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블로 연대기 11화 · 지옥의 문, 거짓 얼굴의 방문자
이 글의 목차
원작의 사건을 바탕으로 새로 쓴 팬 서사입니다. 인물의 감정과 대사, 장면의 분위기는 재구성했으며 주요 결말을 포함합니다.
판데모니움 성채와 지옥의 문

쿠라스트의 깊은 지하에서 열린 차원문을 넘어선 영웅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허공에 떠 있는 거대한 바위와 끝없는 공허였다. 이곳은 천상과 지옥의 경계에 세워진 최후의 보루, 판데모니움 성채였다.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는 성채의 적막함은 방금 전까지 겪었던 밀림의 습기와는 전혀 다른 이질적인 압박감을 선사했다.
잿빛 돌바닥 위로 찬란한 빛의 날개를 펄럭이며 대천사 티리엘이 영웅을 맞이했다. 그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뿜어져 나오는 장엄한 기운은 지옥의 문턱에서 흔들리는 영웅의 마음을 다잡아주기에 충분했다. 티리엘은 메피스토를 쓰러뜨린 영웅의 노고를 치하하면서도, 아직 진정한 싸움이 끝나지 않았음을 엄중히 경고했다.
영웅은 성채 너머로 붉게 타오르는 지옥의 불길을 바라보며 무기를 고쳐 쥐었다. 공포의 군주 디아블로가 이미 지옥으로 돌아가 자신의 악마 군단을 다시 집결시키고 있다는 티리엘의 설명이 이어졌다. 성역의 운명을 구하기 위해서는 디아블로가 완전한 힘을 되찾기 전에 그를 찾아내어 영원한 종지부를 찍어야만 했다.
티리엘은 지옥으로 향하는 영웅에게 한 가지 개인적인 임무를 더 부탁했다. 그것은 오래전 지옥의 악마들에게 사로잡혀 타락해버린 그의 옛 부관, 이주알을 찾아달라는 것이었다. 천상의 훌륭한 전사였던 이주알이 악마의 껍질 속에 갇혀 고통받고 있으니, 그를 쓰러뜨려 묶인 영혼을 해방시켜 달라는 대천사의 간곡한 부탁이었다.
대천사의 부탁을 가슴에 새긴 영웅은 성채의 거대한 철문을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문이 굉음을 내며 열리자, 숨을 턱 막히게 하는 뜨거운 열기와 유황 냄새가 훅 끼쳐왔다. 끝없이 펼쳐진 지옥의 외곽 평원은 잿빛 재와 붉은 용암으로 뒤덮여 있었고, 그곳에는 영웅의 피를 노리는 악마들이 굶주린 채 도사리고 있었다.
지옥의 땅에 첫발을 내디딘 영웅은 뼛속까지 스며드는 한기와 열기가 교차하는 기이한 감각에 몸을 떨었다. 사방에서 기괴한 울음소리가 메아리쳤고, 핏빛 하늘 아래로는 흉측한 형상의 괴물들이 끊임없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영웅은 방패를 치켜들고 검을 뽑아 들며, 이 끔찍한 절망의 평원에서 살아남기 위한 치열한 전투를 준비했다.
쉴 새 없이 몰려드는 악마들의 공세를 뚫고 나아가는 영웅의 앞길은 험난하기 그지없었다. 타오르는 불길과 날카로운 발톱이 영웅의 갑옷을 스치고 지나갔지만, 성역을 구하겠다는 굳은 의지는 결코 꺾이지 않았다. 한 걸음씩 전진할 때마다 지옥의 악의적인 기운이 영웅의 정신을 갉아먹으려 했으나, 굳건한 신념으로 이를 버텨냈다.
저 멀리 절망의 평원 한가운데서 뿜어져 나오는 심상치 않은 냉기가 영웅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끓어오르는 용암의 열기조차 얼어붙게 만드는 그 기괴한 서늘함은, 티리엘이 말했던 타락한 천사 이주알이 가까이 있음을 직감하게 했다. 영웅은 턱끝까지 차오르는 숨을 고르며, 다가올 비극적인 대결을 위해 검자루를 더욱 단단히 쥐었다.
타락한 천사 이주알의 충격적인 진실

절망의 평원 깊숙한 곳으로 진입하자, 거대하고 흉측한 악마의 형상을 한 이주알이 영웅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의 손에 들린 거대한 검에서는 지옥의 불길 대신 뼛속까지 얼어붙게 만드는 끔찍한 서리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한때 빛의 전사였던 그는 이제 지옥의 끔찍한 피조물이 되어, 이성을 잃은 채 영웅을 향해 무자비한 공격을 퍼부어대기 시작했다.
이주알이 휘두르는 서리 검이 허공을 가를 때마다 주변의 공기가 얼어붙으며 날카로운 얼음 파편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영웅은 방패로 매서운 냉기를 막아내며, 둔탁한 파열음과 함께 뒤로 밀려나는 충격을 견뎌야 했다. 악마의 껍질은 상상 이상으로 단단했고, 뿜어져 나오는 냉기는 영웅의 움직임을 서서히 둔화시키며 치명적인 위협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영웅은 굴하지 않고 이주알의 공격 패턴을 파악하며 반격의 기회를 노렸다. 서리 검이 크게 빗나가는 틈을 타, 영웅은 온몸의 체중을 실어 악마의 두꺼운 장갑 틈새로 무기를 깊숙이 찔러 넣었다. 검 끝에서 전해지는 끔찍한 비명과 함께 이주알의 거대한 몸집이 휘청거렸고, 그 상처를 통해 억눌려 있던 빛의 기운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치열한 공방 끝에 영웅의 혼신을 다한 일격이 이주알의 가슴을 꿰뚫었다. 귀를 찢는 듯한 악마의 단말마와 함께 거대한 껍질이 산산조각 나며 무너져 내렸고, 그 안에서 눈부시게 빛나는 영혼 하나가 해방되어 허공으로 떠올랐다. 마침내 끔찍한 구속에서 벗어난 천사 이주알의 영혼이었다. 영웅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그 빛나는 형상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해방된 이주알의 입에서 나온 말은 영웅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절망적인 진실이었다. 그는 천상의 무기인 푸른 서늘함에 대해 이야기하는 대신, 자신이 대악마들에게 영혼석의 비밀을 넘겨주었다고 고백했다. 영혼석을 어떻게 타락시킬 수 있는지, 그것을 어떻게 악마들의 목적에 맞게 사용할 수 있는지를 모두 알려준 배신자가 바로 자신이라는 것이었다.
이주알의 고백은 영웅의 귓가를 때리는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대악마들이 성역으로 추방된 것은 우연이나 패배가 아니라, 그들 스스로가 계획한 거대한 음모의 일부였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졌다. 티리엘과 호라드림이 영혼석으로 대악마들을 봉인했다고 믿었던 그 모든 과정이, 사실은 악마들이 성역의 인간들을 타락시키기 위해 파놓은 정교한 함정이었던 것이다.
이주알은 티리엘을 향해 어리석은 자라며 차가운 조소를 보냈다. 영혼석은 대악마들을 가두는 감옥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힘을 증폭시키고 성역에 뿌리내리게 만드는 강력한 매개체에 불과했다. 영웅은 지금까지 자신이 믿고 싸워왔던 정의와 희생의 근간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것을 느끼며,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끓어오르는 허탈감과 분노를 억누를 수 없었다.
진실을 밝힌 이주알의 영혼은 서서히 빛을 잃으며 지옥의 허공 속으로 흩어져 사라졌다. 영웅은 홀로 절망의 평원에 서서, 주머니 속에 들어있는 메피스토의 영혼석이 얼마나 끔찍하고 위험한 물건인지를 새삼 깨달았다. 이제 이 저주받은 돌을 파괴하는 것만이 대악마들의 음모를 끊어낼 유일한 방법임을 명심하며, 영웅은 더욱 굳은 결의로 발걸음을 옮겼다.
지옥의 대장간과 부서진 증오

영웅은 끓어오르는 불길의 강을 따라 지옥의 대장간을 향해 나아갔다. 강물 대신 붉은 용암이 굽이치는 이 끔찍한 곳은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폐부가 타들어 가는 듯한 고통을 안겨주었다. 영웅의 품속에 있는 메피스토의 영혼석은 지옥의 기운에 공명하듯 불길하게 맥동하며, 끊임없이 영웅의 정신을 어지럽히는 증오의 속삭임을 토해내고 있었다.
용암 강 한가운데 자리 잡은 검은 철의 반도 위에 마침내 지옥의 대장간이 그 웅장하고도 기괴한 모습을 드러냈다. 대장간 앞에는 거대한 몸집과 흉악한 인상을 가진 지옥의 대장장이, 헤파스토가 불타는 망치를 든 채 영웅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영혼석을 파괴하려는 영웅의 목적을 알아채고는, 짐승 같은 포효를 내지르며 무서운 속도로 돌진해왔다.
헤파스토가 휘두르는 거대한 망치는 허공을 가르며 불길한 파공음을 만들어냈다. 망치가 바닥을 내리칠 때마다 지옥의 대지가 요동쳤고, 튀어 오르는 용암 파편들이 영웅의 갑옷을 그을렸다. 영웅은 날렵한 몸놀림으로 치명적인 일격을 피하며, 무방비로 노출된 대장장이의 측면을 향해 빠르고 날카로운 공격을 연달아 찔러 넣었다.
끈질긴 전투 끝에 헤파스토의 움직임이 둔해진 틈을 타, 영웅은 혼신의 힘을 다해 그의 무릎을 꿇리고 치명타를 날렸다. 거대한 대장장이는 끔찍한 비명과 함께 쓰러졌고, 그가 쥐고 있던 지옥의 대장간 망치가 바닥에 무거운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영웅은 숨을 고르며 그 망치를 집어 들었다. 그것은 영혼석을 부술 수 있는 유일한 도구였다.
영웅은 무거운 발걸음으로 저주받은 모루 앞으로 다가가, 품속에서 메피스토의 영혼석을 꺼냈다. 모루 위에 올려진 영혼석은 마치 자신의 파멸을 예감한 듯 더욱 거세게 빛을 발하며 저항했다. 증오의 군주가 내뿜는 악의적인 기운이 영웅의 손길을 밀어내려 했지만, 영웅은 두 손으로 지옥의 망치를 굳게 쥐고 높이 치켜들었다.
영웅이 망치를 내리치자, 귀를 찢는 듯한 폭음과 함께 영혼석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첫 번째 타격에 모루 주변으로 강력한 충격파가 퍼져나갔고, 두 번째 타격에는 영혼석 안에 갇혀 있던 수많은 영혼들의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영웅은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마지막 힘을 끌어모아, 다시 한번 망치를 머리 위로 번쩍 들어 올렸다.
굉음과 함께 지옥의 망치가 영혼석을 산산조각 냈다. 그 순간,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강렬한 빛과 함께 억눌려 있던 수많은 영혼들이 해방되어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증오의 군주 메피스토의 정수가 마침내 성역과 지옥의 굴레에서 완전히 벗어나 심연 속으로 흩어지는 장엄한 광경이었다. 영웅은 땀을 닦아내며 그 파멸의 흔적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메피스토의 위협은 영원히 사라졌지만, 아직 안도하기에는 일렀다. 지옥의 대장간 너머, 불길의 강 끝자락에는 공포의 군주 디아블로가 도사리고 있는 혼돈의 성역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영웅은 부서진 영혼석의 잔해를 뒤로한 채, 성역의 진정한 평화를 위해 마지막 남은 거대한 악과 마주할 준비를 하며 다시 무기를 고쳐 쥐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혼돈의 성역과 풀려나는 봉인

불길의 강을 건너 혼돈의 성역에 들어선 영웅을 맞이한 것은 뼈와 흑요석으로 이루어진 기괴한 대성당이었다. 공포의 군주가 머무는 이 끔찍한 공간은 짙은 피비린내와 숨 막히는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성역의 중심부에는 디아블로를 소환하기 위한 거대한 오각형의 마법진이 새겨져 있었고, 그곳으로 향하는 길목마다 강력한 악마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망각의 기사들과 베놈 로드들이 불길을 내뿜으며 영웅의 앞을 가로막았다. 기사들이 걸어오는 치명적인 저주는 영웅의 육체와 정신을 갉아먹었고, 베놈 로드들의 불길은 주변의 공기마저 태워버릴 듯 맹렬했다. 영웅은 방패로 불길을 막아내고 저주를 견뎌내며, 쉴 새 없이 검을 휘둘러 악마들의 방어선을 하나씩 무너뜨리며 전진했다.
디아블로를 불러내기 위해서는 성역 곳곳에 봉인된 다섯 개의 장치를 해제해야만 했다. 영웅은 쏟아지는 악마들의 공세를 뚫고 첫 번째 봉인으로 다가가 그것을 파괴했다. 봉인이 풀리는 순간, 붉은 섬광과 함께 혼돈의 대장군이 이끄는 화염 악마들이 쏟아져 나와 공중을 날아다니며 끔찍한 불기둥을 뿜어대기 시작했다.
영웅은 재빠르게 몸을 굴려 화염을 피한 뒤, 공중에서 내려오는 대장군의 허점을 노려 치명적인 일격을 가했다. 불타는 악마의 시체가 바닥에 나뒹굴자, 영웅은 쉴 틈도 없이 다음 봉인을 향해 달렸다. 두 번째와 세 번째 봉인을 차례로 해제하자, 이번에는 영혼의 파괴자 군주 드 세이스와 그의 언데드 마법사 무리가 환영처럼 나타나 길을 막아섰다.
군주 드 세이스는 교활한 마법으로 영웅의 무기를 떨어뜨리려 했고, 그의 부하들은 사방에서 흑마법을 퍼부었다. 영웅은 집중력을 잃지 않고 마법의 궤적을 뚫고 들어가 드 세이스의 목을 단숨에 베어버렸다. 우두머리를 잃은 해골 마법사들이 모래처럼 부서져 내리는 것을 확인한 영웅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마지막 봉인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남은 두 개의 봉인을 해제하자, 성역 전체가 진동하며 영혼의 감염자가 이끄는 거대한 베놈 로드 무리가 영웅을 덮쳐왔다. 그들의 압도적인 힘과 속도에 영웅은 잠시 뒤로 밀려났지만, 곧바로 자세를 고쳐 잡고 방패로 놈들의 돌진을 튕겨냈다. 치열한 육박전 끝에 영혼의 감염자마저 쓰러뜨리자, 마침내 혼돈의 성역에 있던 모든 봉인이 파괴되었다.
다섯 개의 봉인이 모두 풀리자, 성역 전체를 뒤흔드는 끔찍한 지진이 발생했다. 바닥에 새겨진 오각형의 마법진에서 시뻘건 불길이 솟구치며 주변의 모든 빛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대기가 찢어지는 듯한 기괴한 파열음과 함께, 영웅의 등줄기를 타고 오르는 원초적인 공포가 공간 전체를 짓누르며 다가오고 있었다.
마법진 한가운데서 솟아오른 불기둥 속에서 거대하고 끔찍한 형상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붉은 비늘과 날카로운 가시로 뒤덮인 몸, 그리고 증오와 공포로 번뜩이는 두 눈. 공포의 군주 디아블로가 마침내 지옥의 심장부에서 영웅을 마주하며 끔찍한 포효를 내질렀다. 성역의 명운이 걸린 최후의 결전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공포의 군주 디아블로와의 결전

죽음조차도 내게서 널 구할 순 없다. 디아블로의 끔찍한 목소리가 영웅의 머릿속을 직접 울리며 뼛속 깊은 곳까지 공포를 불어넣었다. 그 목소리만으로도 평범한 인간이라면 정신을 잃고 쓰러졌겠지만, 영웅은 이를 악물고 두려움을 떨쳐냈다. 공포의 군주가 내뿜는 압도적인 위압감 앞에서도 영웅은 결코 물러서지 않고 무기를 치켜들었다.
디아블로가 거대한 손을 뻗자, 붉은 번개의 줄기가 뱀처럼 굽이치며 영웅을 덮쳐왔다. 닿는 모든 것을 잿더미로 만들어버리는 끔찍한 파괴력에 영웅은 황급히 흑요석 기둥 뒤로 몸을 숨겼다. 번개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는 시뻘겋게 녹아내려 용암처럼 끓어올랐고, 영웅은 턱밑까지 다가온 죽음의 공포를 느끼며 거친 숨을 내쉬었다.
번개가 멎는 찰나의 순간, 영웅은 기둥을 박차고 나가 디아블로의 측면을 향해 돌진했다. 날카로운 검이 악마의 두꺼운 비늘을 긁고 지나가며 불꽃을 튀겼지만, 치명상을 입히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디아블로는 분노하며 바닥을 내리쳤고, 둥근 고리 모양의 화염 파동이 사방으로 퍼져나가며 영웅의 몸을 강하게 튕겨냈다.
바닥에 나뒹군 영웅은 고통을 참아내며 재빨리 일어섰다. 디아블로가 다시 한번 붉은 번개를 준비하는 것을 본 영웅은, 이번에는 피하는 대신 악마의 품으로 파고드는 위험한 도박을 감행했다. 살갗이 타들어 가는 고통 속에서도 영웅은 악마의 거대한 팔을 피해 그의 가슴팍, 붉게 빛나는 영혼석이 박혀 있는 바로 그곳을 향해 검을 겨누었다.
영웅의 검이 디아블로의 가슴에 깊숙이 꽂히는 순간, 성역 전체가 찢어질 듯한 악마의 비명 소리로 가득 찼다. 공포의 군주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영웅을 떼어내려 했지만, 영웅은 남은 모든 힘을 쥐어짜 내어 검을 더욱 깊이 밀어 넣었다. 디아블로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던 지옥의 불길이 서서히 사그라들며, 그의 거대한 육체가 붕괴하기 시작했다.
끔찍한 단말마와 함께 디아블로의 육신이 잿빛 가루가 되어 허공으로 흩어졌다. 공포의 군주가 사라진 자리에는 붉게 맥동하는 영혼석만이 덩그러니 남아 불길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영웅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바닥에 떨어진 디아블로의 영혼석을 집어 들었다. 마침내 지옥의 심장부에서 공포의 군주를 쓰러뜨리고 성역을 지켜낸 것이다.
승리의 기쁨도 잠시, 영웅은 손에 쥐어진 영혼석의 차가운 감촉에 몸을 떨었다. 이주알의 경고가 머릿속을 맴돌며, 이 영혼석 역시 지옥의 대장간에서 파괴해야만 진정한 끝을 맺을 수 있음을 상기시켰다. 영웅은 지체 없이 발걸음을 돌려, 방금 전 지나왔던 불길의 강을 향해 무겁지만 단호한 걸음을 옮겼다.
디아블로의 영혼석마저 지옥의 모루 위에서 산산조각 나자, 마침내 두 대악마의 위협이 성역에서 영원히 사라졌다. 영웅은 파괴된 영혼석의 잔해를 바라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가슴 한구석에는 여전히 지울 수 없는 불안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 아직 파괴의 군주 바알이 마리우스와 함께 어디론가 사라진 채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양원의 마리우스와 거짓된 구원자

같은 시각, 성역 어딘가의 차갑고 축축한 요양원 독방. 늙고 병든 마리우스는 구석에 웅크린 채 몸을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었다. 그의 앙상한 두 손은 호박색으로 빛나는 바알의 영혼석을 생명줄이라도 되는 양 꽉 쥐고 있었다. 끝없는 환청과 공포에 시달리며 미쳐버린 그의 눈동자는 초점 없이 허공을 떠돌며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끼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굳게 닫혀 있던 독방의 낡은 나무문이 열렸다. 짙은 어둠 속에서 희미한 빛을 발하는 두건을 쓴 형상이 천천히 방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마리우스는 그 형상을 보자마자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며 바닥에 엎드렸다. 그는 방문객이 자신에게 이 끔찍한 짐을 지워주었던 대천사 티리엘이라고 굳게 믿어 의심치 않았다.
티리엘 나리? 정말 당신이십니까? 마침내 저를 찾아오셨군요. 마리우스의 목소리는 갈라지고 떨렸지만, 그 안에는 깊은 안도감과 뼈저린 죄책감이 함께 묻어나왔다. 방문객은 아무 말 없이 그저 조용히 서서 마리우스를 내려다볼 뿐이었다. 마리우스는 그 침묵을 천사의 자비로운 경청으로 착각하고는, 자신의 끔찍한 실패를 고백하기 시작했다.
마리우스는 쿠라스트의 사원 지하에서 겪었던 그날의 공포를 더듬더듬 털어놓았다. 지옥의 문이 열리고 끔찍한 악마들이 쏟아져 나오던 순간, 자신은 용기를 내어 영혼석을 지옥의 대장간으로 가져가려 했지만 결국 두려움에 굴복하고 말았다고 흐느꼈다. 그 압도적인 공포 앞에서 도망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자신의 나약함을 원망했다.
용서하십시오, 나리. 저는 실패했습니다. 그 끔찍한 곳으로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마리우스는 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연신 용서를 구했다. 매일 밤 꿈속에서 자신을 괴롭히는 바알의 속삭임과, 세상이 멸망할지도 모른다는 끔찍한 압박감 속에서 그는 서서히 미쳐가고 있었다. 이 고통스러운 고백만이 그의 유일한 구원이라 믿었다.
두건을 쓴 방문객은 여전히 침묵을 지킨 채 마리우스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갔다. 마리우스는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들어 그 형상을 바라보며, 품속에서 호박색으로 고동치는 바알의 영혼석을 꺼내 들었다. 이 저주받은 돌을 대천사에게 돌려주고 나면, 마침내 이 길고 끔찍한 악몽에서 벗어나 평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헛된 희망을 품은 채였다.
이것을 가져가 주십시오. 제발 저를 이 고통에서 해방시켜 주십시오. 마리우스의 간절한 애원이 독방의 차가운 공기 속으로 흩어졌다. 방문객은 천천히 손을 뻗어 마리우스가 내민 영혼석을 향해 다가갔다. 마리우스는 그 손길이 자신을 구원해 줄 천사의 따뜻한 손길이라 믿으며, 떨리는 손으로 영혼석을 조심스럽게 건네주었다.
영혼석이 마리우스의 손을 떠나 방문객의 손에 쥐어지는 순간, 방 안을 감돌던 희미한 빛이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대신 숨을 턱 막히게 하는 끔찍하고 악의적인 기운이 좁은 독방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마리우스는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었음을 직감하고 몸을 움찔했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른 후였다.
티리엘의 가면을 벗은 파괴의 군주

잘했다, 마리우스. 네 임무는 이제 끝났다. 방문객의 입에서 흘러나온 목소리는 티리엘의 장엄한 음성이 아니었다. 그것은 수천 명의 영혼이 고통에 신음하는 듯한, 뼛속까지 얼어붙게 만드는 기괴하고 소름 끼치는 악마의 목소리였다. 마리우스는 공포에 질려 숨을 들이켰고, 그의 눈앞에서 방문객의 모습이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방문객이 뒤집어쓰고 있던 두건이 벗겨지며 드러난 얼굴은 천사의 자비로운 얼굴이 아니었다. 창백하고 흉측한 피부, 잔인한 미소를 머금은 입술, 그리고 파괴적인 광기로 번뜩이는 두 눈. 그것은 바로 마리우스가 그토록 두려워하며 도망쳤던 존재, 파괴의 군주 바알의 끔찍한 환영이 인간의 껍질을 뒤집어쓴 모습이었다.
마리우스는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극도의 공포에 질려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 자신이 구원자라 믿었던 존재가 사실은 이 세상의 가장 큰 위협이었으며, 스스로 그 악마에게 영혼석을 바쳤다는 끔찍한 진실이 그의 뇌리를 강타했다. 평안을 얻을 것이라는 그의 헛된 희망은 산산조각 났고, 그 자리에는 끝없는 절망만이 남았다.
바알은 손에 쥔 자신의 영혼석을 황홀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오랫동안 탈 라샤의 몸에 갇혀 불완전했던 그의 힘이, 영혼석과 다시 하나가 됨으로써 온전하게 회복되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파괴의 군주가 내뿜는 압도적인 악기가 요양원의 벽을 타고 흘러내리며 주변의 모든 생명력을 앗아가기 시작했다.
네가 나에게 가장 큰 선물을 주었구나, 어리석은 인간이여. 바알은 마리우스를 내려다보며 잔인한 조소를 흘렸다. 마리우스가 겪었던 그 모든 고통과 죄책감, 그리고 마지막 희망마저도 악마에게는 그저 즐거운 유희거리에 불과했다. 마리우스는 자신의 나약함이 결국 성역 전체를 파멸로 몰아넣었음을 깨닫고 절망의 눈물을 흘렸다.
바알은 더 이상 마리우스에게 볼일이 없다는 듯 차가운 시선을 거두었다. 파괴의 군주에게 이 나약하고 늙은 인간은 이제 아무런 가치도 없는 쓰레기에 불과했다. 바알이 손가락을 가볍게 튕기자, 독방의 바닥에서 검은 촉수들이 솟아올라 마리우스의 목을 올가미처럼 옥죄어왔다. 마리우스는 발버둥 쳤지만 그 끔찍한 힘을 벗어날 수 없었다.
이제 진정한 파괴가 무엇인지 이 세상에 보여주마. 바알의 광기 어린 웃음소리가 요양원 전체에 울려 퍼졌다. 마리우스의 시야는 서서히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고, 그의 귓가에는 악마의 웃음소리만이 끊임없이 메아리쳤다. 자신이 저지른 돌이킬 수 없는 죄악에 대한 대가는 너무도 가혹했고, 그에게 남은 것은 비참한 죽음뿐이었다.
마리우스의 숨이 완전히 끊어지자, 바알은 그의 시체를 차갑게 내버려 둔 채 뒤돌아섰다. 온전한 힘을 되찾은 파괴의 군주는 이제 더 큰 목적을 향해 나아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 형제들의 복수와 성역의 완전한 파멸을 위해, 바알은 요양원의 벽을 부수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의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잿빛 죽음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비극의 끝과 북쪽으로 향하는 그림자

바알이 요양원을 빠져나오자, 그가 내뿜는 파괴적인 마력에 의해 건물이 순식간에 불길에 휩싸였다. 마리우스의 비참한 시신과 그의 끔찍한 고백이 담긴 독방은 지옥의 불꽃 속에서 흔적도 없이 타들어 갔다. 밤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화염을 뒤로한 채, 바알은 어둠이 짙게 깔린 황야를 향해 거침없는 발걸음을 내디뎠다.
찬 바람이 불어오는 북쪽 하늘을 올려다보는 바알의 눈동자에는 억누를 수 없는 파괴의 욕망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메피스토와 디아블로가 영웅의 손에 쓰러졌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두 형제가 실패한 과업을 자신만이 완수할 수 있다는 오만함과 광기가 그의 전신을 지배하고 있었다.
바알의 시선이 향한 곳은 성역의 가장 북쪽, 험준한 산맥이 굽이치는 아리앗 산이었다. 그곳에는 천상과 지옥의 눈을 피해 성역을 창조하고 유지해 온 거대한 힘의 원천, 세계석이 잠들어 있었다. 바알의 목적은 단 하나, 그 세계석을 찾아내어 자신의 파괴적인 기운으로 완전히 타락시키는 것이었다.
세계석이 타락한다면, 성역의 모든 생명체는 지옥의 악마들보다 더 끔찍한 괴물로 변모하게 될 것이며, 천상의 세력조차 개입할 수 없는 완전한 지옥이 도래할 터였다. 바알은 그 끔찍한 미래를 상상하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는 아리앗 산을 수호하는 야만용사들의 저항 따위는 자신의 압도적인 힘 앞에 무의미하다고 여겼다.
파괴의 군주가 북쪽으로 향하는 길목마다, 땅이 갈라지고 나무들이 말라 죽으며 생명의 흔적이 지워졌다. 바알의 부름에 응답한 지옥의 군단들이 어둠 속에서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며 그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피에 굶주린 악마들의 군대가 결성되며, 성역을 집어삼킬 거대한 파괴의 폭풍이 서서히 북쪽을 향해 몰아치고 있었다.
한편, 혼돈의 성역에서 디아블로를 물리치고 마침내 두 대악마의 영혼석을 파괴한 영웅과 대천사 티리엘은, 지옥의 심장부마저 뒤흔드는 거대한 파괴의 파동이 북쪽을 향해 요동치기 시작했음을 감지했다. 그것은 탈 라샤의 무덤에서 풀려났던 마지막 대악마, 파괴의 군주 바알이 마침내 자신의 잃어버린 정수를 되찾고 완전한 힘을 회복하여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불길한 전조였다. 승리의 기쁨을 누릴 새도 없이, 성역은 또다시 전례 없는 파멸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었다.
티리엘은 판데모니움 성채의 가장 높은 곳에서 굳은 표정으로 북쪽 하늘을 바라보며 영웅에게 새로운 위협을 경고했다. 바알이 야만용사들의 성지이자 성역의 심장인 아리앗 산으로 향하고 있으며, 그곳에 숨겨진 세계석을 타락시키려 한다는 엄중한 선고였다. 만약 세계석이 파괴의 군주 손에 넘어간다면 지금까지 치러온 모든 희생이 물거품이 될 것이었기에, 영웅은 피 묻은 무기를 다시 꽉 쥐며 북부의 혹한으로 향하는 가혹한 운명을 묵묵히 받아들였다.
성역의 진정한 평화를 위한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마지막 남은 대악마, 파괴의 군주 바알을 막아내기 위해 영웅은 눈보라가 몰아치는 북쪽의 혹한을 향해 새로운 여정을 떠나야만 했다. 잿더미로 변한 요양원의 잔해와 아리앗 산을 향해 진군하는 악마의 군단이 엇갈리며, 성역의 운명을 건 최후의 전쟁이 막을 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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