰다. 타소니스와 브락시스 전역에서 목적 없이 날뛰던 야생 저그들이 마치 보이지 않는 끈에 묶인 듯 일제히 움직임을 멈췄다. 짐승의 본능만이 지배하던 그들의 텅 빈 눈동자에 서서히 군단의 통일된 의지가 깃들기 시작했다.
케리건은 자신의 거대한 정신을 우주 공간으로 뻗어 흩어진 무리를 하나로 묶어냈다. 그녀의 의지는 어두운 장막처럼 행성들을 덮었고, 수천만 마리의 저글링과 히드라리스크들이 새로운 주인의 부름에 응답하며 고개를 조아렸다. 그것은 단순한 지휘권의 회복이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가 깨어나는 과정이었다.
지상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레이너는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식은땀을 닦아냈다. 방금 전까지 무질서하게 뒹굴던 괴물들이 완벽한 대열을 갖추고 하늘을 우러러보는 모습은 경이로움을 넘어선 순수한 공포였다. 자신이 방금 무슨 짓을 저지른 것인지, 그 끔찍한 결과가 묵직한 죄책감으로 변해 가슴을 짓눌렀다.
피닉스 역시 용기병의 시각 센서를 통해 저그의 변화를 예의주시했다. 개체들의 움직임에서 낭비되는 에너지가 사라지고, 오직 살육과 파괴를 위한 효율적인 군대로 재탄생하는 과정이 그의 논리 회로를 경고음으로 가득 채웠다. 연합군이 스스로 호랑이의 등에 날개를 달아주었다는 사실을 그는 뼈저리게 깨달았다.
케리건은 넘쳐흐르는 사이오닉 에너지를 만끽하며 파괴된 분열기의 잔해 위로 강림했다. 그녀의 발밑으로 수많은 저그가 바다처럼 일렁이며 복종의 맹세를 바쳤다. 잃어버렸던 힘을 완전히 되찾은 여왕의 모습은 그 자체로 압도적인 재앙의 현신이었다. 그녀의 입가에 맺힌 미소는 그 어느 때보다 오만하고 잔혹했다.
동맹군 지휘관들을 향해 통신을 연결한 케리건은 이제 코랄을 되찾을 준비가 끝났음을 선언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이전의 간절함이나 타협의 여지 따위는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오직 강자만이 가질 수 있는 여유와 명령조의 어투가 통신망을 채웠다. 멩스크와 레이너는 그 변화를 감지하고 침묵을 지켰다.
자치령의 함대와 프로토스의 전사들은 저그의 거대한 무리 틈에 섞여 다음 목적지로 향할 준비를 마쳤다. 자신들을 집어삼킬지도 모르는 괴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해야 한다는 사실에 병사들의 사기는 바닥을 쳤다. 하지만 UED를 몰아내기 위해서는 이 끔찍한 동맹을 끝까지 유지하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대군주들이 하늘을 뒤덮고, 수송선들이 그 뒤를 따르며 거대한 함대가 코랄을 향해 발진했다. 케리건은 조종석에 앉은 레이너의 굳은 얼굴을 떠올리며 조소했다. 그들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결국 자신의 장기 말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그녀를 즐겁게 했다. 군단의 부활은 곧 피비린내 나는 복수의 서막을 의미했다.
코랄 탈환전

한때 테란 자치령의 찬란한 수도였던 코랄 행성은 이제 UED의 철권통치 아래 차갑게 굳어 있었다. 연합 함대가 대기권을 뚫고 진입하자, 궤도 방어 위성들이 일제히 요격 미사일을 쏟아냈다. 그러나 케리건이 이끄는 저그의 무리는 그 모든 포화를 고기 방패로 삼아 흡수하며 멈추지 않는 해일처럼 지상으로 쏟아져 내렸다.
하늘은 갈라진 포자 주머니에서 쏟아지는 점막과 피로 붉게 물들었다. 케리건의 통제 아래 완벽하게 조직된 군단은 UED의 대공 방어망을 순식간에 유린했다. 뮤탈리스크 떼가 발키리 호위함들을 찢어발기는 동안, 거대한 울트라리스크들이 황궁 외곽의 방어벽을 종잇장처럼 부수며 진격로를 열었다.
피닉스가 이끄는 프로토스 전사들이 저그가 뚫어놓은 틈새로 강하하여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다. 광전사들의 사이오닉 검이 UED 보병들의 장갑을 두부 썰듯 갈라놓았고, 고위 기사들이 뿜어내는 사이오닉 폭풍이 적의 방어 진지를 잿더미로 만들었다. 이질적인 두 종족의 협공은 수비군을 걷잡을 수 없는 공황에 빠뜨렸다.
레이너 특공대는 시가지의 복잡한 골목을 파고들며 UED의 보급로를 차단하는 데 주력했다. 레이너는 시체와 잔해로 뒤덮인 거리를 달리며 쉴 새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저그의 산성 혈액과 테란의 화약이 뒤섞인 악취가 진동하는 전장 속에서, 그는 오직 눈앞의 적을 쓰러뜨리는 데만 모든 신경을 집중했다.
듀크 장군이 지휘하는 자치령의 전투순양함들이 둔탁한 엔진음을 내며 구름을 뚫고 나타났다. 야마토 포가 번쩍일 때마다 UED의 핵심 요새들이 굉음과 함께 무너져 내렸다. 자신의 고향을 짓밟은 불청객들을 향한 듀크의 분노가 거친 포격 명령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코랄의 하늘은 쉴 새 없는 폭발로 낮처럼 밝았다.
UED 원정군은 예상치 못한 규모의 연합 공격에 당황하며 점차 뒤로 밀려났다. 그들은 훈련받은 정예병이었지만, 저그의 압도적인 물량과 프로토스의 우월한 기술력, 그리고 지형을 숙지한 테란 반군의 협공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견고했던 아우구스트그라드의 방어선이 곳곳에서 붕괴하는 소리가 행성을 울렸다.
저글링 무리가 해병들을 물어뜯는 사이로 용기병의 포화가 날아가고, 그 위로 자치령의 전폭기들이 폭탄을 쏟아붓는 광경은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서로를 가장 증오하던 자들이 만들어낸 이 완벽한 살육의 하모니는 전쟁의 참혹함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피아를 식별하기조차 힘든 혼전 속에서 UED의 깃발이 꺾여 나갔다.
마침내 황궁을 방어하던 마지막 공성 전차 부대가 침묵했다. UED의 잔존 병력은 무기를 버리고 퇴각하거나 폐허 속으로 흩어졌다. 코랄을 짓누르던 집정 연합의 압제는 연합군의 무자비한 폭력 앞에 산산조각이 났다. 매캐한 연기가 피어오르는 아우구스트그라드의 중심에 케리건의 군단이 승리의 포효를 내질렀다.
멩스크의 귀환

전투의 열기가 가라앉은 아우구스트그라드는 참혹한 폐허로 변해 있었다. 무너진 황궁의 잔해 사이로 아크튜러스 멩스크가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군화 밑에서 으깨지는 유리 파편 소리만이 적막을 깼다. 마침내 자신의 옥좌가 있던 자리에 선 그의 얼굴에는 되찾은 권력에 대한 환희보다 짙은 피로감이 묻어났다.
제국을 되찾았다는 기쁨도 잠시, 멩스크는 자신이 치른 대가가 무엇인지 뼈저리게 실감하고 있었다. 황궁의 기둥마다 저그의 점막이 들러붙어 있었고, 공기 중에는 피비린내가 가시지 않았다. 그는 폐허가 된 도시를 내려다보며, 이 승리가 자신의 힘으로 이룬 것이 아님을 인정해야만 하는 굴욕감에 주먹을 꽉 쥐었다.
어두운 복도 끝에서 둔탁한 발소리와 함께 케리건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의 곁에는 호위병인 저글링들이 흉측한 이빨을 드러낸 채 낮게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칼날 여왕은 여유로운 걸음걸이로 멩스크에게 다가와, 마치 자신의 소유물을 감정하듯 그의 초라한 행색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케리건은 옥좌의 잔해를 손가락으로 훑으며 차가운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녀는 이 모든 영광이 오직 자신의 자비 덕분에 가능했음을 상기시켰다. 멩스크가 황제의 자리에 앉아 숨을 쉬는 것조차 자신이 허락했기 때문이라는 선언이었다. 그 오만한 태도는 멩스크의 자존심을 갈기갈기 찢어놓기에 충분했다.
멩스크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억누르며 핏발 선 눈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당장이라도 숨통을 끊어놓고 싶었지만, 황궁 밖을 가득 메운 수백만 마리의 저그 무리가 그의 이성을 붙잡았다. 지금 반항하는 것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다. 그는 굴욕을 삼키며 뻣뻣하게 고개를 끄덕여 그녀의 힘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황궁 입구를 지키고 있던 듀크 장군은 이 굴욕적인 광경을 지켜보며 총기 손잡이를 거칠게 움켜쥐었다. 그의 얼굴은 분노로 붉게 달아올랐고, 흉터 진 입술 사이로 거친 욕설이 튀어나올 뻔했다. 하지만 황제의 무언의 제지에 그는 결국 무기를 내리고 침묵을 택했다. 자치령의 자존심이 저그의 발밑에 짓밟히는 순간이었다.
케리건은 멩스크의 항복 선언을 받아내고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이 나약한 테란 지도자가 언제든 기회만 생기면 자신의 등 뒤에 칼을 꽂을 위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그를 살려두는 것이 자신의 장기판에 더 유리했다. 그녀는 멩스크를 철저히 장기 말로 취급하고 있었다.
텅 빈 옥좌에 주저앉은 멩스크는 케리건의 뒷모습이 어둠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테란의 황제는 화려하게 귀환했지만, 그의 제국은 칼날 여왕의 그림자 아래 놓인 위태로운 모래성에 불과했다. 권력을 향한 그의 끝없는 탐욕이 결국 자신을 가장 끔찍한 괴물의 노예로 만들어버린 셈이었다.
기만적인 승리의 달콤함

황궁 외곽에 임시로 마련된 야전 지휘소에서 레이너와 피닉스가 전투 결과를 보고받고 있었다. 홀로그램 지도 위로 UED 병력의 후퇴 경로가 표시되며 그들의 완벽한 승리를 증명했다. 무적이라 여겨졌던 지구의 원정군이 코랄에서 뼈아픈 패배를 겪고 쫓겨난 것이다. 지휘소 안에는 묘한 안도감이 흐르고 있었다.
레이너는 피로에 지친 얼굴을 쓸어내리며 피닉스에게 다가가 짧은 미소를 건넸다. 끝이 보이지 않던 전쟁 속에서 두 영웅은 서로의 등을 맡기며 깊은 전우애를 다져왔다. 비록 저그와 손을 잡는 불명예를 감수해야 했지만, 결과적으로 이 구역의 모든 생명체를 노예로 만들려던 UED의 야욕을 꺾는 데 성공했다.
피닉스 역시 용기병의 육중한 동체를 낮추며 기계음 섞인 목소리로 답했다. 프로토스의 긍지를 굽히는 뼈아픈 결정이었으나, 오늘 그들이 흘린 피가 우주의 평화를 가져올 것이라 굳게 믿었다. 두 지휘관은 이 기형적인 동맹이 마침내 그 목적을 다했으며, 이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상처를 치유할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멩스크는 통신망을 복구하고 흩어진 자치령의 잔존 병력을 긁어모으기 시작했다. 그의 눈빛에는 다시 한번 제국을 부흥시키겠다는 야욕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비록 케리건의 통제 아래 놓여 있다 해도, 권좌를 되찾은 이상 어떻게든 상황을 역전시킬 방도를 찾을 작정이었다. 승리의 달콤함이 그의 경계심을 흐리게 만들었다.
동맹군이 잠시나마 승리의 기쁨에 취해 긴장을 늦춘 사이, 케리건은 황궁의 가장 높은 탑에서 그들을 차갑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일말의 동지애나 연민도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자신의 힘을 온전히 되찾기 위해 이 어리석은 자들의 절박함을 이용했을 뿐, 그녀의 진짜 계획은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케리건의 정신 연결망을 통해 수백만 마리의 저그가 은밀하게 진형을 재배치하고 있었다. 테란과 프로토스의 병력이 무방비 상태로 휴식을 취하는 야영지 주변으로 치명적인 가시 촉수들이 소리 없이 뿌리를 내렸다. 그녀는 가장 완벽한 배신의 순간을 계산하며, 사냥감을 몰아넣은 포식자의 여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레이너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문득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너무나도 순조로운 승리, 그리고 지나치게 고요한 저그의 움직임이 그의 직감을 자극했다. 하지만 전투의 피로와 승리의 안도감이 그의 이성을 마비시켰고, 다가오는 거대한 재앙의 그림자를 애써 무시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치명적인 실수였다.
코랄의 밤바람이 매캐한 연기를 실어 나르는 가운데, 동맹군들은 내일의 희망을 이야기하며 잠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어둠 속에 숨은 칼날 여왕은 자신의 발톱을 날카롭게 세우며 피비린내 나는 살육의 축제를 준비하고 있었다. 영원할 것 같았던 그들의 기만적인 승리는 다가오는 핏빛 새벽과 함께 산산조각 날 운명이었다.
댓글 1
연대기 형식으로 재구성한 타소니스와 코랄 탈환전의 과정이 흥미롭네요. 원작 게임의 미션 흐름을 따라가면서 케리건의 심리적 변화와 동맹군 간의 불신을 서술했는데, 이 서사에서 케리건이 배신을 결심하는 결정적인 순간은 언제라고 해석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