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블로 연대기 6화 · 대성당의 계단은 아래로만 이어졌다
이 글의 목차
원작의 사건을 바탕으로 새로 쓴 팬 서사입니다. 인물의 감정과 대사, 장면의 분위기는 재구성했으며 주요 결말을 포함합니다.
무너진 고향과 생존자들의 증언

트리스트럼에 도착한 아이단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참혹함 그 자체였다. 평화로웠던 마을은 짙은 안개와 음산한 기운에 짓눌려 있었고, 광장에는 적막만이 감돌았다. 무너진 지붕과 잔해들은 이곳에 닥친 재앙의 크기를 짐작하게 했다. 고향으로 돌아왔다는 안도감보다는 서늘한 절망이 먼저 가슴을 옥죄었다.
여관 근처에는 겁에 질린 소수의 생존자들만이 모여 떨고 있었다. 그들의 눈빛에는 희망이 사라진 지 오래였고, 낯선 발소리에조차 소스라치게 놀라며 경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아이단은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며 마을 중심부로 향했고, 그곳에서 낡은 지팡이에 의지한 채 서 있는 노인을 발견할 수 있었다.
호라드림의 마지막 후예인 데커드 케인은 다가오는 전사의 얼굴을 단번에 알아보았다. 주름진 노인의 얼굴에 찰나의 반가움과 깊은 슬픔이 교차했다. 케인은 떨리는 목소리로 왕자 아이단의 귀환을 맞이하며, 그가 자리를 비운 사이 칸두라스의 심장부에서 벌어진 끔찍한 비극들을 하나씩 털어놓기 시작했다.
대주교 라자루스의 끔찍한 배신과 그로 인해 미쳐버린 레오릭 왕의 광기는 마을을 파멸로 몰아넣었다. 케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진실은 너무도 가혹하여 아이단은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충직했던 기사들은 처형당했고, 사랑하는 동생 알브레히트 왕자는 라자루스의 손에 이끌려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는 것이다.
아이단은 검의 손잡이를 부서져라 쥐었다. 아버지가 폭군으로 타락하여 백성들을 도륙했다는 사실은 그의 영혼을 갈가리 찢어놓았다. 자신이 전장에서 피를 흘리는 동안, 진정한 적은 가장 안전해야 할 왕국의 심장부에서 똬리를 틀고 있었다. 왕자로서, 그리고 형으로서 가족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밀려왔다.
비극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라자루스는 실종된 알브레히트 왕자를 찾으라며 마을 사람들을 선동했고, 그들을 대성당 깊은 곳으로 유인했다. 구조대라는 이름으로 모였던 평범한 촌장과 농부들은 횃불과 쇠스랑을 들고 지하로 내려갔지만,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잔혹한 악마들의 함정이었다.
구석에 주저앉아 술에 취해 횡설수설하는 파르남의 모습이 그 참상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는 피바다가 된 지하실과 사람들을 찢어 죽이던 괴물의 끔찍한 형상을 읊조리며 발작처럼 몸을 떨었다. 평범한 이웃들이 겪었을 극도의 공포와 고통이 아이단의 귓가를 맴돌며 그를 더욱 깊은 분노의 늪으로 밀어 넣었다.
아이단은 결연한 눈빛으로 대성당을 올려다보았다. 핏빛으로 물든 스테인드글라스 너머로 짙은 어둠이 일렁이고 있었다. 그는 더 이상 슬픔에 잠겨 있을 수 없었다. 칸두라스의 왕자로서, 그리고 한 명의 전사로서 그는 백성들의 원한을 갚고 동생을 찾아야만 했다. 대성당의 굳게 닫힌 문이 그를 부르고 있었다.
어둠 속으로 발을 들이는 세 명의 이방인

불길한 붉은 광채를 뿜어내는 대성당의 입구 앞에는 아이단 혼자만이 서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어둠의 기운에 이끌려, 혹은 각자의 명확한 목적을 품고 트리스트럼을 찾아온 이방인들이 있었다. 보이지 않는 눈의 자매단에서 온 도적 모레이나는 활시위를 팽팽하게 당기며 성당에서 흘러나오는 악의 기운을 노려보았다.
모레이나는 동쪽에서 불어오는 타락의 기운이 자신의 자매단까지 위협하고 있음을 감지했다. 그녀는 활과 화살, 그리고 민첩한 몸놀림만으로 이 근원적인 악을 정화하겠다는 굳은 의지를 품고 있었다. 날카로운 그녀의 시선은 이미 성당 내부의 짙은 그림자 속에 숨어 있을 악마들의 목줄을 겨냥하고 있는 듯했다.
그들의 반대편에는 비제레이 클랜 출신의 마법사 자즈레스가 지팡이를 짚고 서 있었다. 그는 세상의 지식을 탐구하는 학자이자 강력한 원소 마법의 구사자였다. 자즈레스의 눈동자에는 두려움보다는 금지된 비전 지식과 고대의 마법적 유물들에 대한 강렬한 호기심, 그리고 힘을 향한 끝없는 갈망이 타오르고 있었다.
출신도, 목적도, 싸우는 방식도 달랐지만 세 사람은 대성당 아래에 똬리를 튼 거대한 악을 마주해야 한다는 공통된 운명으로 묶였다. 아이단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들의 동행을 받아들였다. 이 저주받은 지하 미궁은 결코 혼자서 감당할 수 있는 곳이 아님을, 짙게 깔린 죽음의 냄새가 경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육중한 나무 문이 기괴한 마찰음을 내며 열리자, 썩은 피와 오래된 먼지가 뒤섞인 악취가 훅 끼쳐왔다. 성당 내부는 이미 성스러운 기운을 잃어버린 지 오래였고, 부서진 제단과 거꾸로 매달린 상징물들만이 이교도의 끔찍한 의식을 짐작하게 했다. 세 사람은 무기를 고쳐 쥐고 조심스럽게 첫발을 내디뎠다.
대성당의 계단은 오직 아래로만 이어져 있었다. 지상에서 스며들던 한 줌의 빛조차 몇 걸음 내려가지 않아 짙은 어둠 속으로 완전히 삼켜졌다. 횃불의 희미한 불꽃만이 그들의 굳은 얼굴을 비출 뿐이었다. 지하의 서늘한 공기가 폐부를 찌를 때마다, 그들은 산 자의 세계와 점점 멀어지고 있음을 뼈저리게 느꼈다.
어둠 속에서 끊임없이 들려오는 정체불명의 소리들이 그들의 청각을 자극했다. 뼈가 부딪히는 달그락거림, 살점이 찢어지는 듯한 질척한 소리, 그리고 낮게 으르렁거리는 짐승의 숨소리가 사방에서 메아리쳤다. 그것은 단순한 환청이 아니라, 지하를 배회하는 끔찍한 괴물들이 침입자들을 환영하는 방식이었다.
모레이나가 먼저 어둠 속으로 화살을 날려 거대한 거미 한 마리를 꿰뚫었다. 자즈레스의 손끝에서 번개가 뿜어져 나와 다가오던 해골 병사들을 재로 만들었다. 아이단은 검을 크게 휘둘러 길을 가로막는 언데드들의 뼈를 부수며 앞장섰다. 세 영웅의 잔혹하고도 기나긴 탐색이 마침내 그 막을 올린 것이다.
피의 방과 도살자의 공포

지하 깊은 곳으로 내려갈수록 공기 중의 비린내는 더욱 짙어졌다. 복도 곳곳에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된 시신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그것은 괴물들의 소행이라기보다는 누군가 의도적으로 잔혹하게 살점을 발라낸 흔적에 가까웠다. 아이단은 굳은 표정으로 바닥에 고인 끈적한 핏물 위를 조심스레 걸었다.
이윽고 그들은 사방이 피로 도배된 끔찍한 방 앞에 다다랐다. 천장에는 갈고리에 꿰인 시체들이 고깃덩어리처럼 매달려 있었고, 바닥에는 내장과 뼈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파르남이 미친 듯이 읊조리던 지옥의 도살장이 바로 이곳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겪었을 극도의 공포가 생생한 환영처럼 아이단을 덮쳐왔다.
그 순간, 방 안쪽의 어둠 속에서 묵직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아, 신선한 고기!'라는 짐승 같은 포효가 돌벽을 뒤흔들며 고막을 찢을 듯 울려 퍼졌다. 피와 살점으로 뒤덮인 거대한 악마, 도살자가 피가 뚝뚝 떨어지는 거대한 식칼을 치켜들고 그들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돌진해 왔다.
도살자의 압도적인 덩치와 뿜어져 나오는 살기는 숨을 멎게 할 정도였다. 그가 식칼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허공이 찢어지는 듯한 파공음이 울렸다. 아이단은 방패를 들어 간신히 첫 공격을 막아냈지만, 뼛속까지 전해지는 엄청난 충격에 뒤로 크게 밀려났다. 방패가 찌그러지고 팔이 끊어질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모레이나는 재빠르게 몸을 굴려 도살자의 측면으로 파고들었다. 그녀의 활시위가 연달아 튕기며 날카로운 화살들이 도살자의 두꺼운 가죽에 박혔다. 그러나 고통을 모르는 듯한 괴물은 오히려 더욱 분노하며 그녀를 향해 식칼을 내리찍으려 했다. 찰나의 순간, 자즈레스의 불꽃 마법이 도살자의 얼굴에 작렬했다.
시야가 가려진 도살자가 괴성을 지르며 허공에 칼을 휘둘렀다. 그 무차별적인 난도질에 방 안의 기둥이 두 동강 나고 돌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단순한 완력만으로도 모든 것을 부숴버리는 괴물의 힘 앞에, 라자루스를 따라 이곳에 왔던 무장조차 빈약했던 마을 사람들이 얼마나 무력하게 도륙당했을지 짐작이 갔다.
아이단은 분노를 원동력 삼아 다시 검을 쥐고 달려들었다. 무고한 백성들의 피로 얼룩진 이 괴물을 살려둘 수는 없었다. 그는 도살자의 거친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하며, 괴물의 무릎 뒤쪽 관절을 깊게 베어냈다. 균형을 잃고 비틀거리는 도살자의 거대한 몸집이 바닥을 향해 무너지며 굉음을 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아이단은 도살자의 두꺼운 목줄기를 향해 검을 깊숙이 찔러 넣었다. 검은 피가 분수처럼 솟구치며 괴물은 끔찍한 단말마와 함께 발버둥 치다 마침내 숨을 거두었다. 피투성이가 된 방 안에는 거친 숨소리만이 남았다. 무고한 이들의 복수를 해냈지만, 아이단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무거운 돌덩이가 얹혀 있었다.
해골왕의 묘실과 아들의 눈물

도살자의 방을 지나 더 깊은 곳으로 내려가자, 눅눅한 흙벽 대신 정교하게 조각된 대리석 기둥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왕가의 지하 묘지였다. 벽면에는 칸두라스의 문장이 새겨진 낡은 깃발들이 썩어가는 채로 걸려 있었다. 아이단은 익숙한 그 문장들을 바라보며, 다가올 비극적인 재회에 대한 예감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거대한 무덤의 중심부에 다다랐을 때,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차가운 웃음소리가 묘실 전체에 울려 퍼졌다. 뼈와 철로 이루어진 거대한 왕좌 위에서, 칠흑 같은 갑옷을 두른 해골 형상의 괴물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의 빈 눈구멍에서는 섬뜩한 붉은 안광이 타오르고 있었다. 한때 칸두라스를 통치했던 레오릭 왕이었다.
"살아 있는 자가 감히 내 왕좌를 넘보는구나. 무릎을 꿇어라. 이곳에서는 누구도 나를 거역할 수 없다." 해골왕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쇳소리가 섞인 저주에 가까웠지만, 아이단은 그 속에서 아버지의 흔적을 발견하고 억장이 무너지는 듯했다. 위엄 있고 자애로웠던 왕은 온데간데없고, 광기와 타락에 먹혀버린 끔찍한 언데드 군주만이 그 자리에 남아 자신의 아들조차 알아보지 못했다.
해골왕이 거대한 양손 철퇴를 휘두르자, 무덤 곳곳에서 수십 구의 해골 병사들이 흙을 뚫고 일어났다. 모레이나와 자즈레스가 병사들을 상대하는 동안, 아이단은 홀로 아버지의 환영과 마주해야 했다. 레오릭의 철퇴가 무서운 기세로 아이단의 머리를 향해 떨어졌다. 아이단은 검을 들어 올리며 이를 악물고 공격을 튕겨냈다.
무기가 부딪힐 때마다 발생하는 불꽃 속에서, 아이단은 어린 시절 아버지가 자신에게 검술을 가르쳐주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러나 지금 그의 눈앞에 있는 것은 자신을 죽이려 드는 잔혹한 괴물일 뿐이었다. 아버지를 제 손으로 베어야 한다는 끔찍한 현실이 아이단의 팔을 떨리게 만들었고, 그의 움직임은 자꾸만 주춤거렸다.
전하, 제발 정신을 차리십시오! 아이단이 피를 토하듯 외쳤지만, 해골왕은 그저 분노에 찬 포효로 답할 뿐이었다. 철퇴가 아이단의 어깨를 스치고 지나가며 갑옷을 부수고 깊은 상처를 남겼다. 찢어지는 고통 속에서 아이단은 깨달았다. 아버지는 이미 오래전에 죽었고, 저 괴물은 그 육신을 조종하는 악한 주술의 결과물일 뿐이라는 것을.
아이단은 슬픔을 분노로 바꾸며 검을 고쳐 쥐었다. 이것은 아버지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그의 영혼을 옭아매고 있는 저주를 끊어내는 안식의 의식이었다. 그는 해골왕의 거친 연속 공격을 흘려보낸 뒤, 빈틈을 파고들어 철퇴를 쥔 팔의 관절 부위를 강하게 내리쳤다. 뼈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철퇴가 바닥에 떨어졌다.
균형을 잃은 해골왕의 가슴 한가운데로 아이단의 검이 자비 없이 꿰뚫고 들어갔다. 붉은 안광이 미친 듯이 점멸하다 이내 사그라들었고, 레오릭의 뼈대만이 남아 힘없이 허물어졌다. 왕관이 바닥에 굴러떨어지는 둔탁한 소리가 묘실에 울렸다. 아이단은 무너진 뼛가루 앞에 무릎을 꿇고, 고통받은 아버지의 영혼을 위해 조용히 기도했다.
부패한 지하 묘지와 끓어오르는 동굴

왕의 안식처를 뒤로하고 일행은 미궁의 더 깊은 곳으로 향했다. 지하 묘지의 공기는 이전보다 훨씬 무겁고 탁해져서 숨을 쉬기조차 버거웠다. 벽면을 따라 흐르는 끈적한 점액질과 바닥에 깔린 부패한 이끼들은, 이곳이 단순한 무덤을 넘어 거대한 악의 둥지로 변모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들의 발걸음은 점점 더 무거워졌다.
어둠 속에서 번뜩이는 노란 눈동자들이 일행을 에워쌌다. 짐승의 뿔과 인간의 몸을 지닌 염소 인간, 카즈라들이었다. 그들은 피 냄새를 맡고 몰려든 굶주린 짐승처럼 거친 숨을 내쉬며 창과 도끼를 휘둘렀다. 모레이나의 화살이 그들의 미간을 정확히 꿰뚫었지만, 동료의 죽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덤벼드는 광기는 섬뜩할 정도였다.
묘지의 끝자락에 다다르자, 인공적인 석조 건축물은 사라지고 거칠게 파인 자연 동굴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동굴 내부로 들어설수록 훅 끼쳐오는 열기가 피부를 건조하게 만들었다. 바닥 틈새로는 시뻘건 마그마가 끓어오르며 기괴한 붉은빛을 토해냈다. 지옥의 열기가 대지를 뚫고 지상 가까이 침식해 올라오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동굴의 생태계는 지상의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산성 액체를 뿜어내는 거대한 벌레들과, 그림자 속에 숨어 있다가 낫 같은 발톱으로 목을 노리는 흉측한 악마들이 끊임없이 일행을 괴롭혔다. 자즈레스는 보호막 마법을 펼치며 동료들을 방어했고, 아이단과 모레이나는 서로의 등을 맞댄 채 사방에서 몰려오는 적들을 베고 쏘았다.
극한의 피로와 긴장감이 세 사람의 정신을 갉아먹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미로 같은 동굴은 그들의 방향 감각마저 마비시켰다. 끓어오르는 용암의 소리는 마치 수천 명의 망자가 고통에 겨워 울부짖는 소리처럼 들려왔다. 이곳은 산 자가 머물러서는 안 될 공간이었고, 매 순간이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의 연속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멈추지 않았다. 아이단은 잃어버린 동생 알브레히트를 찾아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화상을 입어가며 용암 지대를 건넜다. 모레이나는 자매단을 위협하는 타락의 근원을 찾기 위해 묵묵히 어둠을 응시했고, 자즈레스는 마법의 힘으로 길을 개척하며 고대의 지식을 탐구했다. 그들의 결속력은 위기 속에서 더욱 단단해졌다.
동굴 깊숙한 곳에서 마주친 거대한 가고일 괴물들은 돌처럼 단단한 피부로 무장하고 있었다. 아이단의 검이 튕겨 나가고 모레이나의 화살이 부러지는 찰나, 자즈레스가 정신을 집중하여 강력한 연쇄 번개를 뿜어냈다. 푸른 섬광이 동굴을 가득 채우며 괴물들의 몸을 내부에서부터 산산조각 냈다. 완벽한 호흡이 만들어낸 승리였다.
전투가 끝난 후, 아이단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용암의 붉은빛에 비친 자신의 검을 바라보았다. 검날은 이가 빠지고 피로 얼룩져 있었다. 그들이 내려온 깊이만큼이나 악의 농도는 짙어지고 있었고, 앞으로 마주할 적들은 지금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할 것이다. 두려움이 엄습했지만, 그는 다시 검을 단단히 쥐고 앞을 향해 걸었다.
저주받은 기사 라크다난의 안식

붉은빛이 일렁이는 지하 깊은 곳, 어둠과 열기가 교차하는 심연의 길목에서 일행은 핏빛 갑옷을 입은 거대한 기사의 형상과 마주쳤다. 그의 몸에서는 타락한 악마의 기운이 뿜어져 나왔지만, 다른 괴물들처럼 무작정 달려들지 않았다. 아이단이 경계하며 검을 겨누자, 기사는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으며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려 적의가 없음을 표시했다.
멈추시오, 젊은 전사여. 투구 너머로 들려오는 쉰 목소리에 아이단은 흠칫 놀랐다. 그 목소리는 분명 칸두라스의 가장 위대한 기사이자 근위대장이었던 라크다난의 것이었다. 그는 미쳐버린 레오릭 왕에 맞서 반란을 일으켰다가, 죽음의 순간 왕의 저주를 받아 영원히 이승을 떠도는 핏빛 기사로 전락해버린 비운의 충신이었다.
라크다난은 자신의 끔찍한 몰골을 가리키며 참담한 심정을 토로했다. 그는 왕을 시해했다는 죄책감과, 악마로 변해가는 육신 속에서 간신히 이성을 붙잡고 있는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내 영혼은 지옥의 문턱에서 찢기고 있소. 제발 나를 이 영원한 고문에서 해방시켜 주시오. 그의 간절한 부탁은 아이단의 가슴을 아프게 찔렀다.
라크다난은 이 깊은 지하 어딘가에 숨겨져 있는 황금 비약만이 자신의 저주받은 영혼을 정화하고 안식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아이단은 왕가의 충직한 신하가 겪고 있는 끔찍한 형벌을 외면할 수 없었다. 그는 라크다난에게 반드시 비약을 찾아오겠다고 약속하며, 동료들과 함께 다시 한번 끓어오르는 용암 지대의 미로 속으로 몸을 던졌다.
황금 비약을 찾는 길은 험난했다. 용암이 폭포처럼 쏟아지는 절벽과, 화염 마법을 구사하는 상급 악마들이 그들의 앞길을 막아섰다. 자즈레스가 얼음 마법으로 용암의 열기를 식히고 틈을 만드는 사이, 모레이나가 악마들의 눈을 쏘아 맞췄다. 아이단은 그 틈을 타 불길을 뚫고 들어가 제단 위에 놓인 찬란한 황금빛 병을 움켜쥐었다.
손안에서 따뜻하게 빛나는 비약을 품에 안고, 일행은 서둘러 라크다난이 기다리는 곳으로 돌아왔다. 기사는 이미 한계에 다다른 듯, 갑옷 사이로 붉은 안광을 뿜어내며 짐승처럼 헐떡이고 있었다. 아이단이 조심스럽게 다가가 황금 비약을 건네자, 라크다난은 떨리는 손으로 병을 받아 들고 단숨에 들이켰다.
비약이 목을 타고 넘어가자마자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라크다난의 몸을 감싸고 있던 핏빛 오라가 눈 녹듯 사라지고, 흉측하게 변형되었던 갑옷이 원래의 은빛 광택을 되찾기 시작했다. 그의 투구 너머로 붉게 타오르던 안광도 부드러운 빛으로 변하며 사그라졌다. 마침내 그를 옥죄던 레오릭의 잔혹한 저주가 풀린 것이다.
고맙소, 이제야 진정한 안식을 얻게 되었군. 라크다난은 평온한 목소리로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 그의 몸이 서서히 빛의 가루가 되어 동굴의 어둠 속으로 흩어졌다. 바닥에는 그가 쓰던 낡은 투구만이 남았다. 아이단은 훌륭한 기사의 마지막을 지켜보며 깊은 애도를 표했고, 이 저주를 잉태한 악의 근원을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다짐했다.
트리스트럼에서의 재정비와 드러난 진실

지옥의 문턱에 다다르기 전, 일행은 재정비가 필요함을 직감했다. 자즈레스가 푸른빛의 마을 차원문을 열자, 세 사람은 짙은 유황 냄새를 뒤로하고 그 안으로 몸을 던졌다. 눈을 뜨자 트리스트럼의 서늘한 공기가 그들을 맞이했다. 비록 안개 낀 우울한 하늘이었지만, 지하의 숨 막히는 어둠에 비하면 그곳은 눈부신 천국과도 같았다.
그들은 가장 먼저 대장장이 그리스월드를 찾아갔다. 거대한 화로 앞에서 망치질을 하던 그는 피와 오물로 뒤범벅된 일행의 모습을 보고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당신들이 살아 돌아오다니 기적이군. 그는 찌그러진 아이단의 방패와 이가 빠진 검을 받아 들고는, 숙련된 솜씨로 담금질을 시작하며 무구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었다.
수리가 끝난 후, 그리스월드는 정성스레 벼려낸 날카로운 장검 하나를 아이단에게 건넸다. 이 검에 내 모든 기술과 마을 사람들의 남은 희망을 담았소. 부디 그 저주받은 괴물들의 숨통을 끊어주시오. 묵직한 검을 쥐어보는 아이단의 손끝에 대장장이의 간절한 염원이 전해졌다. 그것은 단순한 무기가 아니라 트리스트럼의 의지였다.
일행은 마을 외곽에 자리한 마녀 아드리아의 오두막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기괴한 약초 냄새가 진동하는 오두막 안에서, 아드리아는 수정구슬을 응시하며 알 수 없는 주문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일행이 요구하기도 전에 강력한 치유 물약과 비전 마법이 담긴 두루마리들을 탁자 위에 늘어놓으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당신들이 벤 것은 그저 그림자에 불과해. 진짜 어둠은 아직 눈을 뜨지도 않았지. 아드리아의 서늘한 목소리가 오두막을 맴돌았다. 그녀는 대주교 라자루스가 단순한 배신자가 아니라, 훨씬 더 거대하고 고대의 존재를 섬기고 있다고 경고했다. 지하 깊은 곳에서 꿈틀거리는 악의 실체가 그들이 상상하는 것 이상이라는 뜻이었다.
광장으로 돌아온 그들을 데커드 케인이 초조한 얼굴로 기다리고 있었다. 케인은 고서적들을 뒤적이며 마침내 퍼즐의 조각을 맞추었다고 말했다. 호라드림의 기록이 맞았소. 이 모든 참상의 배후에는 공포의 군주, 디아블로가 있소! 노인의 떨리는 외침은 일행의 가슴에 차가운 비수를 꽂는 듯했다. 전설 속 대악마가 깨어나고 있던 것이다.
레오릭 왕의 광기, 라자루스의 배신, 도살자의 학살, 그리고 알브레히트 왕자의 실종까지. 모든 사건은 디아블로의 부활을 위한 정교한 제물이었음이 명백해졌다. 아이단은 숨이 턱 막히는 듯한 압박감을 느꼈다. 그들이 지금까지 치러온 사투는 단지 지옥의 문을 두드리는 전주곡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뼈저리게 다가왔다.
하지만 물러설 곳은 없었다. 공포의 군주가 완전히 힘을 되찾아 지상으로 올라온다면, 트리스트럼뿐만 아니라 온 성역이 불바다가 될 것이다. 아이단은 그리스월드가 벼려준 검을 허리에 차고, 모레이나와 자즈레스와 눈을 맞추었다. 그들의 눈빛에는 두려움 대신 결연한 사명감이 타오르고 있었다. 세 사람은 다시 차원문을 향해 걸어갔다.
지옥의 문턱에 서다

차원문을 넘어 다시 동굴의 가장 깊은 곳으로 돌아온 그들을 맞이한 것은,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끔찍한 풍경이었다. 단단했던 암석 벽은 어느새 붉은 살점과 뼈창으로 이루어진 생체 조직으로 변모해 있었다. 바닥은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꿈틀거렸고, 밟을 때마다 질척이는 피가 배어 나왔다. 지옥의 영역에 발을 들인 것이다.
공기 중에는 유황과 살이 타는 역겨운 냄새가 짙게 깔려 있어 숨을 들이마시는 것조차 고통스러웠다. 사방에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 열기는 피부를 바싹 태울 듯이 뜨거웠다. 저 멀리, 대지가 쩍 갈라진 거대한 심연 속에서 불길한 마력이 소용돌이치며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곳이 바로 지옥으로 통하는 진정한 문턱이었다.
심연의 입구 주변에는 핏빛 날개를 퍼덕이는 서큐버스들과, 온몸이 불꽃으로 휩싸인 발록들이 득실거렸다. 그들은 지옥의 문을 지키는 최정예 수문장들로서, 침입자들의 영혼을 갈기갈기 찢어발기기 위해 흉측한 무기를 치켜들고 있었다. 악마들의 찢어지는 듯한 비명 소리가 환영의 합창처럼 귓가를 때리며 일행의 정신을 어지럽혔다.
아이단은 심연에서 뿜어져 나오는 압도적인 공포의 기운에 잠시 몸을 떨었다. 평범한 인간이라면 그 기운만으로도 미쳐버릴 만큼 끔찍한 압박감이었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어둠 속으로 끌려가며 울부짖었을 어린 동생 알브레히트의 얼굴이 떠올랐다. 동생이 이 지옥의 한가운데에 갇혀 있다고 생각하자, 두려움은 이내 뜨거운 분노로 바뀌었다.
모레이나는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며 활시위를 당겼다. 자매단의 가르침조차 이 순수한 악 앞에서는 희미해지는 듯했지만, 그녀는 굴복하지 않았다. 자즈레스 역시 지팡이를 쥐고 마법의 힘을 끌어올렸다. 지식을 향한 그의 갈망도, 눈앞에 펼쳐진 지옥의 실체 앞에서는 오직 생존과 파괴를 위한 본능으로 대체되어 날카롭게 벼려졌다.
우리가 여기서 쓰러진다면, 지상은 영원한 어둠에 먹힐 것이다. 아이단이 낮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말에 동료들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의 대화는 필요하지 않았다. 그들은 각자의 무기를 치켜들고, 지옥의 문턱을 지키는 악마들의 군단을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발록의 화염 채찍이 허공을 가르며 날아오고, 서큐버스들의 저주받은 핏방울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아이단은 방패를 치켜들고 제일 먼저 적진의 한가운데로 돌진했다. 검이 악마의 살점을 가르고, 화살이 붉은 날개를 꿰뚫었으며, 번개가 심연의 어둠을 눈부시게 밝혔다. 지옥의 입구에서 벌어지는 가장 처절하고 절망적인 전투의 막이 올랐다.
대성당의 계단에서 시작된 기나긴 탐색은 마침내 인간계의 끝자락에 도달했다. 끓어오르는 피와 불길 속으로 뛰어든 세 명의 영웅은, 그 깊은 심연 너머에서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을 배신자 라자루스와 공포의 군주를 향해 나아갔다. 돌아갈 길은 이미 끊어졌고, 오직 지옥의 심장부를 꿰뚫는 것만이 그들에게 남은 유일한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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