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크래프트 연대기 26화 · 나루드의 얼굴과 살아 있는 포로
원작의 사건을 바탕으로 새로 쓴 팬 서사입니다. 인물의 감정과 대사, 장면의 분위기는 재구성했으며 주요 결말을 포함합니다.
스카이거 기지의 그림자

스카이거 기지의 대기는 폐부를 찌르는 독성 가스로 가득했다. 케리건은 뫼비우스 재단이 은밀하게 운영하는 거대한 연구 시설 입구에 서서 차가운 금속 벽면을 응시했다. 어둠 속에서 기계음과 섞인 기괴한 생명체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녀는 이곳에 숨겨진 끔찍한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굳은 결의를 다지며 조심스럽게 시설 내부로 발걸음을 옮겼다.
부서진 통로를 지나던 중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 낯선 형태의 생명체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절반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나머지 절반은 흉측한 저그의 생체 조직으로 뒤덮인 기괴한 형상이었다. 낡고 해진 지구 집정 연합의 군복을 걸친 그 남자는 케리건을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내디뎠다. 케리건은 경계하며 사이오닉 에너지를 손끝에 집중했다.
남자는 적대감을 보이지 않은 채 멈춰 서서 자신의 이름을 알렉세이 스투코프라고 밝혔다. 케리건의 눈동자가 놀라움으로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녀의 기억 속에서 스투코프는 과거 브락시스 행성에서 배신당해 이미 목숨을 잃은 자였기 때문이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옛 유이디의 제독이 이렇게 끔찍하게 감염된 모습으로 눈앞에 서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스투코프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이 겪은 참혹한 과거의 파편들을 덤덤한 목소리로 털어놓았다. 죽음의 문턱을 넘었던 그는 저그 정신체에 의해 강제로 부활하여 감염되었고 이후 뫼비우스 재단에 붙잡혔다고 했다. 그들은 스투코프의 몸을 해부하고 조작하며 끝없는 고통 속에서 생체 실험을 자행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오랜 세월 억눌린 깊은 분노가 서려 있었다.
그는 굽은 손가락을 들어 올려 기지 중심부에 우뚝 솟은 거대한 실험실 구조물을 가리켰다. 스투코프는 저 안에서 프로토스와 저그의 유전자를 결합하는 끔찍한 혼종 교배 실험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단순한 괴물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주의 섭리를 거스르는 파멸의 씨앗을 키우고 있다는 것이다. 케리건은 그의 말에서 심상치 않은 위협을 감지했다.
기지 깊은 곳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어둡고 뒤틀린 사이오닉 파동이 케리건의 신경을 날카롭게 긁어댔다. 그것은 순수한 저그의 에너지도 고결한 프로토스의 힘도 아닌 끔찍하게 융합된 공포의 메아리였다. 혼종들이 뿜어내는 기운은 그녀가 제루스에서 얻은 원시의 힘마저 긴장하게 만들 정도로 강력했다. 이 시설을 그대로 방치한다면 전 우주가 위험해질 것이 분명했다.
스투코프는 자신을 따르는 감염된 테란 무리를 이끌고 이 기지의 주인을 향해 복수하겠다며 동맹을 제안했다. 그는 내부 구조와 방어 체계를 꿰뚫고 있었고 케리건에게는 혼종을 쓸어버릴 강력한 군단이 있었다. 두 사람의 목적은 이 끔찍한 실험을 끝내고 배후의 책임자를 처단하는 것으로 완벽하게 일치했다. 서로의 상처를 이해하는 두 괴물의 연합이 결성되었다.
케리건은 고개를 끄덕이며 스투코프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군단에게 스카이거 기지의 외곽 방어선을 돌파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땅거미가 내려앉은 기지 위로 수많은 대군주들이 하늘을 뒤덮으며 저그 전사들을 강하하기 시작했다. 감염된 테란과 원시 저그가 뒤섞인 압도적인 병력이 뫼비우스 재단의 요새를 향해 무자비한 진격을 시작하며 복수의 서막을 올렸다.
드러난 기만자의 정체

기지의 복도를 피로 물들이며 전진하는 동안 스투코프는 자신을 이 지옥으로 몰아넣은 원흉에 대해 입을 열었다. 그의 눈빛은 과거의 끔찍한 기억을 떠올리는 듯 어둡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는 사미르 듀란이라는 이름을 입에 올리며 그가 어떻게 유이디를 기만하고 자신들을 파멸로 이끌었는지 설명했다. 배신의 순간에 느꼈던 차가운 총구의 감촉이 아직도 선명하다고 했다.
브락시스에서 사이오닉 분열기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작전 중 듀란은 스투코프를 반역자로 몰아세우고 무자비하게 방아쇠를 당겼다. 조국의 승리를 위해 헌신했던 제독은 가장 신뢰해야 할 부하의 손에 허무하게 쓰러져야 했다. 스투코프는 듀란의 눈빛에서 인간의 것이 아닌 차갑고 이질적인 광기를 보았다고 회상했다. 그것은 단순한 권력욕에서 비롯된 배신이 아니었다.
숨이 끊어진 후 그의 시신은 저그의 손에 넘어가 정신체의 실험 대상이 되었고 끔찍한 감염의 과정을 거쳐야 했다. 인간으로서의 자아와 저그의 본능이 충돌하는 고통 속에서 그는 괴물로 다시 태어났다. 스투코프는 자신의 흉측한 팔을 내려다보며 죽음조차 허락되지 않은 저주받은 운명을 한탄했다. 그러나 그 고통은 그를 더욱 냉혹하고 단단한 존재로 만들었다.
감염된 이후에도 그의 시련은 끝나지 않았고 뫼비우스 재단의 용병들에게 생포되어 이 스카이거 기지로 끌려왔다. 연구원들은 감염을 통제하고 혼종을 완성하기 위한 데이터를 얻기 위해 그의 몸을 매일같이 찢고 봉합했다. 진통제조차 투여되지 않은 생체 실험의 기억은 그의 영혼에 지울 수 없는 흉터를 남겼다. 스투코프의 목소리는 분노를 넘어선 서늘한 살기를 띠고 있었다.
케리건은 말없이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제루스에서 얻은 원시 저그의 감각으로 그의 깊은 상실감과 고통을 공감했다. 그녀 역시 타인의 의지에 의해 괴물로 변해야 했던 과거가 있었기에 스투코프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길을 걸어왔지만 결국 누군가의 장기말이 되어 삶을 유린당했다는 잔혹한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었다.
스투코프는 대화를 마무리하며 이 끔찍한 혼종 실험실을 지휘하는 최고 책임자의 이름이 에밀 나루드 박사라고 밝혔다. 그는 나루드가 표면적으로는 뫼비우스 재단의 뛰어난 과학자 행세를 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거대한 악의가 숨겨져 있다고 경고했다. 나루드의 연구는 단순한 과학적 호기심이 아니라 누군가를 부활시키기 위한 의식에 가까웠다.
그리고 스투코프는 케리건을 향해 가장 충격적인 진실을 내뱉었다. 에밀 나루드는 바로 과거 자신을 쏘았던 사미르 듀란과 동일 인물이라는 것이다. 이름의 철자를 뒤집어 교묘하게 정체를 숨긴 채 수많은 얼굴을 바꿔가며 코프룰루 구역 전체를 농락해 온 기만자의 진짜 모습이었다. 그 순간 케리건의 머릿속에 과거 듀란과 얽혔던 모든 기분 나쁜 기억들이 스쳐 지나갔다.
진실을 깨달은 케리건의 눈동자가 보라색 사이오닉 에너지로 맹렬하게 타올랐다. 듀란이 처음부터 끝까지 혼종 프로젝트를 주도하며 우주를 파멸로 몰아넣고 있었다는 사실이 그녀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그녀는 더 이상 지체할 이유가 없음을 깨닫고 나루드의 숨통을 끊어버리기 위해 실험실의 가장 깊은 심장부를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혼종 실험실의 파멸

육중한 금속 문이 파괴되며 케리건과 스투코프는 거대한 중앙 실험실의 내부로 들어섰다. 벽면을 따라 늘어선 거대한 정지장 관 안에는 역겨운 녹색 액체가 가득 차 있었고 그 속에는 기괴한 생명체들이 웅크리고 있었다. 프로토스의 우아한 골격과 저그의 흉폭한 갑각이 억지로 꿰매어진 듯한 끔찍한 혼종들이었다. 실험실 전체에 소름 끼치는 생명 유지 장치의 소음이 진동했다.
정지장 안의 혼종들은 케리건의 강력한 사이오닉 에너지를 감지한 듯 닫힌 눈을 번쩍 뜨며 용액 속에서 격렬하게 요동쳤다. 두 종족의 정수가 충돌하며 만들어내는 부조화스러운 파동은 공간 자체를 일그러뜨릴 정도로 위협적이었다. 이것은 진화가 아니라 누군가의 병든 상상력이 만들어낸 신성 모독 그 자체였다. 케리건은 본능적인 혐오감에 휩싸여 미간을 찌푸렸다.
그때 실험실 전체의 스피커를 통해 나루드의 차분하고 거만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는 케리건의 방문을 환영한다며 여유로운 태도로 그녀의 원시 저그 형태를 흥미롭다는 듯 평가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일말의 두려움도 없이 오히려 자신의 위대한 실험실에 제 발로 찾아온 실험체를 반기는 듯한 오만함이 가득했다. 그 비열한 음성은 케리건의 신경을 날카롭게 자극했다.
케리건은 허공을 향해 그의 옛 이름인 듀란을 부르며 당장 비겁한 숨바꼭질을 멈추고 모습을 드러내라고 소리쳤다. 나루드는 가볍게 웃음을 터뜨리며 듀란이라는 이름 역시 자신이 거쳐 온 수많은 가면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대답했다. 그는 자신을 하나의 이름으로 규정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며 자신은 그보다 훨씬 위대하고 영속적인 존재의 의지를 대변한다고 조롱했다.
나루드는 자신의 주인이자 타락한 젤나가인 아몬의 원대한 계획을 자랑스럽게 떠벌리기 시작했다. 이 혼종들은 아몬이 우주를 새롭게 창조하기 위해 준비한 완벽한 육체이며 모든 불완전한 생명체들을 구원할 열쇠라고 주장했다. 그는 케리건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이미 시작된 순환의 끝을 막을 수는 없으며 결국 아몬의 발밑에 굴복하게 될 것이라고 저주를 퍼부었다.
조롱을 마친 나루드는 실험실의 통제 시스템을 가동하여 정지장 관의 구속을 일제히 해제했다. 유리가 깨지는 굉음과 함께 쏟아져 내린 점액질 사이로 거대한 혼종들이 포효하며 바닥으로 착지했다. 그들은 붉게 빛나는 눈으로 케리건을 노려보며 끔찍한 사이오닉 에너지를 방출하기 시작했다. 나루드는 혼종들이 그녀의 훌륭한 무덤을 만들어 줄 것이라며 통신을 끊었다.
케리건은 등 뒤의 날개를 활짝 펼치며 맹렬하게 덤벼드는 혼종들을 향해 돌진했다. 사이오닉 폭풍과 원시 저그의 흉폭한 힘이 충돌하며 실험실 내부는 순식간에 파괴적인 에너지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혼종들의 공격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치명적이었지만 제루스에서 다시 태어난 케리건의 힘은 그들을 압도하고도 남았다. 그녀의 날카로운 발톱이 혼종의 두꺼운 장갑을 찢어발겼다.
치열한 전투 끝에 마지막 혼종이 단말마를 내지르며 바닥에 쓰러지자 실험실에는 다시 무거운 정적이 찾아왔다. 스투코프는 숨을 고르며 남은 감염된 병력과 함께 주변의 보안 장치를 무력화하고 퇴로를 확보하는 데 집중했다. 케리건은 나루드가 숨어 있는 가장 깊은 성소를 향해 시선을 고정하며 그와의 피할 수 없는 마지막 결전을 위해 홀로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가장 잔인한 환영

케리건이 발을 들인 곳은 기지의 일반적인 구역과는 전혀 다른 고대 사원과도 같은 거대한 지하 동굴이었다. 공기 중에는 숨을 쉬기 힘들 정도로 짙고 무거운 어둠의 에너지가 짓누르듯 깔려 있었다. 바닥에는 알 수 없는 문양들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고 공간 전체가 살아있는 것처럼 기분 나쁜 맥박을 뛰고 있었다. 그녀는 감각을 곤두세우며 나루드의 기운을 찾았다.
텅 빈 공간 한가운데서 안개와 함께 나루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그의 모습은 예상했던 기괴한 외계 생명체나 듀란의 얼굴이 아니었다. 안개가 걷힌 자리에 서 있는 것은 낡은 전투복을 입은 짐 레이너였다. 케리건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고 심장은 걷잡을 수 없이 요동쳤다. 가장 보고 싶었던 연인의 얼굴이 적의 잔인한 환영으로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가짜 레이너는 특유의 슬프고 실망스러운 눈빛으로 케리건을 응시하며 짐의 목소리 그대로 입을 열었다. 그는 자신이 그녀를 구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는지 아느냐며 왜 다시 그 끔찍한 괴물의 모습으로 돌아갔냐고 책망했다. 인간성을 포기하고 살육의 길을 선택한 그녀를 원망하는 그 목소리는 케리건의 가슴을 날카로운 비수처럼 후벼 팠다.
케리건은 눈앞의 존재가 나루드가 만들어낸 교활한 환영이라는 것을 이성적으로는 분명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사랑하는 남자의 얼굴과 목소리로 쏟아내는 비난 앞에 그녀의 사이오닉 집중력은 미세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뒷걸음질 치며 변명하듯 입술을 달싹였지만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나루드는 그녀의 가장 연약한 죄책감을 정확히 찔러오고 있었다.
케리건이 고통스러워하자 환영은 다시 한번 기괴하게 일그러지며 이번에는 또 다른 모습으로 변모했다. 붉은 머리카락을 단정하게 묶고 유령 요원의 깔끔한 제복을 입은 인간 시절의 사라 케리건이었다. 과거의 자신과 마주한 케리건은 숨을 들이켰다. 인간 사라는 차갑고 경멸 어린 시선으로 원시 저그가 된 현재의 자신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비웃음을 흘렸다.
인간 케리건의 환영은 현재의 그녀를 향해 넌 결코 빛으로 돌아갈 수 없는 끔찍한 괴물일 뿐이라며 잔인한 독설을 퍼부었다. 아무리 멩스크에게 복수하고 세상을 구하려 발버둥 쳐도 결국 네 손에 묻은 수십억의 피는 지워지지 않는다고 조롱했다. 나루드는 케리건의 내면에 깊게 자리 잡은 자기혐오와 두려움을 시각화하여 그녀의 정신을 완전히 붕괴시키려 하고 있었다.
끊임없이 형태를 바꾸며 쏟아지는 환영들의 비난 속에서 케리건은 두통을 느끼며 머리를 부여잡았다. 나루드는 물리적인 전투가 벌어지기 전에 그녀의 의지를 꺾어버리기 위해 이 악랄한 심리전을 치밀하게 준비한 것이 분명했다. 과거의 망령들이 그녀의 귓가에 끊임없이 절망을 속삭이며 원시 저그의 힘을 통제하는 그녀의 정신적 방어벽을 갉아먹고 있었다.
하지만 케리건은 두 눈을 질끈 감고 제루스의 원시 산란못에서 겪었던 고통과 결의를 떠올리며 정신을 다잡았다. 그녀는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짐을 짊어지기로 선택했는지 명확히 알고 있었다. 눈을 번쩍 뜬 그녀는 보라색 안광을 뿜어내며 더 이상 네 얄팍한 속임수에 놀아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환영을 찢어버리듯 방출된 사이오닉 파동이 동굴 전체를 거세게 휩쓸었다.
공허와 원시의 격돌

심리전이 통하지 않자 나루드는 가증스러운 환영을 거두고 본래의 에밀 나루드 박사 모습으로 돌아와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그의 몸에서는 빛을 빨아들이는 듯한 짙은 공허의 에너지가 불길하게 뿜어져 나왔다. 동굴 안의 공기가 급격히 차가워지며 숨 막히는 압박감이 공간을 지배했다. 그는 젤나가의 대리자로서 인간의 껍데기 뒤에 숨겨진 초월적인 사이오닉 힘을 해방하며 케리건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나루드가 손을 뻗자 어둠의 공허 에너지가 거대한 파도처럼 휘몰아치며 케리건을 덮쳤다. 케리건 역시 날개를 펼치고 도약하며 제루스에서 얻은 강력한 원시 사이오닉 에너지를 집중해 그에 맞섰다. 두 초월적인 존재의 힘이 정면으로 충돌하자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동굴의 천장과 바닥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단순한 육탄전이 아니라 정신과 영혼을 깎아먹는 끔찍한 사이오닉 차원의 사투가 벌어졌다.
전투는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잔혹하게 흘러갔다. 나루드가 뿜어내는 어두운 공허의 마법은 케리건의 단단한 원시 갑각을 녹여버릴 듯이 타올랐고 케리건의 흉폭한 발톱은 나루드의 방어막을 끊임없이 찢어발겼다. 두 존재는 서로의 생명력을 갉아먹으며 극한의 한계까지 서로를 몰아붙였다. 케리건의 숨소리가 거칠어졌고 나루드의 기운도 조금씩 흩어지기 시작했다.
전투가 절정에 달했을 때, 나루드는 갑자기 짐 레이너의 모습으로 변신했다. 뜻밖의 외형에 케리건이 찰나의 순간 주춤하며 방심한 사이, 가짜 레이너는 차가운 눈빛으로 공허의 에너지가 응축된 검을 휘둘러 케리건의 몸을 깊숙이 꿰뚫었다. 살이 타들어 가는 끔찍한 고통에 케리건이 비명을 질렀고, 나루드는 레이너의 목소리로 아몬의 부활은 이미 확정된 미래라며 그녀를 조롱했다.
하지만 어깨를 관통당한 끔찍한 고통조차 케리건의 분노를 잠재우지는 못했다. 그녀는 상처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무시한 채 제루스에서 흡수한 모든 원시 저그의 정수를 등 뒤의 날개로 끌어모았다. 나루드가 당황하여 물러서려 했지만 케리건은 그의 팔을 강하게 움켜쥐고 도망치지 못하게 고정했다. 그녀의 눈동자가 분노로 타오르며 압도적인 에너지가 폭발할 준비를 마쳤다.
하지만 몸을 관통당한 끔찍한 고통조차 케리건의 결의를 꺾지는 못했다. 나루드는 다시 인간 시절 사라 케리건의 모습으로 변해 그녀의 마음을 흔들려 했으나, 케리건은 상처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무시한 채 등 뒤의 날카로운 날개 뼈를 뻗어 나루드의 흉부를 무자비하게 꿰뚫었다. 나루드의 입에서 검은 피가 쏟아져 나왔고 그를 감싸고 있던 공허의 에너지가 미친 듯이 요동치며 흩어지기 시작했다.
바닥에 쓰러져 죽어가면서도 나루드는 케리건을 향해 기괴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는 헐떡이는 목소리로 아몬은 이미 살아있으며 네가 그를 보았다는 의미심장하고 섬뜩한 유언을 남겼다. 그 말은 단순한 저주가 아니라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파멸이 시작되었다는 확신에 찬 선언이었다. 케리건의 심연 깊은 곳에서 설명할 수 없는 서늘한 공포가 피어올랐다.
마침내 나루드의 숨이 완전히 끊어지고 그의 육체는 재가 되어 어둠 속으로 흩어졌다. 케리건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피투성이가 된 채로 무너져 내리는 동굴 한가운데 우뚝 섰다. 나루드를 처단하고 복수의 한 단계를 마쳤지만 그녀의 마음은 조금도 가벼워지지 않았다. 이 승리는 끝이 아니라 다가올 진정한 어둠과의 전쟁을 알리는 비극적인 서막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모로스 감옥선 침투

스카이거 기지를 완전히 파괴하고 거대괴수로 귀환한 케리건은 이즈샤에게 뫼비우스 재단의 데이터베이스에서 탈취한 정보들을 분석하라고 지시했다. 수많은 암호화된 파일들을 해독하던 중 자치령의 최고 기밀 통신망에서 오고 간 매우 의심스러운 교신 기록이 발견되었다. 그것은 황제 멩스크가 직접 관리하는 일급 보안 문서로 철저하게 숨겨져 있던 진실의 조각이었다.
암호가 완전히 풀리고 화면에 나타난 문서를 확인한 케리건의 심장이 멎을 듯이 덜컹거렸다. 자치령의 공식 발표와 달리 짐 레이너는 처형되지 않았으며 여전히 살아있다는 명백한 증거가 그곳에 있었다. 멩스크는 케리건을 심리적으로 통제하고 절망에 빠뜨리기 위해 잔인한 거짓말을 꾸며냈던 것이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연인이 살아있다는 사실에 그녀는 온몸을 떨었다.
데이터에 따르면 레이너는 모로스라는 이름의 자치령 최고 보안 감옥선에 수감되어 있었다. 모로스는 고정된 위치 없이 우주 공간을 끊임없이 이동하며 추적을 피하는 거대한 이동식 요새였다. 케리건은 즉시 군단의 모든 정보망을 동원하여 모로스의 현재 궤도를 계산하고 예상 이동 경로를 파악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단 1초의 지체도 허용할 수 없는 긴박한 순간이었다.
다행이라는 안도감과 자신을 철저히 기만한 멩스크를 향한 끓어오르는 분노가 동시에 그녀의 이성을 마비시킬 듯 몰아쳤다. 멩스크는 레이너의 목숨을 담보로 자신을 조종하려 했지만 그것은 그의 가장 치명적인 실수가 될 것이었다. 케리건은 주먹을 꽉 쥐며 당장 모로스를 습격하여 레이너를 구출하고 자치령의 함대를 잿더미로 만들어버리겠다고 맹세했다.
거대괴수가 신경망을 펄떡이며 시공간을 찢고 도약하여 모로스 감옥선이 위치한 심우주 좌표로 나타났다. 감옥선이 다음 차원 도약을 준비하기 위해 잠시 궤도에 머무르는 찰나의 순간을 정확히 노린 기습이었다. 거대괴수의 촉수들이 거대한 감옥선의 외벽을 강하게 휘감으며 선체를 고정시켰고 자치령의 경고 사이렌이 우주 공간을 찢을 듯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케리건은 가장 날래고 흉폭한 원시 저그 타격대를 이끌고 감옥선의 장갑판을 뚫고 내부로 침투했다. 강철 외벽이 종잇장처럼 찢겨 나가고 군단의 무리가 함선 내부로 쏟아져 들어갔다. 자치령 해병들이 다급하게 방어선을 구축하고 총탄을 퍼부었지만 분노에 찬 칼날 여왕의 진격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녀는 오직 레이너가 갇혀 있는 심층 보안 구역만을 향해 직진했다.
좁은 복도에서 벌어진 전투는 일방적인 학살에 가까웠다. 케리건의 사이오닉 에너지가 번쩍일 때마다 육중한 보안 문들이 박살 나고 해병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허공으로 내동댕이쳐졌다. 감옥선의 내부 시스템이 마비되고 통신망이 두절되며 자치령 병사들은 극도의 공포에 휩싸였다. 케리건은 주변의 적들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오직 레이너의 미약한 파동만을 쫓았다.
마침내 가장 깊은 곳에 위치한 최고 등급의 독방 앞에 도달한 케리건은 거대한 금속 문을 사이오닉 힘으로 단숨에 뜯어냈다. 매캐한 연기와 스파크가 튀는 가운데 어두운 감방 내부의 풍경이 서서히 드러났다. 그녀는 떨리는 숨을 내쉬며 그토록 찾아 헤매던 남자의 이름을 조심스럽게 불렀다. 길고 길었던 절망의 끝에서 마침내 두 사람이 다시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엇갈린 재회와 상처

파괴된 문틈 사이로 쏟아지는 비상조명 아래 벽에 기대어 주저앉아 있던 짐 레이너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오랜 수감 생활과 고문으로 인해 그의 얼굴은 흙먼지와 굳은 피로 얼룩져 있었고 눈빛은 지쳐 있었다. 감방 안으로 들이닥친 폭발음과 매캐한 연기 속에서 그는 자신을 구하러 온 구원자의 실루엣을 확인하기 위해 흐릿한 시야를 애써 집중했다.
연기가 서서히 걷히며 실루엣의 주인이 명확히 드러나자 레이너의 눈동자가 믿을 수 없다는 듯 크게 확장되었다. 그는 멩스크의 손아귀에서 자신을 구하러 온 사람이 붉은 머리카락을 흩날리는 인간 사라 케리건일 것이라 굳게 믿고 있었다. 자신이 모든 것을 걸고 젤나가 유물로 정화해 냈던 그 아름답고 연약한 여인이 미소 지으며 손을 내밀어 줄 것이라 상상했었다.
하지만 그의 눈앞에 서 있는 존재는 과거의 악몽 속에서 수없이 그를 괴롭혔던 칼날 여왕의 진화한 모습이었다. 핏빛으로 번뜩이는 보라색 안광과 등 뒤로 뻗어 나온 흉측한 가시 날개 그리고 온몸을 덮고 있는 원시 저그의 단단한 갑각이 그를 짓누르듯 다가왔다. 인간의 온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 끔찍한 외형은 레이너의 가슴을 철퇴로 내리치는 듯한 충격을 안겼다.
케리건은 레이너의 굳어진 표정을 보며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지만 애써 다정한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부르며 다가갔다. 그녀는 날카로운 발톱이 달린 손을 조심스럽게 내밀며 이제 다 끝났으니 함께 이곳을 빠져나가자고 말했다. 그녀의 눈빛만큼은 과거의 사라와 다를 바 없이 애틋했지만 흉측한 외형과 대비되어 오히려 더 큰 이질감을 자아내고 있었다.
레이너는 내밀어진 그녀의 손을 잡는 대신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리며 뒷걸음질 쳤다. 그의 얼굴에는 안도감 대신 깊은 배신감과 경악이 짙게 깔려 있었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거냐며 이 모든 상황이 현실이 아니기를 바라는 듯 중얼거렸다. 그가 평생을 바쳐 되돌려 놓은 기적이 그녀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산산조각 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이 그녀를 인간으로 되돌리기 위해 지옥 같은 전장을 누비며 코프룰루 구역 전체를 뒤흔들었던 그 모든 노력과 동료들의 희생을 언급하며 분노를 토해냈다. 그 모든 고난을 딛고 겨우 얻어낸 인간으로서의 삶을 어떻게 스스로 내던지고 다시 괴물이 될 수 있냐는 원망이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단순히 변해버린 외형에 대한 거부감이 아니라, 그녀가 복수를 위해 인간성을 포기해 버린 선택에 대한 깊은 절망과 상실감이 배어 있었다.
케리건은 상처받은 그의 눈빛에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느끼며 다급하게 변명했다. 멩스크가 그를 죽였다고 생각했고 복수를 위해 그리고 다가올 거대한 위협으로부터 군단과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이 힘이 반드시 필요했다고 호소했다. 그녀는 자신이 여전히 사라 케리건임을 증명하려 애썼지만 변명은 공허하게 맴돌 뿐 레이너의 닫힌 마음을 열지 못했다.
레이너는 고통스럽게 고개를 저으며 그녀의 변명을 외면한 채 차갑게 돌아섰다. 두 사람 사이에는 물리적인 거리를 뛰어넘는 거대한 감정의 단층이 생겨나 버렸다. 케리건은 허공에 멈춘 자신의 손을 천천히 거두며 뼈저린 후회와 슬픔을 삼켜야 했다. 레이너를 죽음의 문턱에서 구출해 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녀는 가장 소중한 사람의 마음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돌이킬 수 없는 결단

모로스 감옥선을 빠져나와 짐 레이너의 수송선이 있는 탈출 구역으로 향하는 길은 숨 막히는 침묵으로 가득 찼다. 레이너는 케리건과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은 채 굳은 표정으로 앞만 보며 걸었고 케리건 역시 그를 재촉하지 못하고 묵묵히 뒤를 따랐다. 주변에서 저그 무리가 파괴된 자치령 함선의 잔해를 정리하고 있었지만 두 사람의 세상은 차갑게 얼어붙어 있었다.
케리건은 가슴 한구석이 텅 빈 것처럼 시려오는 것을 느꼈다. 나루드의 공허 검에 찔렸을 때보다 지금 레이너의 차가운 등 뒤를 바라보는 것이 수천 배는 더 고통스러웠다. 제루스에서 원시 저그의 힘을 받아들이며 어느 정도 예상했던 대가였지만 막상 현실로 다가온 상실감은 그녀가 감당하기 버거울 정도로 무거웠다. 그녀는 속으로 소리 없는 눈물을 삼켰다.
그녀는 레이너를 살리기 위해 그리고 멩스크라는 괴물을 처단하기 위해 스스로 더 큰 괴물이 되는 길을 선택했다. 그것은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결단이었지만 결과적으로 그 선택이 레이너가 사랑했던 인간 사라를 영원히 죽여버린 셈이 되었다. 힘을 얻은 대신 사랑을 잃어버린 이 잔인한 운명의 굴레 속에서 케리건은 자신의 업보를 뼈저리게 실감하고 있었다.
마침내 히페리온으로 귀환하기 위한 수송선 앞에 도착하자 레이너가 무거운 발걸음을 멈추고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그의 눈빛은 분노를 넘어선 텅 빈 공허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낮고 갈라진 목소리로 이제 우리 사이는 끝났으며 자신이 알던 사라는 이미 죽었다고 선언했다. 그 짧고 단호한 한마디는 두 사람의 오랜 인연에 마침표를 찍는 잔인한 선고였다.
수송선의 해치가 닫히고 엔진이 점화되며 레이너를 태운 함선이 어두운 우주 저편으로 멀어지는 모습을 케리건은 말없이 지켜보았다. 심장이 뜯겨 나가는 듯한 슬픔이 밀려왔지만 그녀는 흔들리는 눈빛을 애써 다잡으며 스스로를 억눌렀다. 그녀는 이제 한 남자의 연인이 아니라 수십억의 생명을 책임져야 할 군단의 지배자로서 홀로 서야만 했다.
레이너의 뒷모습을 보며 그녀는 자신이 선택한 길을 결코 되돌릴 수 없음을 다시 한번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녀가 짊어진 짐은 레이너 한 사람이 이해하기에는 너무도 거대하고 참혹한 우주의 운명 그 자체였다. 슬픔에 잠겨 있을 시간조차 그녀에게는 사치였다. 아몬의 위협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고 그전에 반드시 끝맺어야 할 오랜 악연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거대괴수로 돌아온 케리건은 거대한 신경망 한가운데 서서 군단의 모든 무리 어미들에게 전투 준비를 지시했다. 그녀의 눈동자에서 슬픔이 걷히고 그 자리에 차갑고 날카로운 복수심이 깃들었다. 이제 그녀를 옭아매던 모든 미련과 약점은 사라졌고 오직 피로 물든 목표만이 남았다. 군단은 여왕의 명령을 기다리며 우주를 집어삼킬 듯한 흉폭한 울음소리를 토해냈다.
케리건은 거대괴수의 투명한 막 너머로 끝없이 펼쳐진 별빛을 응시하며 자치령의 심장부인 코할 행성을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 아크튜러스 멩스크가 저지른 모든 기만과 악행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할 시간이 마침내 도래했다. 그녀는 낮고 서늘한 목소리로 코할로 향하라는 마지막 명령을 내렸다. 진정한 복수의 칼날이 자치령의 숨통을 끊기 위해 어둠을 가르고 진격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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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루드의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은 언제 봐도 소름이 돋네요. 듀란이라는 이름의 숨겨진 의미를 처음 알았을 때의 충격이 다시 느껴지는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