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전체 보기
스토리

디아블로 연대기 22화 · 천사의 군대가 지옥에 들어간 날

이 글의 목차
  1. 침수된 사원과 끔찍한 대가
  2. 사파이어 영혼석의 조율
  3. 빛의 대성당 지옥으로 향하다
  4. 지옥 전쟁과 학살
  5. 헛된 희망 천상을 향한 갈구
  6. 찢겨진 날개와 추락
  7. 영혼 기둥과 도난의 최후
  8. 남겨진 자들의 무거운 발걸음
  9. 확인한 자료

원작의 사건을 바탕으로 새로 쓴 팬 서사입니다. 인물의 감정과 대사, 장면의 분위기는 재구성했으며 주요 결말을 포함합니다.

침수된 사원과 끔찍한 대가

침수된 사원에서 로라스가 네이렐의 절단된 왼팔을 붕대로 감싸는 모습.
침수된 사원에서 로라스가 네이렐의 절단된 왼팔을 붕대로 감싸는 모습.

눅눅한 이끼와 썩은 물 냄새가 진동하는 침수된 사원의 내부는 기분 나쁜 정적으로 가득했다. 네이렐은 굳게 닫힌 석문을 열기 위해 벽면에 새겨진 고대 호라드림의 장치를 조심스럽게 살폈다. 방랑자는 횃불을 들고 그녀의 등 뒤를 경계하며 어둠 속의 미세한 움직임에 집중했다.

장치의 톱니바퀴가 둔탁한 마찰음을 내며 돌아가기 시작한 순간, 고여 있던 검은 물밑에서 끔찍한 형상이 솟구쳤다. 물에 불어 터진 익사자 하나가 기괴한 괴성을 지르며 네이렐을 덮쳤다. 미처 피할 틈도 없이, 괴물의 오염된 손톱과 이빨이 장치를 조작하던 그녀의 왼손을 깊숙이 파고들며 치명적인 상처를 입혔다.

네이렐의 비명이 습한 사원 내부에 메아리쳤고, 방랑자는 즉각 무기를 휘둘러 익사자의 목을 베어냈다. 괴물은 쓰러졌지만, 상처 부위에서부터 시커먼 부패의 기운이 핏줄을 타고 빠르게 번져가기 시작했다. 로라스는 창백해진 네이렐의 상처를 확인하고는 절망적인 표정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이대로 두면 오염이 심장까지 퍼져 목숨을 잃게 될 거다. 로라스의 목소리는 무겁게 떨리고 있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음을 깨달은 그는 가방에서 날카로운 단검을 꺼내 불에 달구었다. 네이렐은 두려움에 찬 눈으로 자신의 왼손을 바라보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지만,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절단의 순간은 끔찍한 고통과 함께 지나갔다. 로라스는 감염이 더 퍼지지 않도록 신속하게 오염된 부위를 절단하고 응급처치를 하여 상처를 봉합했다. 방랑자는 고통에 몸부림치는 네이렐의 어깨를 단단히 붙잡아주며 그녀가 의식을 잃지 않도록 끊임없이 말을 건넸다. 차가운 바닥에는 돌이킬 수 없는 희생의 흔적이 남겨졌다.

의식이 흐려지는 고통 속에서도 네이렐은 남은 오른손으로 방랑자의 옷깃을 생명줄처럼 꽉 움켜쥐었다. 이마에는 식은땀이 비 오듯 쏟아졌고, 잃어버린 신체에 대한 상실감이 그녀의 어린 눈동자에 깊게 서렸다. 방랑자는 묵묵히 붕대를 감아주며 이 잔혹한 여정의 무게를 다시금 실감했다.

로라스는 잘려 나간 손을 천으로 덮으며 깊은 죄책감에 고개를 숙였다. 영혼석을 다루는 마법 의식 때문이 아니라, 그저 닫힌 길을 열려던 찰나의 불운이 어린 소녀의 삶을 영원히 바꿔놓은 것이다. 네이렐은 붕대가 감긴 뭉툭한 왼쪽 팔목을 내려다보며 애써 눈물을 참아내려 노력했다.

괜찮아요. 아직 오른손이 남아 있으니까요. 네이렐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며 방랑자의 부축을 받아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그녀의 억지스러운 미소는 오히려 지켜보는 이들의 가슴을 더 아프게 찔렀다. 일행은 참혹한 대가를 치르고 열린 문을 지나, 묵직한 침묵 속에서 발걸음을 옮겼다.

사파이어 영혼석의 조율

도난이 산케쿠르의 유해에서 증오의 정수를 추출해 사파이어 영혼석을 조율하는 모습.
도난이 산케쿠르의 유해에서 증오의 정수를 추출해 사파이어 영혼석을 조율하는 모습.

안전한 은신처에 도착한 도난은 가방에서 푸른빛을 머금은 사파이어 영혼석을 꺼냈다. 과거 아스타로트를 가두었던 이 돌은, 이제 그의 아들을 앗아간 비극의 잔재이자 세상을 구원할 마지막 희망이었다. 도난의 거친 손가락이 영혼석의 매끄러운 표면을 쓸어내릴 때마다 깊은 슬픔이 묻어났다.

릴리트를 봉인하기 위해서는 그녀의 아버지인 메피스토의 정수로 영혼석을 조율해야만 했다. 도난은 오래전 메피스토의 숙주였던 산케쿠르가 봉인되었던 칼데움 황궁 지하의 깊은 심연으로 향했다. 그곳에 남겨진 증오의 군주의 타락의 흔적과 불길한 기운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며 호라드림의 의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로라스와 방랑자는 도난의 곁을 지키며 의식에 필요한 고대 호라드림의 문양을 바닥에 그려 넣었다. 네이렐 역시 남은 오른손으로 마법의 가루를 흩뿌리며 힘을 보탰다. 도난은 심호흡을 한 뒤, 산케쿠르의 유해에 손을 뻗어 그 안에 잠든 짙은 증오의 정수를 조심스럽게 끌어내기 시작했다.

시커먼 연기 형태의 타락한 기운이 유해에서 빠져나와 사파이어 영혼석을 향해 소용돌이치며 빨려 들어갔다. 도난은 이마에 핏대가 설 정도로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하며, 증오의 힘이 영혼석을 파괴하지 않도록 정밀하게 엮어냈다. 방 안의 공기가 차갑게 식어 내리며 짓누르는 듯한 압박감이 맴돌았다.

이 돌에 담긴 내 아들의 피가, 릴리트의 심장을 꿰뚫는 족쇄가 될 것이다. 도난은 낮게 읊조리며 마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렸다. 아들을 잃은 아버지의 처절한 상실감과 호라드림으로서의 무거운 책임감이 그의 양손을 통해 푸른 돌 안으로 고스란히 흘러들어갔다. 의식은 절정을 향해 치달았다.

마침내 마지막 증오의 기운이 흡수되자, 사파이어 영혼석은 눈이 시릴 정도로 강렬한 푸른빛을 뿜어내며 안정되었다. 도난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바닥에 주저앉았고, 로라스가 다가가 그의 어깨를 묵묵히 짚어주었다. 완성된 영혼석은 마치 살아있는 심장처럼 기분 나쁜 진동을 미세하게 흘려보냈다.

네이렐은 부상당한 왼팔을 감싸 안은 채 완성된 영혼석을 경외와 두려움이 섞인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녀가 손을 잃은 참혹한 사고와 도난이 영혼석을 조율한 이 숭고한 의식은 전혀 다른 사건이었지만, 둘 다 이 여정이 요구하는 가혹한 희생이라는 점에서는 같았다. 방랑자는 묵묵히 돌을 응시했다.

준비는 끝났네. 이제 지옥으로 내려가 릴리트를 이 돌에 가두는 일만 남았어. 도난이 영혼석을 조심스럽게 갈무리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로라스와 방랑자는 고개를 끄덕였고, 네이렐 역시 결연한 표정으로 그들을 따랐다. 호라드림의 마지막 임무가 그들의 어깨를 짓누르며 무겁게 다가왔다.

빛의 대성당 지옥으로 향하다

AI 재구성 삽화 — 지옥으로 향하는 이나리우스와 참회 기사들의 행렬.
AI 재구성 삽화 — 지옥으로 향하는 이나리우스와 참회 기사들의 행렬.

같은 시각, 빛의 대성당은 거대한 전쟁의 열기로 끓어오르고 있었다. 얼굴 없는 빛의 존재인 이나리우스는 눈부신 황금빛 갑옷을 입고 찬란한 날개를 펼친 채 군대의 선두에 섰다. 투구 아래 어둠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의 안광에는 오직 릴리트를 처단하고 드높은 천상으로 귀환하겠다는 맹목적인 갈망만이 가득했다. 대지는 그의 신성한 힘에 공명하며 떨렸다.

프라바는 거대한 철퇴를 들고 이나리우스의 곁을 지키며 신도들을 향해 열정적인 기도를 올렸다. 빛의 아버지가 우리를 승리로 이끄실 것이다! 지옥의 악마들을 정화하고 구원을 맞이하라! 그녀의 외침에 수만 명의 기사들과 참회 기사단이 방패를 두드리며 광신적인 함성으로 화답했다.

이나리우스가 거대한 빛의 창을 치켜들자, 차원문이 찢어지며 불타는 지옥으로 향하는 거대한 균열이 열렸다. 유황 냄새와 끈적한 열기가 쏟아져 나왔지만, 신도들의 얼굴에는 두려움 대신 구원에 대한 맹신이 자리 잡고 있었다. 천사의 군대는 오직 빛의 인도를 믿으며 지옥의 아가리 속으로 행진했다.

붉은 용암이 강물처럼 흐르고 잿빛 하늘이 짓누르는 지옥의 풍경은 끔찍하기 그지없었다. 발을 내딛는 곳마다 뼈와 살점이 엉겨 붙은 대지가 질척거렸고, 사방에서 악마들의 기괴한 울음소리가 메아리쳤다. 하지만 이나리우스는 오직 릴리트의 기운만을 쫓으며 거침없이 전진할 뿐, 군대의 안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프라바는 선두에서 빛의 장막을 펼치며 쏟아지는 지옥의 독기를 막아내려 애썼다. 기사들은 성가를 부르며 두려움을 쫓아냈지만, 지옥의 압도적인 기운은 서서히 그들의 정신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방랑자와 호라드림 일행은 멀리서 이 거대한 군대의 무모한 진격을 지켜보며 불길한 예감에 휩싸였다.

저들은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지옥은 결코 빛으로 정화될 수 있는 곳이 아니야. 로라스가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이나리우스의 맹목적인 천상 복귀에 대한 집착이 수많은 인간들을 사지로 몰아넣고 있음이 명백했다. 도난은 착잡한 표정으로 영혼석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지옥의 심장부로 깊어질수록 대성당 군대의 대열은 서서히 길어지고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이나리우스의 빛은 앞장서 걷는 자들에게만 닿았고, 뒤처진 병사들은 짙은 어둠과 공포 속에 노출되었다. 악마들은 어둠 속에서 숨죽인 채, 오만한 사냥감들이 자신들의 함정 한가운데로 들어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내 핏빛 안개가 걷히고 거대한 악마의 군단이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이나리우스는 멈추지 않고 창을 휘둘러 선봉의 악마들을 잿더미로 만들며 돌격했다. 프라바와 기사단 역시 함성을 지르며 전투에 뛰어들었다. 천사의 군대가 지옥에 들어간 그날, 피비린내 나는 끔찍한 학살의 서막이 올랐다.

지옥 전쟁과 학살

지옥에서 악마들에게 학살당하는 빛의 대성당 군대와 부상당한 프라바.
지옥에서 악마들에게 학살당하는 빛의 대성당 군대와 부상당한 프라바.

빛의 대성당 군대와 지옥의 악마들이 충돌하는 순간, 대지는 끔찍한 파열음과 함께 요동쳤다. 신자들은 이나리우스의 빛이 자신들을 무적의 전사로 만들어줄 것이라 굳게 믿으며 검을 휘둘렀다. 초반의 기세는 훌륭했고, 악마들은 신성한 불꽃 앞에서 비명을 지르며 타들어 가는 듯 보였다.

하지만 지옥의 군세는 끝이 없었다. 쓰러진 악마들의 시체 위로 더 거대하고 흉측한 괴물들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다. 하늘에서는 날개 달린 악마들이 불덩이를 쏟아부었고, 땅 밑에서는 거대한 촉수들이 솟아올라 기사들을 낚아채어 찢어발겼다. 승리를 장담하던 신자들의 눈동자에 서서히 공포가 스며들었다.

프라바는 피투성이가 된 철퇴를 휘두르며 전열을 유지하려 목이 터져라 소리쳤다. 물러서지 마라! 빛이 우리와 함께하신다! 그러나 그녀의 외침은 악마들의 포효와 병사들의 단말마에 묻혀 흩어졌다. 굳건했던 방패벽은 거대한 덩치의 악마가 휘두른 곤봉 한 방에 종잇장처럼 구겨지며 무너져 내렸다.

이나리우스는 군대의 참상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적진 깊숙한 곳을 향해 날아갔다. 그의 황금빛 창이 번쩍일 때마다 수십 마리의 악마가 소멸했지만, 그가 지나간 자리는 곧바로 더 많은 악마들로 채워졌다. 지도자를 잃은 병사들은 짙은 잿빛 안개 속에서 방향을 잃고 고립되어 갔다.

학살은 일방적이고 잔혹했다. 참회 기사단의 묵직한 갑옷은 악마들의 압도적인 힘 앞에서 무력하게 부서져 나갔다. 병사들은 절망적인 고통 속에서 신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쓰러져 갔지만, 하늘의 응답은 없었다. 핏빛 진흙 바닥은 빛의 대성당 군대가 흘린 피로 붉게 물들며 참혹한 패배의 현장으로 변해갔다.

방랑자는 멀리서 이 끔찍한 살육의 현장을 목격하며 주먹을 꽉 쥐었다. 구원이라는 미명 아래 벌어진 이 무의미한 죽음들은 이나리우스의 오만함이 불러온 참극이었다. 로라스는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광경에 고개를 돌렸고, 네이렐은 두려움에 떨며 방랑자의 등 뒤로 몸을 숨겼다.

이건 전쟁이 아니야. 그저 도살장일 뿐이지. 도난이 참담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지옥의 열기 속에서 신자들의 찬송가는 어느새 처절한 비명과 통곡으로 바뀌어 있었다. 살고 싶다는 인간의 본능이 광신을 억누르기 시작했지만, 사방이 악마로 둘러싸인 지옥 한가운데서 도망칠 곳은 존재하지 않았다.

프라바는 부러진 창에 어깨를 관통당한 채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그녀의 눈앞에서 충직한 기사들이 악마들의 이빨에 뜯어먹히고 있었다. 빛의 승리를 굳게 믿었던 그녀의 신념이 산산조각 나는 순간이었다. 천사의 군대는 지옥을 정화하기는커녕, 그들 스스로가 지옥의 끔찍한 제물로 전락하고 말았다.

헛된 희망 천상을 향한 갈구

이나리우스가 릴리트를 창으로 찌르고 천상의 응답을 기다리는 모습.
이나리우스가 릴리트를 창으로 찌르고 천상의 응답을 기다리는 모습.

핏빛 하늘 아래, 뼈와 살점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제단 위에서 이나리우스는 마침내 릴리트와 마주했다. 증오의 딸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옛 연인이자 철천지원수를 맞이했다. 주변의 모든 소음이 사라지고, 오직 두 초월자의 숨막히는 기운만이 팽팽하게 맞서며 지옥의 공기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어리석은 이나리우스. 네가 이끌고 온 장난감들은 이미 내 아이들의 먹이가 되었다. 릴리트의 매혹적인 목소리에는 조롱이 가득했다. 이나리우스는 투구 속의 빛을 격렬하게 뿜어내며 분노를 표출하고 창을 고쳐 쥐었다. 네년의 더러운 입을 찢어주마. 너를 죽이고, 나는 마침내 천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의 외침이 지옥을 뒤흔들었다.

이나리우스는 눈부신 빛의 궤적을 그리며 릴리트를 향해 쏜알같이 돌진했다. 릴리트는 거대한 가시 날개를 펼쳐 그의 공격을 막아냈지만, 이나리우스의 창에 담긴 신성한 힘은 그녀의 방어를 뚫고 들어갔다. 두 존재의 격돌로 인해 발생한 거대한 충격파가 주변의 악마들을 먼지처럼 쓸어버렸다.

치열한 공방이 이어지던 중, 이나리우스가 릴리트의 빈틈을 파고들었다. 그의 황금빛 창이 릴리트의 복부를 깊숙이 관통했고, 어두운 정수가 흘러나왔다. 릴리트는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리며 무릎을 꿇었다. 이나리우스는 승리를 확신하며 창을 쥔 손에 힘을 주었고, 그의 존재 전체가 구원에 대한 환희로 떨렸다.

보아라, 드높은 천상이여! 내가 이 악마를 처단했노라! 이나리우스는 릴리트를 찌른 채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절규했다. 그는 앙기리스 의회가 자신의 공로를 인정하고, 빛의 다리가 내려와 자신을 다시 천상으로 거두어 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의 눈동자는 광기에 가까운 희망으로 반짝였다.

그러나 지옥의 잿빛 하늘은 묵묵부답이었다. 어떠한 신성한 빛도, 천사들의 나팔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짙은 유황 연기만이 그의 머리 위를 무심하게 흘러갈 뿐이었다. 시간이 멈춘 듯한 끔찍한 정적 속에서, 이나리우스의 환희는 서서히 당혹감으로, 그리고 뼈저린 절망으로 바뀌어 갔다.

천상은 그를 버렸다. 그 잔혹한 진실이 이나리우스의 영혼을 산산조각 냈다. 그가 수천 년 동안 품어왔던 단 하나의 희망이 지옥의 허공 속으로 흩어지는 순간이었다. 창을 쥔 그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고, 찬란하게 빛나던 그의 황금빛 날개마저 생기를 잃고 서서히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천상은… 나를 원하지 않는단 말인가… 이나리우스가 망연자실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고개를 떨구었다. 방어할 의지마저 상실한 그의 모습은 더 이상 위대한 대천사가 아닌, 버림받은 불쌍한 피조물에 불과했다. 그 찰나의 절망은 전투의 흐름을 완전히 뒤바꿔놓는 치명적인 독이 되고 말았다.

찢겨진 날개와 추락

릴리트가 이나리우스의 날개를 뜯어내며 그를 파멸시키는 모습.
릴리트가 이나리우스의 날개를 뜯어내며 그를 파멸시키는 모습.

복부를 관통당한 채 무릎을 꿇고 있던 릴리트가 낮게 웃기 시작했다. 그 웃음소리는 점차 커지며 지옥의 대지를 섬뜩하게 울렸다. 가엾은 이나리우스. 넌 영원히 그들의 노예일 뿐이야. 그녀는 상처에서 흐르는 피를 개의치 않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이나리우스는 넋이 나간 채 그녀를 바라만 보았다.

릴리트는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이나리우스의 목을 단단히 움켜쥐었다. 창을 놓친 이나리우스가 고통에 찬 신음을 내뱉으며 발버둥 쳤지만, 절망에 빠진 천사의 힘은 증오의 딸을 당해낼 수 없었다. 릴리트의 손아귀에서 뿜어져 나오는 어두운 마력이 이나리우스의 남은 빛을 무자비하게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우리가 함께 만들었던 세상을, 네가 망치려 했지. 릴리트의 눈동자에 짙은 증오와 슬픔이 교차했다. 그녀는 이나리우스의 등 뒤로 뻗어 있는 찬란한 빛의 날개를 향해 다른 한 손을 뻗었다. 이나리우스는 자신의 가장 신성한 부위에 닿는 악마의 손길에 경악하며 비명을 질렀지만, 벗어날 수 없었다.

릴리트가 악력으로 날개의 근원을 움켜쥐고 무자비하게 뜯어내기 시작했다. 빛의 결속이 끊어지며 차원 전체가 비명을 지르는 듯한 파열음이 울려 퍼졌다. 이나리우스의 몸에서 찬란한 빛의 정수가 사방으로 뿜어져 나왔고, 그의 몸부림은 점차 잦아들었다. 천사의 근원이 뜯겨 나가는 고통은 필멸자의 상상을 초월하는 비극이었다.

마침내 거친 파공음과 함께 이나리우스의 빛나는 날개가 그의 등에서 완전히 분리되었다. 릴리트의 손에 들린 날개는 잠시 허공에서 바르르 떨리더니, 이내 잿빛으로 변하며 바스라져 내렸다. 이나리우스의 육신을 이루던 빛은 완전히 소멸했고, 그를 감싸고 있던 황금빛 갑옷만이 빛을 잃고 칙칙한 쇳덩이가 되어 바닥에 떨어졌다. 찬란했던 대천사의 비참한 종말이었다.

날개를 잃고 빛의 정수가 모두 빠져나간 이나리우스의 빈 갑옷이 힘없이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그의 의식이 완전히 소멸하기 직전, 마지막으로 마주한 것은 자신을 내려다보는 릴리트의 차가운 미소였다. 안녕, 나의 사랑. 릴리트의 속삭임과 함께 이나리우스라는 존재는 완전히 지워졌다. 성역의 창조자이자 빛의 상징이었던 대천사가 지옥의 먼지로 산화하여 사라진 순간이었다.

멀리서 이 참극을 지켜보던 방랑자와 호라드림 일행은 충격으로 말을 잃었다. 이나리우스가 승리할 것이라는 일말의 기대마저 무참히 짓밟힌 것이다. 로라스는 마른세수를 하며 절망적인 상황을 받아들이려 애썼고, 네이렐은 두려움에 질려 뒷걸음질 쳤다. 빛의 몰락은 그들에게 닥칠 더 큰 시련을 예고하고 있었다.

릴리트는 바닥에 나뒹구는 이나리우스의 빈 갑옷을 차갑게 외면하고 몸을 돌렸다. 그녀의 상처는 이미 어두운 마력에 의해 빠르게 아물고 있었다. 방해물을 제거한 증오의 딸은 이제 자신의 진정한 목적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지옥의 공기는 릴리트의 승리를 축하하듯 더욱 뜨겁고 불길하게 타올랐다.

영혼 기둥과 도난의 최후

AI 재구성 일러스트: Lorath와 Neyrelle이 지옥의 황량한 회랑에서 지친 Donan을 위로합니다.
AI 재구성 일러스트: Lorath와 Neyrelle이 지옥의 황량한 회랑에서 지친 Donan을 위로합니다.

이나리우스의 죽음이 남긴 충격을 뒤로한 채, 방랑자와 일행은 릴리트를 추적하기 위해 지옥의 더 깊은 곳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핏줄이 얽힌 끔찍한 유기체들이 벽면을 뒤덮고 있었고, 바닥은 끈적한 점액으로 가득했다. 도난은 영혼석을 가슴에 품은 채, 극도의 긴장감 속에서 주변을 살피며 걸었다.

거대한 뼈와 살덩이로 이루어진 기괴한 구조물들이 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것은 지옥의 망자들을 고문하여 힘을 짜내는 영혼 기둥이었다. 도난은 길을 찾기 위해 그 흉측한 기둥 중 하나에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기둥 표면에 새겨진 일그러진 얼굴들이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으며 꿈틀거리고 있었다.

조심하게, 도난! 지옥의 구조물은 살아있어! 로라스가 경고의 외침을 던진 순간이었다. 기둥에 얽혀 있던 날카로운 망자의 뼈 가시가 갑작스럽게 돌출되며 도난의 몸을 깊숙이 찔렀다. 미처 피할 틈도 없는 순식간의 일이었다. 도난은 비명을 지르며 바닥으로 쓰러졌고, 기둥의 불길한 기운이 그의 상처로 스며들었다.

도난! 로라스가 비명을 지르며 달려갔고, 방랑자는 즉시 무기를 휘둘러 기둥의 촉수를 잘라냈다. 하지만 이미 치명상을 입은 도난의 복부에서는 붉은 피가 걷잡을 수 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로라스는 황급히 도난을 부축하며 지혈을 시도했지만, 상처가 너무 깊어 피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도난은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로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의 손에서 굴러떨어진 푸른 사파이어 영혼석이 지옥의 붉은 바닥 위에서 처연하게 빛났다. 로라스… 나는… 여기까지인 것 같네… 도난의 목소리는 이미 생명력을 잃어가며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로라스는 눈물을 글썽이며 그의 손을 꽉 잡았다.

헛소리 마라, 늙은이! 우리가 함께 이 지옥을 빠져나가기로 하지 않았나! 로라스가 절규했지만, 도난은 희미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내 아들… 요린이 있는 곳으로… 갈 수 있겠지… 아들을 잃은 슬픔과 세상에 대한 죄책감으로 점철되었던 그의 삶이, 이 끔찍한 지옥의 한가운데서 끝을 맺으려 하고 있었다.

네이렐은 잘린 왼팔을 부여잡은 채 도난의 곁에 주저앉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방랑자는 묵묵히 무릎을 꿇고 도난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보았다. 도난의 흐려지는 눈동자가 일행을 한 번씩 번갈아 바라보더니, 이내 초점을 잃고 허공을 향했다. 그의 가슴팍이 마지막으로 크게 부풀었다가 가라앉았다.

위대한 호라드림이자 상실의 아픔을 견뎌냈던 아버지, 도난이 숨을 거두었다. 로라스는 도난의 식어가는 몸을 끌어안고 짐승처럼 오열했다. 지옥의 열기 속에서도 그들의 심장은 얼음장처럼 차갑게 식어 내렸다. 방랑자는 바닥에 떨어진 사파이어 영혼석을 집어 들며, 이 잔혹한 여정의 무게를 다시금 뼈저리게 느꼈다.

남겨진 자들의 무거운 발걸음

도난의 죽음을 뒤로하고 지옥의 심연으로 향하는 로라스, 네이렐, 방랑자.
도난의 죽음을 뒤로하고 지옥의 심연으로 향하는 로라스, 네이렐, 방랑자.

도난의 죽음은 남겨진 자들에게 헤어나올 수 없는 깊은 상실감을 안겨주었다. 로라스는 친구의 시신을 지옥의 바닥에 남겨두고 떠나야 한다는 사실에 뼈를 깎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방랑자는 로라스의 어깨를 조용히 다독이며 슬픔을 나눌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는 이 가혹한 현실을 직시하게 했다.

네이렐은 눈물을 닦아내고 방랑자가 건네준 사파이어 영혼석을 남은 오른손으로 꼭 쥐었다. 왼손을 잃은 고통과 도난의 죽음이 그녀의 어린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지만, 그녀의 눈빛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단단하게 빛나고 있었다. 도난 님의 희생을 헛되게 하지 않을 거예요. 그녀가 결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릴리트는 이미 메피스토의 정수가 갇혀 있는 심장부를 향해 다가가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방랑자와 호라드림은 슬픔을 분노로 바꾸어 무기를 고쳐 잡았다. 그들이 치러야 할 싸움의 대가는 이미 너무나도 컸고, 앞으로 다가올 선택은 그들을 더욱 가혹한 운명의 시험대 위로 올려놓을 것이 자명했다.

릴리트와 메피스토, 두 악마 중 누구도 이 세상을 활보하게 두어선 안 된다. 로라스가 지팡이를 짚고 일어서며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늙고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호라드림으로서의 마지막 사명감만큼은 불타오르고 있었다. 일행은 서로의 눈빛을 교환하며 묵언의 맹세를 나누었다.

지옥의 심연에서 불어오는 뜨거운 바람이 그들의 망토를 거칠게 흔들었다. 방랑자는 앞장서서 어둠이 짙게 깔린 좁은 통로를 향해 발걸음을 내디뎠다. 이나리우스의 빛도, 도난의 지혜도 이제 그들과 함께하지 않는다. 오직 서로에 대한 믿음과 피로 물든 결의만이 이 끔찍한 여정을 지탱하는 유일한 힘이었다.

네이렐은 등 뒤로 멀어지는 도난의 시신을 마지막으로 돌아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의 오른손에 쥐어진 푸른 영혼석이 지옥의 어둠 속에서 유일한 길잡이처럼 희미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이 돌에 누구를 가두고, 어떤 방식으로 세상을 구원할 것인가. 무거운 선택의 순간이 시시각각 그들의 숨통을 조여왔다.

통로의 끝에서 기분 나쁜 붉은빛이 새어 나오며 거대한 악의 기운이 일행을 덮쳐왔다. 증오의 군주와 그의 딸이 벌이는 끔찍한 가족의 재회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방랑자는 검자루를 꽉 쥐며 다가올 최후의 결전을 머릿속으로 그렸다. 더 이상의 희생을 막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승리해야만 했다.

남겨진 자들의 무거운 발걸음이 지옥의 심장부를 향해 나아갔다. 그들의 등 뒤로는 천사의 버려진 갑옷과 늙은 학자의 차가운 시신이 지옥의 풍경 속으로 서서히 묻히고 있었다. 모든 것을 걸고 여기까지 온 방랑자와 호라드림은, 마침내 운명의 갈림길 앞에서 가장 잔혹하고 위대한 선택을 마주할 준비를 마쳤다.

확인한 자료

Blizzard 공식 설정: 아카라트와 영혼 세계

Blizzard 공식 자료: 증오의 그릇에서 증오의 군주로

Blizzard 공식 자료: 증오의 군주 캠페인

Polygon 사건 해설: 증오의 군주 결말

디아블로4 공식 구매처: Battle.net

다국어 공유하기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 보세요.

회원 계정의 닉네임으로 등록됩니다. 로그인 또는 가입

COMMUNITY NOTICE

등록할 수 없습니다

사용할 수 없는 단어가 있습니다.

내용을 수정한 뒤 다시 등록해 주세요.

로그인

로그인

Google 계정으로 계속
또는 이메일

고객센터

불편한 점이나 궁금한 내용을 남겨 주세요. 로그인하지 않아도 문의할 수 있습니다.

이름·이메일·문의 내용과 로그인한 경우 계정 정보를 문의 처리 목적으로 저장하며, 관리자만 열람합니다. 접수일부터 180일 후 자동 삭제 대상이 됩니다. 비밀번호·카드번호·신분증 등 민감한 정보는 입력하지 마세요. 개인정보 안내

선택적 분석 쿠키로 사이트 이용 현황을 파악합니다. 거부해도 로그인과 이용에는 영향이 없습니다. 광고 동의는 Google에서 별도로 관리합니다.

개인정보 보호정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