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블로 연대기 15화 · 칼데움의 가면과 검은 영혼석
이 글의 목차
원작의 사건을 바탕으로 새로 쓴 팬 서사입니다. 인물의 감정과 대사, 장면의 분위기는 재구성했으며 주요 결말을 포함합니다.
거짓이 지배하는 사막의 도시

네팔렘이 칼데움에 들어서자 숨이 막힐 듯한 열기와 함께 부자연스러운 긴장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사막의 건조한 바람은 모래알과 함께 도시 전체를 뒤덮은 기만의 속삭임을 실어 나르고 있었다. 겉보기엔 화려한 상업 도시였지만, 그 이면에는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북적이는 바자르 구석에는 굶주린 피난민들이 절망에 빠져 신음하고 있었다. 반면 거리를 순찰하는 제국 경비대원들의 움직임은 기계처럼 뻣뻣했고, 그들의 흐리멍덩한 눈동자에는 인간적인 공감이나 감정이 전혀 칠해져 있지 않았다. 악마의 빙의가 만들어낸 섬뜩한 풍경이었다.
필멸자가 된 티리엘은 사막의 끔찍한 열기에 힘겨워하면서도, 그의 정의로운 시선만큼은 도시의 거짓된 껍데기를 꿰뚫어 보았다. 그는 거짓의 군주 벨리알이 이 거대한 환영을 직조하여 사람들의 눈을 가리고 도시를 통째로 집어삼키려 한다며 낮고 단호한 목소리로 경고를 내뱉었다.
레아는 데커드 케인의 낡은 가방을 가슴에 꼭 품은 채 걸음을 옮겼다. 양아버지를 잃은 슬픔이 아직 생생하게 가슴을 찌르고 있었지만, 그녀는 제국 황궁을 올려다보며 애써 희망을 품으려 했다. 어린 황제 하칸 2세라면 이 절망적인 상황을 타개할 도움을 줄지도 모른다는 기대였다.
마침내 하칸 2세와의 알현이 성사되었다. 소년 황제는 자신의 체구보다 훨씬 거대한 황금 옥좌에 앉아 그들을 맞이했다. 아이의 미소는 소름 끼치도록 완벽했고, 입에서 흘러나오는 환영의 인사말은 지나치게 달콤하여 오히려 혀끝을 마비시키는 듯한 불쾌한 점성을 띠고 있었다.
하칸은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지만, 네팔렘은 아이의 목소리 밑바닥에 깔린 서늘한 공허함을 본능적으로 감지했다. 옥좌 뒤편에 일렁이는 그림자가 미세하게 형태를 바꾸는 순간, 황제의 친절이 철저히 계산된 연극에 불과하다는 강렬한 의심이 네팔렘의 머릿속에 깊숙이 뿌리내렸다.
황궁을 빠져나오자마자 티리엘은 벨리알의 기만이 이미 도시의 심장부까지 장악했다고 단언했다. 칼데움은 거대한 신기루에 불과하며, 진정한 지배자는 어린아이의 순진한 얼굴을 뒤집어쓴 채 옥좌에서 이 모든 상황을 조롱하고 있는 교활한 악마라는 사실이 명백해지는 순간이었다.
네팔렘은 무기의 자루를 꽉 쥐며 이 역겨운 거짓의 장막을 모조리 찢어버리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황궁의 진실을 파헤치기 전에, 사막 곳곳에 숨어 무고한 이들을 학살하고 있는 마녀단과 케인의 원수를 먼저 처단하는 것이 그들이 해결해야 할 가장 시급하고 당면한 과제였다.
알카르누스의 핏빛 복수

칼바람 사막의 따가운 햇살이 살갗을 태우는 가운데, 네팔렘은 마녀단의 흔적을 쫓아 모래 언덕을 넘었다. 케인이 숨을 거두던 마지막 순간의 참혹한 기억이 네팔렘의 핏속을 끓게 만들었고, 지칠 줄 모르는 분노는 사막의 열기보다 더 뜨겁게 타오르며 그들의 발걸음을 재촉했다.
알카르누스로 향하는 길목마다 이교도들의 훼손된 시체와 흑마법의 역겨운 잔재가 널브러져 있었다. 레아의 두 손은 두려움이 아니라, 슬픔과 분노가 뒤섞인 채 통제되지 않는 날것의 힘 때문에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터질 듯한 감정을 억누르며 묵묵히 앞을 향해 걸었다.
마침내 알카르누스 도심에 진입하자, 그곳은 이미 끔찍한 도살장으로 변해 있었다. 거리 곳곳에 매달린 철창과 피로 붉게 물든 이교도의 제단들은 마그다가 저지른 잔혹한 만행을 고스란히 증명하고 있었다. 죽음의 악취가 진동하는 폐허 속에서 생존자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폐허가 된 거리 위로 마그다의 조롱 섞인 웃음소리가 기괴하게 울려 퍼졌다. 그녀는 케인의 비참한 죽음을 들먹이며 레아의 신경을 긁었고, 젊은 여성의 내면에 잠재된 불안정한 힘을 폭주시키려 안간힘을 썼다. 그 악의적인 도발에 레아의 눈동자가 고통스러운 분노로 일렁거렸다.
네팔렘은 즉각 레아의 앞을 가로막으며 마녀의 심리적 공격으로부터 그녀를 보호했다. 강철 무기가 허공을 가르고 흑마법의 장벽과 격렬하게 충돌하자, 폐허를 짓누르던 무거운 침묵이 산산조각 났다. 복수를 향한 네팔렘의 의지가 검 끝에 실려 마그다를 향해 맹렬하게 뻗어 나갔다.
곤충 형태의 흉측한 악마들과 타락한 이교도 무리가 떼를 지어 몰려들었다. 네팔렘의 타격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교하고 잔혹했으며, 정의로운 분노로 타오르는 일격은 앞을 가로막는 모든 적을 추수하듯 베어 넘겼다. 사방에 악마들의 검은 피가 튀며 치열한 난전이 벌어졌다.
궁지에 몰린 마그다가 최후의 발악으로 비전 에너지를 폭포수처럼 쏟아냈다. 네팔렘은 치명적인 마법의 궤적을 간발의 차이로 피한 뒤, 마녀의 심장을 향해 결정적인 일격을 꽂아 넣었다.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알카르누스를 맴돌던 마그다의 역겨운 웃음소리가 영원히 침묵을 맞이했다.
마그다의 육신이 흉측한 재로 변해 흩어지는 모습을 보며, 레아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털썩 무릎을 꿇었다. 케인을 위한 복수는 마침내 끝을 맺었지만, 그녀의 가슴 한구석에 자리 잡은 거대한 상실감과 공허함은 적의 죽음만으로는 결코 채워질 수 없는 깊은 상흔으로 남아 있었다.
차갑고 낯선 어머니와의 재회

칼데움의 숨겨진 지하 하수도 깊은 곳에서, 그들은 마녀단에게 포위되어 결박당한 한 죄수를 발견했다. 네팔렘이 적들을 처치하고 어둠이 걷히는 순간, 횃불 불빛에 드러난 여인의 얼굴을 본 레아는 숨을 헐떡였다. 그것은 오래전 빛바랜 기억 속에 묻어두었던 너무도 익숙한 얼굴이었다.
그녀는 바로 레아가 오래전 죽었다고 믿었던 친어머니, 아드리아였다. 그러나 극적인 재회의 순간은 묘하게 경직되어 있었다. 아드리아의 눈빛은 잃어버린 딸을 향한 따뜻한 애정보다는 날카롭고 계산적인 이성으로 빛나고 있었으며, 평범한 어미의 포옹 대신 차가운 긴장감이 감돌았다.
아드리아는 자신을 버려둔 것에 대한 사과 대신, 곧바로 거대한 계획에 대해 입을 열었다. 그녀는 대악마들을 영원히 파멸시킬 유일한 방법을 찾기 위해 세상을 떠돌아야 했으며, 그것은 오직 자신만이 짊어질 수 있는 가혹한 숙명이었다고 건조한 목소리로 과거의 행적을 정당화했다.
레아는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지는 듯한 혼란에 빠졌다. 어머니의 온기를 갈망하던 필사적인 마음과 아드리아의 지나친 냉혹함이 격렬하게 충돌하고 있었다. 그녀는 위로의 말 한마디를 내심 기대하며 가슴이 저려오는 것을 느꼈지만, 묵묵히 입술을 깨물며 어머니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아드리아는 지옥의 군주들을 한곳에 가둘 수 있는 유일한 유물, 검은 영혼석의 존재를 세상에 드러냈다. 그녀는 이 돌만이 천상과 지옥 사이에서 끝없이 반복되는 영원한 분쟁의 사슬을 영구적으로 끊어낼 수 있는 궁극적인 열쇠라며, 그 위험하고도 웅장한 계획의 전모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티리엘은 그런 강력한 유물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깊은 의구심을 표했다. 아드리아는 그것이 과거 배신자 호라드림이었던 졸툰 쿨레에 의해 창조되었으며, 비록 그의 육신은 갈기갈기 찢겨 사막에 흩어졌지만 그의 원혼은 여전히 모래 속에 묶여 영혼석의 비밀을 지키고 있다고 대답했다.
검은 영혼석을 손에 넣기 위해서는 졸툰 쿨레를 부활시켜야만 했다. 미치광이 마법사와 동맹을 맺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힘든 위험한 도박이었지만, 네팔렘은 대악마를 막기 위해 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현실을 무겁게 인정하며 그 미친 계획에 기꺼이 자신의 힘을 보태기로 결단했다.
레아는 절대적인 권위로 상황을 주도하는 어머니의 낯선 모습을 복잡한 심경으로 바라보았다. 그녀는 이 모든 끔찍한 전쟁이 끝나고 나면 마침내 평범한 가족의 품을 되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냘픈 희망을 품은 채, 아드리아의 차가운 지시를 맹목적으로 신뢰하기로 마음먹었다.
사막에 흩어진 배신자의 유해

황량한 사막은 고대 비밀들이 묻힌 거대한 무덤처럼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네팔렘은 흩어진 졸툰 쿨레의 유해를 거두기 위해 사막 깊숙이 숨겨진 고대 암살자의 지하 금고들로 발걸음을 옮겼다. 잊힌 시대의 먼지와 짙은 마력의 잔재가 무거운 공기 속에 섞여 숨통을 조여오고 있었다.
각각의 금고는 쿨레의 천재성과 편집증이 낳은 치명적인 함정과 고대 피조물들로 겹겹이 방어되고 있었다. 네팔렘은 쏟아지는 불길과 독화살을 뚫고, 기계 장치로 움직이는 거대한 골렘들을 부수며 앞으로 나아갔다. 매 순간이 생사를 넘나드는 아슬아슬하고 고통스러운 전투의 연속이었다.
수백 년 전 호라드림에 의해 봉인되었던 쿨레의 피와 육신을 마침내 모두 회수했다. 유리병 너머로 뿜어져 나오는 짙고 불길한 강령술의 기운은 네팔렘의 단련된 피부조차 소름 돋게 만들 만큼 끔찍했다. 그들은 불길한 예감을 억누르며 유해를 챙겨 쿨레의 기록보관소 중심부로 향했다.
종착지에 도착한 그들은 쿨레의 유령 머리통 앞에 온전한 유해를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레아의 손끝에서 어둠의 의식이 시작되자, 주변의 공기가 사령의 에너지로 지지직거리며 찢어질 듯 울어댔다. 흩어졌던 살점과 뼈가 기괴한 소리를 내며 하나로 엉겨 붙는 끔찍한 광경이 펼쳐졌다.
육신을 되찾은 졸툰 쿨레가 수백 년 만에 첫 숨을 깊게 들이켜자, 오만함과 승리감에 도취된 광기 어린 웃음소리가 홀 전체를 뒤흔들었다. 그는 새로 얻은 사지를 과장되게 뻗으며 핏속을 도는 생명의 감각을 만끽했고, 그 모습은 마치 지옥에서 갓 풀려난 악마보다 더 위협적이었다.
쿨레는 부활하자마자 자신을 살려낸 자들을 향해 조롱을 퍼붓기 시작했다. 그는 과거 자신을 봉인했던 호라드림의 어리석은 실패를 비웃고, 필멸자로 전락한 티리엘의 처지를 신랄하게 깎아내렸다. 그의 끝없는 오만함은 그가 지닌 막강한 마법적 성취만큼이나 위험하고 통제 불능이었다.
그는 약속대로 검은 영혼석이 있는 곳으로 그들을 안내하겠다고 나섰지만, 그의 번뜩이는 눈빛 속에는 꿍꿍이가 숨겨져 있음이 명백했다. 네팔렘은 언제든 배신이 일어날 수 있음을 직감하고 무기의 자루에서 손을 떼지 않은 채, 미치광이 마법사의 뒤를 바짝 쫓으며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그들은 졸툰 쿨레의 기록보관소라는 거대한 지하 복합 단지로 깊숙이 내려갔다. 미궁처럼 얽힌 복도의 모든 그림자가 쿨레의 이름을 속삭이는 듯했고, 이는 그들의 불편한 동맹이 주는 팽팽한 긴장감을 극도로 증폭시켰다. 영혼석에 다가갈수록 공기 중의 마력은 더욱 무겁게 짓눌러왔다.
졸툰 쿨레의 오만과 파멸

기록보관소의 가장 깊은 심장부, 검은 영혼석이 마법의 격리장 한가운데 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주변의 모든 빛을 집어삼키려는 듯 짙은 어둠의 에너지를 불길하게 고동치며 뿜어내고 있었다. 유물에서 뿜어져 나오는 심연의 공허함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영혼을 갉아먹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쿨레가 영혼석 곁으로 다가가더니, 음모가 가득한 은밀한 목소리로 충격적인 진실을 폭로했다. 그는 이 텅 비어 있어야 할 돌멩이 안에 이미 과거에 쓰러졌던 다섯 지옥의 군주들의 영혼이 고스란히 갇혀서 끓어오르고 있다며, 그 거대한 힘의 실체를 조롱하듯 네팔렘에게 들이밀었다.
아드리아는 지난 수십 년 동안 비밀리에 악마들의 영혼에 표식을 남겨, 그들이 죽는 순간 이 검은 영혼석으로 빨려 들어가도록 치밀하게 조작해 두었던 것이다. 쿨레는 한낱 필멸자의 몸으로 감히 대악마들을 통제하려 한 아드리아의 무모하고도 오만한 계획을 비웃으며 광기 어린 폭소를 터뜨렸다.
이내 쿨레는 네팔렘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새로운 동맹을 제안했다. 그는 영혼석에 담긴 압도적인 힘을 함께 취하여 천상과 지옥 모두를 발밑에 꿇리고, 절대적인 지배를 통해 이 지긋지긋한 분쟁을 끝내자고 유혹했다. 영웅의 힘과 자신의 지식이라면 세상의 신이 될 수 있다는 광기였다.
네팔렘은 미치광이의 헛된 망상을 단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단호하게 거절했다. 거절당한 쿨레의 얼굴은 순식간에 흉측한 분노로 일그러졌고, 그가 쓰던 오만한 학자의 가면이 산산조각 나며 과거 호라드림이 그토록 두려워했던 통제 불능의 끔찍한 괴물이 마침내 그 흉악한 본성을 드러내고 말았다.
쿨레가 파괴적인 시간 왜곡 마법과 맹렬한 화염 피조물들을 동시에 쏟아내며 치열한 전투가 시작되었다. 공간이 뒤틀리고 불길이 솟구치는 혼돈의 마법 속에서도 네팔렘의 집중력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들은 치명적인 주문의 궤적을 뚫고 들어가며 쿨레의 방벽을 하나씩 무자비하게 박살 냈다.
대지를 뒤흔드는 네팔렘의 최후의 일격이 쿨레의 비전 방어막을 완전히 산산조각 냈다. 타락한 천재 마법사는 자신의 완벽한 계획을 무너뜨린 네팔렘의 어리석음을 저주하며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졌다. 간신히 되찾았던 그의 두 번째 삶은 그 자신의 끝없는 오만함 탓에 또다시 비참한 끝을 맞이했다.
전투의 열기가 가라앉자, 네팔렘은 마침내 검은 영혼석을 손에 쥐었다. 유물의 표면은 얼음장처럼 차가웠지만, 그 안에서는 마치 거대한 어둠의 심장이 뛰는 듯한 불길한 진동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유물은 확보했지만, 그것이 뿜어내는 짙은 악의의 무게는 뼛속까지 시리게 만들 만큼 끔찍했다.
어머니의 잔혹한 헌신과 계획

숨겨진 야영지로 돌아온 네팔렘이 아드리아에게 검은 영혼석을 건네주었다. 그녀는 섬뜩할 정도의 경외감이 서린 눈빛으로 유물을 어루만졌고, 그녀의 차가운 눈동자에는 영혼석이 내뿜는 붉고 검은 광채가 기괴하게 반사되고 있었다. 마침내 평생의 숙원을 눈앞에 둔 자의 광기 어린 집착이었다.
아드리아는 쿨레가 폭로했던 진실이 모두 사실이라고 담담하게 인정했다. 그녀는 홀로 전 세계를 떠돌며 대악마와 고위 악마들의 정수에 비밀스러운 표식을 새겼고, 그들이 육신을 잃는 순간 이 검은 돌로 흡수되도록 거대한 마법진을 완성했다는 믿기 힘든 과거의 행적을 낱낱이 털어놓았다.
이제 남은 목표물은 오직 거짓의 군주 벨리알과 죄악의 군주 아즈모단뿐이었다. 아드리아는 그 두 악마마저 이 돌에 가둔 뒤 영혼석을 산산조각 내버리면, 성역을 위협하던 지옥의 근원적인 공포를 영원히 종식시킬 수 있다고 확언했다. 그것은 너무도 완벽해서 오히려 불길한 계획이었다.
레아는 수십 년에 걸쳐 진행된 어머니의 소름 끼치는 계획에 압도당한 채 멍하니 서 있었다. 아드리아가 이 거대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자신을 버렸고, 딸의 평범한 어린 시절마저 철저히 희생시켰다는 잔인한 진실이 레아의 가슴을 후벼팠다. 모녀 사이의 보이지 않는 벽은 더욱 두꺼워졌다.
티리엘은 영혼석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그는 돌 내부에서 서로 융합하지 못한 채 격렬하게 충돌하는 악마들의 혼돈스러운 폭풍을 감지했고, 필멸자의 연약한 손으로는 이토록 농축된 순수한 악의 덩어리를 결코 오래 통제할 수 없을 것이라며 엄중한 경고를 남겼다.
그러나 아드리아는 티리엘의 경고를 가볍게 무시하며, 레아의 핏속에 잠재된 거대한 마력이 영혼석의 불안정성을 억누를 유일한 열쇠라고 주장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또다시 무거운 책임의 짐을 떠안게 된 레아는 두려움에 몸을 움츠렸고, 그녀의 어깨는 감당할 수 없는 무게로 짓눌렸다.
하지만 당장 눈앞에 닥친 가장 시급한 위협은 칼데움을 장악한 벨리알이었다. 아드리아는 거짓의 군주가 이미 제국 전체를 자신의 손아귀에 넣었으며, 도시의 모든 무고한 생명을 학살하기 위한 최후의 준비를 마쳤다고 경고했다.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나 뒤로 물러설 공간은 남아 있지 않았다.
네팔렘은 제국 황궁을 향한 최후의 돌격을 준비하며 무기를 단단히 고쳐 쥐었다. 기나긴 기만과 환영의 시간은 이제 끝을 맺어야만 했다. 그들은 벨리알이 쓰고 있는 거짓된 아이의 가면을 강제로 벗겨내고, 진실의 심판대 위에서 그 끔찍한 악마에게 정의로운 피의 대가를 치르게 할 참이었다.
거짓의 군주를 징벌하다

네팔렘은 제국 황궁의 거대한 문을 박살 내며 안으로 들이닥쳤고, 앞을 가로막는 위장한 악마 근위병들을 무자비하게 베어 넘겼다. 화려했던 대리석 복도는 이미 무고한 시민들의 붉은 피로 흥건하게 젖어 있었고, 이는 벨리알이 숨기고 있던 잔혹한 본성이 빚어낸 끔찍한 참상의 증거였다.
옥좌의 방 한가운데서, 어린 황제 하칸 2세는 공포에 질린 척 근위병들을 부르며 비명을 질러댔다. 하지만 네팔렘이 흔들림 없이 다가가며 무기를 겨누자, 아이의 가냘픈 목소리는 순식간에 기괴하게 일그러지더니 뼈를 울리는 짐승의 끔찍한 포효로 변모하며 방 안의 공기를 무겁게 짓눌렀다.
쨍그랑거리는 소리와 함께 황궁을 감싸고 있던 거대한 환영이 유리창처럼 산산조각 났다. 소년 황제의 겉모습을 유지하던 마법의 기만이 순식간에 녹아내리며 허상이 걷혔고, 그 뒤에 숨어 있던 거짓의 군주 벨리알이 거대하고 흉측한 본래의 악마적 형상을 드러냈다. 압도적인 크기와 역겨운 외형이 뿜어내는 공포가 사방을 잠식했다.
벨리알의 거대한 앞발이 대리석 바닥을 내리치자 쩍 갈라진 틈새로 맹독을 품은 녹색 불길이 화산처럼 솟구쳤다. 악마 군주는 네팔렘을 향해 현실 그 자체가 자신의 무기라며 오만한 조롱을 퍼부었고, 그의 목소리는 수천 마리의 벌레가 갉아먹는 듯한 불쾌한 소음을 동반하며 귓가를 찢어놓았다.
네팔렘은 사방에서 쏟아지는 독성 유성우를 아슬아슬하게 피하며 맹독으로 뒤덮인 전장을 민첩하게 파고들었다. 악마의 두꺼운 가죽과 갑각을 뚫기 위해서는 초인적인 힘과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정밀한 타격이 필요했다. 숨 막히는 맹독의 안개 속에서 네팔렘의 무기가 번쩍이며 반격을 가했다.
벨리알은 끊임없이 새로운 환영을 짜내어 시야를 교란하고 허상의 공격으로 네팔렘의 빈틈을 노렸다. 그러나 영웅은 눈에 보이는 거짓에 현혹되지 않고, 오직 벼려진 본능과 정의로운 분노가 가리키는 진실의 궤적만을 쫓아 칼날을 휘둘렀다. 환영은 날카로운 일격 앞에 맥없이 찢겨 나갔다.
벨리알이 치명적인 마법을 준비하며 방어에 허점을 보인 찰나, 네팔렘은 온몸의 기운을 끌어모아 파괴적인 일격을 날렸다. 무기는 악마의 단단한 흉갑을 꿰뚫고 깊숙한 중심핵을 산산조각 냈고, 걷잡을 수 없이 폭주하던 흑마법의 기운이 일순간에 멈추며 거대한 악마의 몸뚱이가 요동쳤다.
거짓의 군주는 고막을 찢는 듯한 단발마의 비명을 내지르며 흉측한 육신이 무너져 내렸다. 바닥을 끓게 하던 녹색 독화염이 거짓말처럼 허공으로 흩어지고, 엉망으로 파괴된 옥좌의 방에는 악마가 남긴 매스꺼운 연기와 기나긴 기만의 끝을 알리는 공허한 메아리만이 고요하게 맴돌고 있었다.
봉인된 영혼과 북부로의 진군

벨리알의 거대한 사체가 역겨운 연기로 변해 흩어지기 시작하자, 아드리아가 검은 영혼석을 두 손에 쥐고 앞으로 나섰다. 그녀의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는 고대 강령술의 주문이 옥좌의 방에 맴돌던 무거운 침묵을 날카롭게 베어냈고, 돌의 표면은 피를 갈망하듯 섬뜩한 붉은빛으로 타올랐다.
악마의 잔해 속에서 짙은 어둠의 소용돌이가 폭발하듯 솟구쳐 오르더니, 끔찍한 비명과 함께 유물 속으로 난폭하게 빨려 들어갔다. 영혼석은 거짓의 군주가 지닌 거대한 정수를 탐욕스럽게 집어삼키며 병적으로 밝은 빛을 뿜어냈고, 그 충격파로 인해 황궁의 뼈대가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흔들렸다.
레아는 두 손을 심하게 떨며 영혼석에서 뿜어져 나오는 압도적인 중압감을 온몸으로 견뎌냈다. 그녀는 눈을 질끈 감고 자신의 내면에 잠재된 힘을 극한까지 끌어올려, 유물 내부에서 미쳐 날뛰는 악마들의 격렬한 진동을 필사적으로 억눌렀다. 밀려드는 어둠의 파도 속에서도 그녀는 인간으로서의 자아를 잃지 않고 굳건히 버텨냈다.
맹렬하게 요동치던 돌이 마침내 안정을 되찾았고, 이제 그 안에는 거짓의 군주의 정수마저 갇히게 되었다. 칼데움을 집어삼키려던 당장의 끔찍한 위협은 사라졌지만, 그 누구도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지 못했다. 방 안의 공기는 여전히 말로 다 할 수 없는 짙은 공포와 불길함으로 짓눌려 있었다.
북쪽 하늘을 응시하던 티리엘의 얼굴에 짙은 수심이 드리워졌다. 그는 방금 철벽의 성채로부터 절망적인 전갈이 당도했음을 알렸다. 죄악의 군주 아즈모단이 이끄는 지옥의 끔찍한 대군이 마침내 성채를 향해 파멸적인 포위 공격을 시작했다는 소식은 그들의 어깨에 또 다른 무거운 짐을 얹었다.
숨을 고르거나 상처를 치료하며 쉴 여유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네팔렘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마지막 남은 지옥의 군주가 성역 전체에 걷잡을 수 없는 분노를 쏟아내기 전에 반드시 그를 쓰러뜨려야 한다는 사실을 뼛속 깊이 새겼다. 그들의 앞길에는 더 끔찍한 피바람이 예고되어 있었다.
레아는 서둘러 짐을 챙기면서도 불안한 시선으로 아드리아의 뒷모습을 힐끗거렸다. 모녀 사이의 유대는 여전히 아슬아슬한 살얼음판 같았고, 어두운 비밀과 아직 완수하지 못한 거대한 숙명 위에 위태롭게 세워져 있었다. 그녀는 알 수 없는 불안감을 억누르며 케인의 낡은 가방을 다시 고쳐 멨다.
일행은 상처 입은 칼데움을 뒤로한 채 서둘러 발걸음을 돌렸다. 그들은 성역 역사상 가장 위험하고 끔찍한 유물인 검은 영혼석을 품에 안고서, 매서운 눈보라가 몰아치는 북부의 얼어붙은 대지를 향해 나아갔다. 아즈모단과의 피할 수 없는 최후의 결전이 그들을 향해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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