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블로 연대기 8화 · 자매단의 야영지에 남은 불빛
이 글의 목차
원작의 사건을 바탕으로 새로 쓴 팬 서사입니다. 인물의 감정과 대사, 장면의 분위기는 재구성했으며 주요 결말을 포함합니다.
로그 야영지의 생존자들

끝없이 내리는 차가운 비가 자매단의 야영지를 진흙탕으로 만들고 있었다. 영웅은 어둠의 방랑자를 추적하던 끝에 이 초라한 피난처에 발을 들였다. 천막 사이로 새어 나오는 희미한 불빛만이 짙게 깔린 절망을 간신히 밀어내고 있었다. 영웅의 망토는 이미 피와 진흙으로 무겁게 젖어 있었다.
보이지 않는 눈의 자매단을 이끄는 대사제 아카라가 지친 눈빛으로 영웅을 맞이했다. 그녀는 수도원이 끔찍한 악마들의 습격을 받아 함락되었으며 수많은 자매가 타락하거나 목숨을 잃었다고 설명했다. 아카라의 목소리에는 깊은 슬픔과 함께 영웅을 향한 일말의 기대가 섞여 있었다.
군사 지도자 카샤는 팔짱을 낀 채 경계심 가득한 시선으로 영웅을 노려보았다. 그녀는 외부인을 신뢰하지 않았고 갑작스러운 악마의 침공으로 잃어버린 부하들에 대한 죄책감으로 날이 서 있었다. 카샤의 창끝은 여전히 빗물에 씻겨 내려가지 않은 마물의 피로 얼룩져 있었다.
영웅은 동쪽으로 향한 어둠의 방랑자를 쫓아야만 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 방랑자가 지나간 자리마다 악마들이 깨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명백했다. 곁에서 화톳불을 쬐고 있던 대상인 와리브가 영웅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마차는 굳게 멈춰 있었다.
와리브는 고개를 저으며 동쪽으로 가는 유일한 관문이 고위 악마 안다리엘의 군대에 의해 완전히 가로막혔다고 경고했다. 루트 골레인으로 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수도원을 탈환하고 안다리엘을 쓰러뜨려야만 했다. 그것은 자매단의 생존뿐만 아니라 영웅의 추적을 위해서도 피할 수 없는 길이었다.
젊은 대장장이 찰시는 임시로 마련된 모루를 두드리며 영웅을 향해 희망과 슬픔이 교차하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녀의 망치질 소리는 야영지에 남은 유일한 활기였지만 그 이면에는 고향을 잃은 두려움이 숨어 있었다. 찰시는 영웅의 무딘 무기를 바라보며 기꺼이 돕겠다고 나섰다.
영웅은 동쪽으로 가는 길을 열기 위해 먼저 이 야영지의 생존자들을 돕기로 결심했다. 방랑자의 흔적은 이미 수도원 깊숙한 곳으로 이어져 있었고 이들을 외면한 채 홀로 관문을 돌파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영웅은 검의 손잡이를 고쳐 쥐며 아카라에게 무엇을 해야 할지 물었다.
아카라는 야영지 외곽에 자리한 어두운 동굴을 가리켰다. 악의 소굴이라 불리는 그곳에 흉측한 마물들이 결집하여 생존자들의 마지막 숨통을 끊으려 하고 있었다. 영웅은 비바람을 뚫고 묵묵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것은 기나긴 추격전의 서막이자 자매단을 위한 첫 번째 반격이었다.
악의 소굴 정화

악의 소굴로 불리는 축축하고 어두운 동굴 안으로 들어서자 썩은 고기 냄새와 악마 특유의 유황 악취가 코를 찔렀다. 영웅은 횃불을 높이 들어 올리며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번뜩이는 붉은 안광들을 주시했다. 동굴의 벽면은 알 수 없는 점액질로 뒤덮여 기괴한 맥박을 뛰게 하고 있었다.
몰락자 무리와 그들을 이끄는 영매들이 그림자 속에서 기괴한 주문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영웅이 무기를 빼어 들자 작고 흉측한 악마들이 괴성을 지르며 사방에서 몰려들었다. 영웅은 침착하게 방패를 들어 올리며 첫 번째 공격을 튕겨내고 날카로운 반격으로 적의 목을 베어 넘겼다.
치열한 난전이 벌어지는 가운데 영웅이 몰락자들을 쓰러뜨릴 때마다 뒤에 숨은 영매들이 화염 마법을 뿜어내며 죽은 마물들을 끊임없이 되살려냈다. 불타오르는 시체들이 다시 일어서는 광경은 끔찍한 절망감을 안겨주었다. 영웅은 이 소모전이 계속된다면 결국 자신이 지칠 것임을 깨달았다.
영웅은 전술을 바꾸어 전열의 몰락자들을 무시한 채 동굴의 벽을 타고 빠르게 우회했다. 당황한 영매가 화염구를 날렸으나 영웅은 몸을 숙여 피한 뒤 단숨에 거리를 좁혀 영매의 심장에 칼을 꽂아 넣었다. 부활의 주문이 끊기자 남은 몰락자들은 공포에 질려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그때 동굴 깊은 곳에서 거대한 덩치를 자랑하는 가르강투아 야수들이 쿵쿵거리는 발소리와 함께 나타났다. 둔탁하고 파괴적인 주먹이 영웅의 머리를 향해 날아들었다. 영웅은 좁은 동굴의 지형을 이용해 야수의 공격을 벽으로 유도했고 바위가 부서지는 틈을 타 놈의 무릎을 강하게 베었다.
검은 피와 악취 나는 체액이 바위 바닥을 흥건하게 적셨다. 영웅은 동굴의 모든 구석을 샅샅이 뒤지며 단 한 마리의 악마도 살려두지 않았다. 숨어 있던 마지막 몰락자마저 영웅의 일격에 쓰러지며 동굴 안에는 마침내 무거운 침묵만이 내려앉았다. 타락의 기운이 서서히 걷히기 시작했다.
마지막 마물이 숨을 거두는 순간 동굴 천장의 틈새로 한 줄기 맑은 빛이 스며들며 정화의 기운이 동굴을 채웠다. 짓누르던 악마의 압박감이 사라지고 공기는 다시 차갑고 맑아졌다. 영웅은 피 묻은 검을 닦아내며 야영지를 위협하던 첫 번째 재앙을 무사히 걷어냈음을 직감했다.
야영지로 돌아온 영웅에게 아카라는 깊은 안도와 함께 축복을 내렸다. 악의 소굴이 정리되자 공포에 떨던 생존자들은 비로소 한숨을 돌리고 방벽을 보수할 여유를 얻었다. 카샤의 눈빛에도 미세한 변화가 일었으나 그녀는 여전히 굳은 표정으로 영웅에게 다가와 더 가혹한 현실을 이야기했다.
핏빛 큰까마귀의 안식

카샤는 평소의 강인한 겉모습과 달리 미세하게 떨리는 목소리로 핏빛 큰까마귀에 대해 입을 열었다. 그녀는 과거 트리스트럼의 지하 미궁에서 디아블로에 맞서 싸웠던 위대한 도적 영웅 모레이나이자, 카샤의 가장 친한 전우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어둠의 방랑자가 지나간 후 그녀는 심연의 어둠에 굴복하여 끔찍한 악마로 타락하고 말았다.
타락한 핏빛 큰까마귀는 이제 매장지에 머물며 죽은 자매들의 시신을 언데드로 부활시키고 있었다. 카샤는 자신의 손으로 옛 전우를 처단하라는 명령을 부하들에게 내릴 수 없었다며 영웅에게 고통스러운 임무를 부탁했다. 영웅은 그녀의 깊은 상실감을 이해하며 묵묵히 매장지로 향했다.
차가운 안개가 묘비들을 휘감고 있는 매장지에 도착하자 땅이 썩어가는 냄새가 진동했다. 영웅이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부패한 흙이 들썩이며 끔찍한 언데드들이 기어 나왔다. 과거 보이지 않는 눈의 자매단이었던 이들은 이제 영혼을 잃은 채 굶주린 시체가 되어 영웅을 옭아매려 했다.
묘지 한가운데에 창백한 피부와 악의로 번쩍이는 눈동자를 가진 핏빛 큰까마귀가 서 있었다. 그녀는 영웅을 발견하자마자 기괴한 비명을 지르며 타락한 에너지가 깃든 화살을 쏘아 보냈다. 과거의 영광은 온데간데없고 오직 파괴를 향한 맹목적인 갈망만이 그녀의 활시위를 당기고 있었다.
영웅은 빗발치는 죽음의 화살들을 간발의 차이로 회피하며 묘비 뒤로 몸을 숨겼다. 핏빛 큰까마귀는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속도로 이동하며 끊임없이 좀비들을 소환해 영웅의 퇴로를 차단했다. 그녀의 화살이 묘비를 부수고 파편이 영웅의 뺨을 스치며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느릿한 언데드 무리에게 시간을 뺏길 수 없다고 판단한 영웅은 방패를 앞세우고 정면으로 돌진했다. 쏟아지는 화살을 튕겨내며 핏빛 큰까마귀의 품으로 파고든 영웅은 그녀가 활을 다시 겨누기 전에 강력한 근접 공격을 퍼부었다. 두 사람의 무기가 부딪히며 섬뜩한 불꽃이 튀었다.
격렬한 공방 끝에 영웅의 칼날이 핏빛 큰까마귀의 가슴을 깊게 찔렀다. 그녀의 입에서 고통스러운 비명이 터져 나왔고 몸 안에서 응축되어 있던 타락한 번개 에너지가 사방으로 폭발했다. 빛줄기가 하늘로 솟구치며 그녀의 영혼은 마침내 끔찍한 저주에서 해방되어 안식을 찾았다.
영웅은 카샤에게 돌아가 핏빛 큰까마귀의 최후를 전했다. 카샤는 고개를 떨군 채 애써 눈물을 참으며 죽은 전우를 향한 짧은 애도를 표했다. 비록 가슴이 찢어지는 상실이었으나 카샤는 영웅의 실력과 진심을 완전히 신뢰하게 되었고 휘하의 정예 도적 용병들을 영웅의 여정에 동참시켰다.
트리스트럼의 참상과 케인 구출

아카라는 호라드림의 마지막 생존자인 데커드 케인이 아직 트리스트럼의 폐허 속에 살아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를 구출하기 위해서는 어둠의 숲에 숨겨진 이니푸스의 나무껍질을 찾아 케언 스톤의 비밀을 풀어야만 했다. 영웅은 고대 마법의 흔적을 쫓아 험난한 숲으로 발길을 돌렸다.
어둠의 숲을 배회하는 거대한 나무 괴물들을 물리치고 이니푸스의 나무껍질을 확보한 영웅은 아카라의 도움을 받아 룬의 순서를 해독했다. 차가운 바람이 부는 평원에 우뚝 솟은 고대의 돌기둥들에 순서대로 마력을 주입하자 돌들이 공명하며 눈부신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케언 스톤의 중앙에 공간을 찢고 붉은 포털이 열렸다. 영웅이 포털을 넘어 도착한 트리스트럼은 과거의 평화로운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불길과 잿더미로 뒤덮인 악몽의 땅이었다. 바닥에는 잔혹하게 도륙당한 마을 사람들의 시신이 나뒹굴고 있었고 공기 중에는 짙은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마을의 대장장이였던 그리스월드가 끔찍한 저주를 받아 거대하고 흉측한 언데드로 변해 영웅을 향해 돌진해 왔다. 과거 용사들을 돕던 선량한 장인의 비참한 말로에 영웅은 이를 악물었다. 영웅은 무거운 마음으로 검을 휘둘러 고통받는 그리스월드의 영혼을 영원한 안식으로 인도했다.
마을 중앙의 광장에는 데커드 케인이 나무로 엮인 감옥에 갇혀 허공에 매달려 있었다. 그 주위로 흉포한 악마들이 낄낄거리며 노인을 조롱하고 있었다. 영웅은 분노를 머금고 악마들의 진형을 돌파하여 그들을 모조리 베어 넘긴 뒤 감옥을 부수고 기진맥진한 케인을 무사히 구출해냈다.
밧줄에서 풀려난 케인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영웅에게 깊은 감사를 표했다. 그는 디아블로를 물리쳤던 용사 아이단이 바로 어둠의 방랑자라는 끔찍한 진실을 확인해주었다. 아이단이 자신의 이마에 영혼석을 박아 넣은 오판이 결국 이 모든 재앙의 시작이었음을 케인은 참담한 심정으로 털어놓았다.
방랑자는 트리스트럼을 지나며 파괴와 악마들을 남겨두고 동쪽으로 향했다. 케인은 디아블로의 영혼이 아이단의 육체와 정신을 서서히 잠식하고 있으며 그가 완전히 악마로 각성하기 전에 막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영웅은 방랑자의 등 뒤에 드리워진 거대한 공포의 그림자를 다시금 실감했다.
자매단의 야영지로 돌아온 케인은 영웅의 가장 든든한 조언자가 되었다. 방랑자를 향한 추격은 단순한 의심이나 직감을 넘어 세계의 멸망을 막기 위한 필사적인 시간 싸움으로 변모했다. 영웅은 케인의 지식을 바탕으로 수도원을 장악한 안다리엘을 뚫고 동쪽으로 나아갈 결의를 다졌다.
잊힌 탑과 타락한 수도원

수도원으로 향하는 길목인 검은 습지에 접어들자 무너져 내린 잊힌 탑이 황량한 풍경 위로 음산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썩어가는 늪의 악취와 함께 탑 주변에는 알 수 없는 불길한 마력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영웅은 탑의 지하에서 흘러나오는 짙은 피의 기운을 감지하고 발걸음을 멈췄다.
전설에 따르면 이 탑의 주인인 백작은 영원한 젊음을 얻기 위해 수백 명의 처녀를 희생시켜 그 피로 목욕을 즐기다 산 채로 매장당했다고 전해졌다. 영웅은 무너진 잔해를 헤치고 탑의 어둡고 미로 같은 지하 감옥으로 내려갔다. 계단을 밟을 때마다 습기 찬 돌벽에서 기괴한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지하로 깊이 내려갈수록 공기는 차갑게 얼어붙었고 오래된 핏자국이 바닥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원한에 찬 유령들과 안다리엘의 마력에 타락한 도적들이 층마다 진을 치고 영웅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영웅은 어둠 속에서 기습해오는 적들을 방패로 밀어내며 신중하게 아래로 나아갔다.
가장 깊은 지하 층에 도달하자 거대한 핏빛 제단 위에서 부활한 백작이 영웅을 맞이했다. 그녀의 곁에는 충성스러운 타락한 하수인들이 무기를 든 채 도열해 있었다. 백작이 사악한 주문을 외우자 바닥에서 뜨거운 화염의 벽이 솟구쳐 오르며 영웅을 불타는 방 한가운데에 가두어 버렸다.
영웅은 살을 에는 듯한 열기를 견디며 화염의 틈새로 몸 던졌다. 달려드는 하수인들의 공격을 가볍게 쳐내고 그들의 급소를 찔러 무력화시킨 영웅은 곧장 백작을 향해 검을 치켜들었다. 어둠의 마법을 두른 백작의 칼날과 영웅의 검이 맞부딪히며 지하 감옥 전체에 날카로운 파열음이 울렸다.
치열한 접전 끝에 영웅의 연속된 일격이 백작의 방어를 뚫고 그녀의 몸을 갈랐다. 백작은 저주 섞인 비명을 지르며 불길과 함께 한 줌의 재로 스러졌다. 그녀가 쓰러진 자리 뒤편에서 영웅은 고대의 룬과 잊힌 금화가 가득한 궤짝을 발견했다. 이는 앞으로의 험난한 전투에 큰 보탬이 될 귀중한 자산이었다.
잊힌 탑을 뒤로하고 다시 행군을 계속한 영웅은 마침내 보이지 않는 눈의 자매단이 머물던 수도원의 거대한 정문에 다다랐다. 한때 신성했던 회랑의 벽면은 끔찍한 핏자국과 악마의 상징들로 흉측하게 더럽혀져 있었다. 성스러운 기운은 완전히 사라지고 오직 파괴의 흔적만이 가득했다.
고요해야 할 수도원의 안뜰에서는 굶주린 마물들의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끊임없이 메아리치고 있었다. 영웅은 굳게 닫힌 문을 힘차게 밀어 열고 내부로 들어섰다. 자매단을 파멸로 몰아넣은 타락의 심장부에서 영웅은 자신의 목숨을 건 가장 처절하고도 잔혹한 전투가 기다리고 있음을 직감했다.
호라드림 말루스 탈환

야영지를 떠나기 전 찰시는 영웅에게 간절한 부탁을 남겼었다. 자매단이 수도원에서 쫓겨날 때 미처 챙기지 못한 호라드림의 마력 깃든 망치인 호라드림 말루스를 되찾아 달라는 것이었다. 영웅은 병영 구역으로 진입하며 찰시의 슬픈 눈빛을 떠올리고 망치를 찾기 위해 주변을 살폈다.
병영 내부는 참혹함 그 자체였다. 도적들의 평화로운 거처였던 곳은 안다리엘의 군대에 의해 잔혹한 도살장으로 변해 있었다. 찢겨진 깃발과 부서진 가구들 사이로 악마들이 배회하며 희생자들의 시신을 훼손하고 있었다. 영웅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누르며 조용히 적들을 하나씩 처치해 나갔다.
병영 깊숙한 곳에서 육중한 금속이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소리의 근원지인 대장간에는 무시무시한 근육질의 거대 악마 대장장이가 모루를 지키고 서 있었다. 그의 곁에는 찰시가 말했던 빛을 머금은 호라드림 말루스가 놓여 있었다. 대장장이는 침입자를 발견하고 흉포하게 포효했다.
대장장이는 그 거대한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무서운 속도로 돌진하며 피 묻은 거대한 무기를 휘둘렀다. 영웅은 간발의 차이로 몸을 굴려 공격을 피했지만 무기가 바닥을 내리칠 때마다 발생하는 거센 풍압에 몸이 휘청거렸다. 정면에서 힘으로 맞서는 것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다.
영웅은 대장간의 기둥과 화로를 이용해 악마의 시야를 교란하며 치열한 지구전을 펼쳤다. 대장장이가 무기를 크게 휘두르고 빈틈을 보일 때마다 영웅은 번개처럼 파고들어 놈의 무릎과 발목 관절을 날카롭게 베어냈다. 악마의 두꺼운 가죽 위로 검은 피가 솟구치며 놈의 움직임이 점차 둔해졌다.
거듭된 공격에 중심을 잃은 대장장이가 비틀거리는 순간 영웅은 도약하여 놈의 목줄기에 결정적인 일격을 꽂아 넣었다. 거대한 악마가 지진이 난 듯한 굉음과 함께 쓰러지며 숨을 거두었다. 영웅은 피 묻은 손으로 모루 위에 놓인 호라드림 말루스를 집어 들었다. 망치에서 따스한 마력이 흘러나왔다.
야영지로 돌아온 영웅이 찰시에게 호라드림 말루스를 건네자 그녀의 두 눈에 기쁨과 감격의 눈물이 맺혔다. 고향의 잃어버린 유산을 되찾은 찰시는 망치를 가슴에 품고 영웅에게 깊은 감사를 전했다. 그녀의 굳은 결의가 담긴 표정은 야영지 전체에 새로운 희망의 불씨를 지피고 있었다.
찰시는 되찾은 말루스의 마력을 이용해 영웅의 장비에 강력한 마법을 부여해 주었다. 새롭게 벼려진 무기와 방어구는 영웅의 몸에 완벽하게 감기며 든든한 힘을 불어넣었다. 자매단의 사기는 눈에 띄게 올랐고 그들은 안다리엘을 향한 마지막 총공세를 앞두고 전열을 가다듬으며 투지를 불태웠다.
고뇌의 여제 안다리엘 격파

영웅은 수도원의 가장 깊고 어두운 지하 묘지로 발걸음을 옮겼다. 계단을 내려갈수록 공기는 끈적해졌고 숨을 들이쉴 때마다 폐부를 찌르는 듯한 독기가 느껴졌다. 고뇌의 여제 안다리엘이 뿜어내는 억압적인 기운이 지하 전체를 짓누르며 영웅의 정신을 끊임없이 갉아먹으려 들었다.
고위 악마 안다리엘은 어둠의 방랑자가 동쪽으로 도주할 시간을 벌기 위해 이 수도원에 소환되었다. 그녀의 은신처는 끔찍하게 고문당한 영혼들의 비명과 녹색의 맹독 웅덩이로 가득한 지옥의 축소판이었다. 영웅은 해독 물약을 단단히 챙겨 쥐고 독안개가 자욱한 거대한 방의 중앙으로 나아갔다.
어둠 속에서 흉측하고 거대한 자태를 드러낸 악마 여왕이 기괴한 웃음소리와 함께 영웅을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등 뒤로 뻗어 나온 괴물 같은 촉수들에서 치명적인 맹독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안다리엘이 팔을 휘두르자 사방으로 독의 파동이 뿜어져 나오며 영웅의 숨통을 조여왔다.
영웅은 독가스에 기침을 쏟아내면서도 굴하지 않고 맹렬히 돌진했다. 피부가 타들어 가는 고통 속에서 해독 물약을 연거푸 들이마시며 안다리엘의 치명적인 촉수 공격을 방패로 막아냈다. 독액이 묻은 방패가 지글거리며 녹아내리는 와중에도 영웅의 검은 여제의 흉측한 몸통을 향해 날아갔다.
안다리엘은 분노에 차 끔찍한 괴력을 발휘하며 물리적인 타격을 퍼부었다. 그녀의 공격은 독만큼이나 치명적이었으나 영웅은 그녀가 불길에 극도로 취약하다는 약점을 놓치지 않았다. 영웅은 횃불과 화염 마법이 부여된 무기를 활용해 그녀의 몸에 쉴 새 없이 뜨거운 불꽃을 일으켰다.
화염이 고뇌의 여제의 몸을 집어삼키자 그녀는 찢어지는 듯한 비명을 지르며 고통에 몸부림쳤다. 불타오르는 살점 사이로 악마의 검은 기운이 통제력을 잃고 폭주하기 시작했다. 영웅은 그녀가 반격할 틈을 주지 않고 불길 속으로 뛰어들어 안다리엘의 심장에 혼신의 힘을 다해 검을 찔러 넣었다.
귀를 찢는 듯한 최후의 단말마와 함께 안다리엘의 거대한 육신이 맹독과 화염의 기둥으로 폭발하며 무너져 내렸다. 그녀가 소멸하자 지하 묘지를 가득 채우고 있던 독기와 타락의 안개가 씻은 듯이 걷히기 시작했다. 수도원을 옭아매고 있던 끔찍한 저주가 마침내 끝을 맺는 순간이었다.
잿더미와 악마의 잔해 속에 우뚝 선 영웅은 거친 숨을 고르며 승리를 만끽했다. 자매단을 짓밟고 동쪽으로 가는 길을 가로막았던 거대한 장벽이 마침내 무너졌다. 영웅은 검을 거두고 어둠의 방랑자가 향한 루트 골레인으로의 길이 완전히 열렸음을 확인하며 발길을 돌렸다.
동쪽 사막을 향한 여정

안다리엘의 죽음을 알리기 위해 자매단의 야영지로 돌아온 영웅을 생존자들이 경외어린 시선으로 맞이했다. 영웅의 입에서 승리의 소식이 전해지자 굳게 얼어붙어 있던 야영지에 안도와 환희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오랫동안 억눌렸던 공포가 사라지고 사람들의 얼굴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아카라와 카샤는 영웅의 헌신에 깊은 존경과 감사를 표했다. 수많은 자매를 잃은 슬픔은 영원히 남겠지만 보이지 않는 눈의 자매단은 마침내 폐허 속에서 다시 일어서고 고향을 재건할 희망을 얻었다. 카샤는 영웅에게 언제든 자매단의 검이 필요하다면 기꺼이 돕겠노라 맹세했다.
대상인 와리브는 멈춰 있던 마차의 바퀴를 점검하고 짐승들에게 짐을 싣느라 분주하게 움직였다. 안다리엘의 봉쇄가 풀리자 그는 마침내 동쪽으로 떠날 채비를 마쳤다. 와리브는 영웅을 향해 손짓하며 험난한 사막을 가로지르는 기나긴 여정에 동참할 준비가 되었는지 물었다.
데커드 케인 역시 고대 호라드림의 두루마리들을 소중히 챙겨 들고 마차에 올랐다. 그는 어둠의 방랑자가 사막의 보석이라 불리는 항구 도시 루트 골레인으로 향했음을 확신하고 있었다. 디아블로의 부활을 막기 위해 케인은 영웅의 곁에서 끝까지 지혜를 빌려주기로 결심한 상태였다.
마차에 오르기 전 영웅은 마지막으로 자매단의 야영지를 뒤돌아보았다. 끝없이 쏟아지던 차가운 비는 어느새 멎어 있었고 먹구름 사이로 희미한 햇살이 비치며 젖은 대지를 비추고 있었다. 살아남은 이들이 서로를 부둥켜안고 상처를 치유하는 모습은 영웅의 마음에 깊은 위안을 주었다.
이윽고 마차의 바퀴가 거친 돌길을 구르며 삐걱이는 소리와 함께 대상단이 출발했다. 영웅은 와리브의 곁에 앉아 끝없이 펼쳐진 황량한 지평선을 묵묵히 응시했다. 수도원에서의 치열했던 전투는 끝났지만 진짜 적은 아직 저 멀리 동쪽의 어둠 속에서 세력을 키우고 있었다.
방랑자가 지나간 자리에 남겨진 참혹한 파괴의 흔적들은 영웅의 결의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한때 세계를 구했던 영웅 아이단의 비극적인 운명과 점점 다가오는 대악마 디아블로의 그림자가 영웅의 어깨를 무겁게 짓눌렀다. 결코 실패할 수 없는 짐을 짊어진 채 영웅은 검의 자루를 어루만졌다.
험준한 산맥을 넘어 건조하고 뜨거운 사막의 모래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며 대상단은 루트 골레인을 향한 여정에 접어들었다. 어둠의 방랑자를 쫓는 기나긴 추격전은 이제 새로운 위험과 고대의 비밀이 도사리는 모래의 땅에서 영웅을 기다리고 있었으며, 뜨거운 바람만이 그들의 앞길을 인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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